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전날 사둔 망고쥬스를 몸 속에 들이 부었다. 배를 채우고난 뒤 어제 샴푸를 푼 물에 담궈 놓은 청바지와 속옷을 빨고 방에 널어 놓았다. 준비를 마치고서 빈 서역으로 향했다. 빈 국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미리 알아볼 작정이었다. 내일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탑승 위치를 확인한 뒤 마트에서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샀다.
빈 서역에서 U6을 타고 한 정거장이었던가 이동했다가 다시 U4로 갈아탄 뒤 두 정거장을 더 가서 쇤부른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니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빈 지하철은 늘상 타던 서울의 지하철보다 회전률이 빨랐다. 한 열차가 떠나가면 곧장 다른 열차가 들어왔다. 쇤부른역에 내려 사람들이 우르르 가는 곳을 쫓아 따라 걸어가니 궁전에 도착했다.
궁전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단체 관광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매표소로 가서 그랜드 티켓(15.9유로)을 구입했다. 10시 02분부터 투어가 시작되어서 잠깐 짬이 나서 오는 길 마트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배고팠던 탓일까 샌드위치가 엄청 맛있게 느껴졌다.
쇤브룬 궁전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구비되어 있었다.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한국어 말투가 자연스럽지는 못했지만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나으니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안내 직원이 나에게 임페리얼 투어용 오디오를 줬다. 난 분명 그랜드 투어라고 이야기 했건만 다시 돌아가서 바꿔오려니 줄이 어마어마해서 포기했다. 20개 정도의 방은 오디오 없이 둘러봐야 했다.
쇤브룬(Schönbrunn)은 아름다운 우물이란 뜻이다. 방마다 값 비싸고 화려한 가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벽은 금빛 장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화려한 액자들과 샹들리에. 호사를 누리며 살아갔던 누군가와 그렇지 못했을 다른 이들이 떠올랐다. 세월은 흐르고 합스부르크 왕가는 사라지고 이렇게 흔적만 남았다.
궁전은 언제보아도 아름답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생각이 많아서 탈인 것 같다. 그냥 즐기면되는 것을 말이다. 고자우제나 잘츠부르크에서는 맘편히 웅대한 자연 속에 물들어가면 그만이었는데 말이다. 이번 유럽여행을 계기로 내 여행스타일을 확실히 알게된 것 같다.
그랜드 투어 마치고 궁전을 나왔다. 나는 궁전 뒷편의 넓은 정원을 구경했다. 덩쿨로 가득한 아치 통로, 미로같은 공간들, 잘 정돈된 관목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고 느껴지는 무척 넓은 정원이었다. 전날은 비가 내렸는데 이날은 화창한 날씨여서 하늘에 뜬 구름들이 아름다웠다.
정원을 걷다가 작은 못을 하나 발견했다. 고풍스런 분수대가 놓은 못 안에 푸른 하늘이 담겨있었다. 그 위로 하얀 구름과 연잎들이 둥둥 떠 있었다. 푸르른 하늘이 담긴 못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후에 슈테판 성당을 지나가다 이 아름다운 분수대아 못이 그려진 수채화가 있길래 구입했다.
정원을 돌아보는 나오는 길에 청설모를 만났다. 어디론가 열심히 우다다다- 뛰어가던 녀석을 보고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갔다. 새초롬히 내 앞에 잠시 서있던 녀석이 참 귀여웠다.
넵튠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수를 만났다. 여기서 사진을 하나 남기고 싶어 근처에 있던 여자분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의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듣겠더라. 온통 스페인어였다. 카메라를 건네주려는 것 같아 사진을 찍어달라는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끌고가더니 다른 일행이 나와 그 여자분을 같이 찍어주셨다. 그러고 그레시아스- 하고 떠나셨다. 아니 제 사진은요?!!!! 난 그냥 분수대 앞에 선 나를 찍어달라는 말이었는데 말이다. 허허. 황당하면서도 재미난 에피소드였다.
글로리에테를 보러 언덕길을 올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언덕길은 은근히 더 힘들었다. 사방이 뚫려 있었고 온통 잔디밭이었다. 길가에 나무들이 없으니 그늘이 전혀 없었다. 하늘에서 뙤약볕이 곧장 내 머리 위로 내리쳤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햇볕은 따가운데 바람이 세차게 부는 이도저도 아닌 요상한 날씨였다.
언덕을 올라 마주한 글로리에떼. 햇살이 마침 스르륵 스며 들어와 아름답게 반짝이던 글로리에떼. 쇤브룬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이다. 건물 앞의 조그만 못에는 글로리에떼의 반영이 떠있었다. 데칼코마니를 한 듯 잔잔하게 비친 모습이었다.
글로리에떼를 등지고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쇤부른 궁전과 빈 시내가 한눈에 담겨 보였다. 이 장관을 보려고 언덕을 오르며 힘겹게 걸어왔나 보다. 높다란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나 기가막히게 아름다워 실망하는 법이 없다.
글로리에떼 건물 안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다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더 내야했다. 가난한 여행자는 그냥 난간에 기대어 먼 풍경을 내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글로리에떼를 돌아보고 정원 쪽으로 다시 걸어왔다. 어제 같이 저녁을 먹었던 동행 언니와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어디서 먹을까 이야기하다가 쇤부룬 궁전 근처에 있는 오스트리아 민속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쇤부룬 궁전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이곳에서 언니를 기다려야했다.
동행 언니 기다리는 동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일기를 끄적였다. 오늘 본 아름다운 풍경들을 쭉쭉 써내려갔다. 하늘이 담겨있던 작은 못과 분수대, 그리고 언덕위에 서 있던 글로리에떼. 그리고 재미난 일들도 적어 넣는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