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NA May 11. 2022

로바니에미 몬테로사에서 행복한 저녁식사와 눈내리는 밤

산타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산타마을에서 로바니에미 시내로 왔다. 겨울 로바니에미에는 밤이 일찍 찾아왔다. 오후 5시 경 호텔에 도착했는데 세상은 이미 한밤중처럼 컴컴했다. 체감 시간은 오후 10시 정도, 그런 탓인지 온몸이 축 늘어졌다. 얼른 침대 위에 누워 잠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우리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맡겨두었던 캐리어들을 찾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검은 이불보 위에 하얀 순록 인형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벽에 은빛의 순록 장식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아기자기하고 감각적인 방이 보기 좋았다.


하얀 순록은 우리에게 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인형을 데려가려면 체크아웃할 때 별도로 계산을 해야했다. 우리는 이런 상술에 속지 않아하고 순록 인형을 치워두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저 인형을 데려올 걸 그랬다. 이렇게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면 아끼지도 않았을텐데.



우리는 구글 맵에 식당을 뒤져 보다가 평점 좋은 곳을 골라내어 찾아갔다. 그런데 추위에 떨며 찾아간 식당은 이미 만석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미리 식당 예약을 해둘 것을 그랬다. 이제 어디를 가야하나 식당 밖에서 한동안 고민하다가 번뜩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 외관에 걸려있던 현수막이 떠올랐다. 현수막은 우리 호텔 1층에 있는 식당 광고였는데 분명  'Best Steaks in Town'라고 적혀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현수막을 한 번 믿어 볼까나? 우리는 몬테로사 식당(Monterosa Restaurant)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다행이도 우리 둘이 앉을 자리는 있었다. 메뉴판을 보고 고민하다가 야생 버섯 크림 파스타, 순록 스테이크, 글라스 와인, 베리 칵테일을 주문했다.



두가지 방식으로 요리한 순록(Reindeer cooked two ways). 순록 스테이크와 순록으로 만든 미트볼, 여러가지 구운 채소들이 나왔다.


순록 요리는 난생처음이라서 처음 맛 보기 전에 살짝 두려웠었다. 양고기처럼 특유의 육향 때문에 입에 거슬리면 어쩌지? 그런데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어라 소고기와 맛이 비슷했다. 특유의 육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촉촉하고 부드럽고 맛있었다.



라플란드 지역에 오면 순록 요리는 꼭 먹어보고 싶었다. 라플란드(Lapland)는 핀란드와 스웨덴, 러시아의 최북단 지역을 말하는데, 라프족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라프족은 사미족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들은 오래전부터 순록과는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주로 순록과 함께하는 유목 생활을 했던 사미족들은 순록을 통해 우유를 얻고 고기를 얻고 먼 곳을 이동하기도 했다. 순록의 가죽을 이용해 옷을 지어 입고 뼈로 생활용품을 만들기도 했다.



야생 버섯 크림 파스타(Wild Mushroom Pasta). 숲에서 채취한 야생 버섯으로 만든 크림소스 베이스의 파스타였다. 기분탓인지 평소보다 특유의 버섯향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리는 숲속을 걸어갈 때 맡을 수 있는 그런 향이 났다. 꾸덕꾸덕한 질감의 고소한 크림소스에 순록 미트볼을 넣어 먹으니 금상첨화였다.



라플란드에서 또 유명한 것이 각종 베리들이다. 가을이 되면 숲에 베리들이 가득 열린다고 한다. 클라우드베리, 블루베리, 크렌베리 등 다양한 베리들이 이곳에서 난다. 아쉽게도 난 한겨울에 찾아갔던터라 베리 따기 체험을 할 수 없었다. 평소에 워낙 베리류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베리 따기 체험을 꼭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가을에 이곳에 또 와야할까? 대신 로바니에미 식재료 마트에 들러서  베리들을 많이 사먹었다.



배부르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취기 어린채로 밖으로 나오니 검은 밤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주변에 밝은 불빛을 내뱉고 있는 가로등이 있어서 그런지 하얀 눈송이가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펑펑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이었다. 이렇게 풍성하게 내리는 눈은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 것 같았다.


핀란드에 오기 전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는 겨울 내내 눈 한 번 보지 못했었다. 직장인으로서 눈 오는 날 출근길은 너무 싫지만 그래도 겨울이니까 눈 내리는 풍경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었지.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눈을 핀란드에 와서 비로소 보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에서 털복숭이 산타 할아버지 만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