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해 푸니쿨라를 타고 호엔잘츠부르크 성(Hohensalzburg Fortress)에 올랐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이 성직자의 선임권을 놓고 경쟁하던 시기에 잘츠부르크 대주교가 독일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높은 산 위에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세웠다. 성은 외부의 침략을 받은 적이 없어 900여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내내 성이 보였다.
호엔잘츠부르크 성
푸니쿨라에서 내려 안내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또 언제 내릴지 모르겠지만 지독하게 흩뿌리던 비는 그쳤다. 뿌옇게 구름 낀 지평선과 잿빛 도시가 발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큰 감동을 준다. 정말 멋있었다.
흐르는 잘츠강은 눈으로 보기에 초록빛에 가까웠다. 비가 내려서 그런가?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궁전들과 조그만 집들이 귀여웠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온 세상이 조그만하게 보인다. 내가 빨빨거리며 걸었던 길들이 이제는 발 아래에 놓여져 있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도시 전경을 바라볼 때는 선명한 붉은 지붕들이 가득했기에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었다. 물론 날이 좋았기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잘츠부르크는 뭔가 우중충하면서도 쓸쓸해보였다.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무척 멋있긴 했지만, 잘츠부르크는 비에 잠긴 칙칙하고 우울한 도시 같았다. 꾸리꾸리한 날씨 때문인지 채도가 낮은 건물들 때문인지, 해가 쨍쨍한 날에 다시 이곳에 와 보아야 알 수 있으려나?
비가 한방울씩 뚝뚝 떨어졌다. 이러다가 또 후두둑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성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온갖 인형들이 나타나 시선을 끌었다. 놀러온 아이들은 인형을 보곤 무척 신이나 보였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에서는 축제 때마다 연주회가 펼쳐진다고 한다. 아마도 이 곳은 공연을 위한 공간이지 않을까 싶더라. 축제가 열리는 잘츠부르크의 여름을 상상해 보았다. 아마 지금처럼 우중충하지 않고 밝고 생기가 넘치는 도시일 것 같다.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잘츠부르크가 잿빛 도시로 느껴졌던 건 확실히 날씨 탓인 듯 싶다. 뜨거운 태양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클래식 선율이 울려퍼지는 여름 축제 때 잘츠부르크를 다시 찾아오리라. 그럼 좀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
공연장 같았던 공간
잘츠부르크 성의 모습
성 내부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거의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전시와 관련된 안내문은 다 독일어로 되어있었다. 가끔 영어로 된 안내판을 만나면 읽을 거리가 생겨서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성 안의 창문 너머로 보이던 잘츠부르크
오랫동안 기억해두고 싶은 잘츠부르크. 눈으로 열심히 바라보며 담고, 그러다가 주섬주섬 필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나홀로 여행에서 사진 찍기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참 재미난 일이다.
한 컷 찍고 필름을 착착 감고, 또 하나 찍고 필름을 감고. 이런 저런 구도를 시도해보고 셔터나 조리개를 바꾸어 본다. 혼자였기 때문에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 누군가 기다리는 걸 미안해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점에서 혼자라는게 좋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 사진 찍을 필요가 없었을테니, 뭐 결국 그게 그거인가?
쪼르르 한켠에 서있는 꼬마들
성을 나오는 길목에 기념품 샵이 하나 있었다. 노란 빛깔을 띄는 호박을 이용해 만든 각종 장신구들을 파는 곳이었다. 기념삼아 이 곳에서 선물을 사고 숙소로 향했다.
비는 내내 내렸고 난 꽤 오랜 시간 걸었기에 체력적으로 임계치에 다다른 듯 했다. 아늑한 집처럼 느껴지는 숙소에 들러 잠시 숨을 고르며 쉬었다.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로한 동행과 만나기 위해 숙소를 다시 나왔을 때 비는 좀 그쳐있었다.
둘 다 맛집 찾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잘츠부르크 거리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다가 끌리는 곳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프랑스 음식점이었다. 오스트리아에 와서 프랑스 전통 음식을 먹게 되었으니 참으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하.
메뉴를 보니 난생 처음 듣는 이름들이라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난 뒤에 주문을 했다. 하나는 푹 찐 오리고기와 삶은 콩이 함께 나온 요리였고 다른 하나는 로스트 치킨에 볶은 마늘과 샐러드가 곁들여진 요리였다. 음료는 콜라로 대동단결했다.
한국에서는 콜라를 거의 안 먹었는데 여기 음식들은 콜라가 없으면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안 넘어갔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끌어오르는 느끼함을 막을 수는 없었다. 김치가 없으니 탄산 가득한 콜라로 느끼함을 덜어냈다.
뭘 이리도 많이 샀지?
저녁만 먹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왔다. 아주 깔끔한 안녕이었다. 나는 숙소 옆에 있는 마트에 잠깐 들러 과일과 물을 샀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던 딸기는 너무 시큼해서 실패했으나 비타민C라고 여기며 우걱우걱 먹었다. 테이블 위에 오늘의 기념품들을 진열해놓고 나니 괜히 뿌듯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언젠가 이 기념품들이 잘츠부르크를 기억나게 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