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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May 09. 2022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에서 털복숭이 산타 할아버지 만나기

우리는 로바니에미까지 왔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보지 않기로 서로 이야기 했었다. 자본주의 산타에 굴할 수 없다 외치면서, 우리가 꼬맹이도 아니고 뻔히 가짜 산타(?)인 것을 알고 있으니 굳이 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산타 할아버지와 기념 사진을 찍고 파일들을 받으려면 거의 60유로를 넘게 써야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뜨끈한 음료를 마시고 몸을 데우고 밖으로 나왔다. 로바니에미는 어둑어둑해졌다. 그래도 하늘이 아직 옅게나마 푸르스름했다.



이제 버스를 타고 로바니에미 시내에 있는 우리 호텔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카페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바로 앞 건물이 바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만남의 장이 열리는 곳이었다.


갑자기 산타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분명 산타를 보지 않고 돌아가기로 했는데 말이다. 우리는 슬며시 서로의 눈치를 보았는데 눈빛을 보니 둘 다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누군가가 수염을 붙이고 산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라도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큰 나무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왔으니 이제 되돌릴 수 없었다. 산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잔잔한 노란 등만 켜져 있어서 어둑어둑했다. 우리는 붉은 계단을 올라 갔다. 영화 클라우스에 나온 장난감 공장에 온 기분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산타를 기다리는 줄이었다. 엘프 분장을 한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환영 인사를 건냈다. 산타를 볼 생각에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말라 붙었던 우리의 동심이 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산타와 만나는 순간을 엘프들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아 주었다. 물론 사진과 동영상은 나갈 때 따로 구입해야만 파일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열심히 촬영하는 엘프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엘프들은 아마도 이곳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나와 같은 직장인이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우스웠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인가 헛웃음이 나오다가도, 어쨌든 산타를 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드디어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다.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 계시던 산타 할아버지. 저 수염을 걷어내면 낯선 중년 아저씨가 튀어 나올 것 같았지만 말이다. 너무 신나고 재미난 경험이었지만 아무래도 난 어른이긴 한가보다. 산타를 보며 든 생각들은 하루 종일 여기 앉아 일하느라 고되겠다, 근골격계 질환 생기는거 아닌가 등등. 내 동심은 먼나라로 떠나가 버렸나?


로바니에미의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


산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이 결혼 1주년 기념으로 핀란드에 왔다고 산타에게 말했다. 산타는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우리에게 다시 앉으라 했다. 그리고는 우리 손을 하나씩 잡고 앞으로 삶에 행복과 안녕이 가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울컥하면서 가슴이 찡했다. 산타의 포근한 말 한마디가 정말 진심처럼 느껴졌다. 하얀 수염을 단 이가 산타이든 아니든 어쨌건 이 먼나라에 여행 온 낯선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으니 그 자체로도 너무 감사했다.



산타 할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사진과 동영상은 쉽게 살 수 없었다. 또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진과 동영상을 확인 해야하고 무엇이든 살지 말지 결정도 해야하니 복잡했다. 산타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선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로바니에미 시내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무조건 타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었다. 초조하게 발만 동동 구르며 우리 차례를 기다리다가 결국 버스 시간을 놓쳐 버렸다.

​우리는 포기한 채로 마저 기다리다가 사진과 동영상을 호다닥 구매해서 밖으로 나왔다. 혹시 모르니 버스 정류장으로 헐레벌떡 뛰어 갔다. 그런데 떠난줄로만 알았던 버스가 정류장 앞에 떡하니 서있는 것이 아닌가?



버스에 오르고 나서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한밤중인 것처럼 새카맣다니 놀라웠다. 몸으로 느끼기에는 오후 9시는 족히 넘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버스 탑승비는 인당 3.5유로였다. 여기 산타마을에서 어떻게 택시를 구할지도 갑갑했고 택시는 버스보다 비용도 훨씬 더 비싸니, 이렇게 버스를 탈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우린 운이 참 좋았다.


버스는 로바니에미 공항을 살짝 들렀다가 로바니에미 시내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 호텔로 들어왔다. 아늑한 호텔에 들어서니 잠이 솔솔 왔다. 아직 초저녁인데 이렇게 한밤중 같은 기분이 들다니, 겨울 북유럽은 아주 묘한곳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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