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유통기한을 믿게 된 뒤에도

중경삼림이 남긴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버릇이었다

by 레노

사춘기에는 느리게 걷는 사람에게 다 사연이 붙었다.


담배를 문 얼굴은 이유 없이 한 편의 전사를 얻었다. 내가 좋아한 것은 홍콩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라 그 안에 눌어붙은 공기였다. 눅눅한 밤, 번지는 네온, 유리창 안쪽에 오래 남는 습기. 마음은 늘 조금 늦었고, 사랑은 시작보다 퇴색의 순간에 더 선명했다.


그 시절 우리는 홍콩의 스타들을 흉내 냈다. 리듬도 없는 거리를 박자 맞춰 걷고, 계절보다 먼저 꽃무늬 셔츠를 걸쳤다. 한 손에는 담배, 다른 손에는 클러치백. 얼음이 찬 바스켓에서 병맥주를 꺼내 들면 세상이 잠깐 필름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지금 돌아보면 멋이라기보다 도취였고, 스타일이라기보다 모사였다. 그래도 사람은 그런 허술한 자세로 한 시절을 건넌다.


중경삼림은 그 가운데 오래 남았다. 그 영화에서 사랑은 끝난 뒤에 더 구체적이었다. 누군가는 유통기한이 적힌 파인애플 통조림을 쌓아 두고, 누군가는 남의 집에 숨어들어 비누를 바꾸고 수건을 갠다. 마음이 철수한 자리에는 늘 사물이 남았다. 날짜, 방, 음악. 사랑이 지나간 뒤 인간이 얼마나 우스워지는지, 그 영화는 대사보다 물건으로 오래 말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파인애플 통조림 앞에서 가끔 멈춘다. 마트 형광등 아래 놓인 노란 깡통 몇 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하나를 집어 들 때가 있다.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의 마음은 상징부터 버리지 못한다. 뚜껑이 닫힌 통조림처럼, 끝난 감정도 끝내 완전히 밀봉되지는 않는다.


사랑의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아주 오래로 하고 싶다.


한때는 그 문장이 맹세처럼 들렸다. 지금은 안다. 그것은 맹세가 아니라 유예라는 것을. 이미 상해 가는 마음 앞에서 며칠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붙잡는 손. 오래라는 말은 영원을 믿는 입보다 끝을 먼저 안 입술에서 더 절실하게 나온다.


가끔 대청소를 할 때면 몽중인을 튼다. 먼지가 걷히고 오래된 종이가 버려지고 닫혀 있던 구석에 빛이 닿는다. 청소는 생활을 정리하는 일인데, 어떤 날에는 지나간 감정을 정리하는 일과 구분되지 않는다. 닦아도 사라지지 않는 자국이 있고,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다. 나는 그 노래를 틀어 놓고 방을 쓸며 집 안의 먼지만이 아니라 한때의 나를 조금씩 밖으로 밀어내는 기분을 배운다.


어릴 때는 사랑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사랑은 먼저 기능을 잃는다. 기다림이 엷어지고, 궁금함이 마르고, 미안함이 늦어진다. 한 사람이 하루를 통째로 차지하던 시절이 끝나면 마음은 사건이 아니라 밀도로 남는다. 아직 연락은 가능하지만 더는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는 사람. 미워하지는 않지만 돌아갈 이유도 없는 사람. 사랑은 파열음보다 먼저 미세한 파손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지금의 중경삼림은 예전의 중경삼림과 다르다. 예전에는 낭만으로 보이던 장면들이 이제는 유예로 보인다. 사람은 끝난 사랑을 바로 끝났다고 부르지 못해서 날짜를 붙이고 물건에 마음을 남겨 둔다. 오래 남는 것은 영원해서가 아니라 폐기하지 못해서다.


그래서 그 영화가 내게 남긴 것은 감상이 아니다. 파인애플 통조림 앞에서 잠깐 멈추는 일, 대청소를 하며 몽중인을 켜는 일, 끝난 관계를 바로 과거라고 부르지 못하고 한철쯤 더 붙들어 두는 버릇. 중경삼림은 내게 줄거리보다 생활로 남았다.


지금의 나는 안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은 있다. 다만 더 오래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기한이 지난 뒤에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사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버릇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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