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아닌, 첫 번째 글쓰기

단지 공간이 하나 늘었을 뿐인데

by 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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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의 처음은 늘 설렌다. 사람들은 그걸 기대라고 부르기도 하고, 긴장이라고도 말한다. 때로는 걱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아마 지금 내 마음이 딱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설레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어색하고, 괜히 마음이 분주해지는 그런 상태. 이 감정을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나는 어떤 ‘처음’ 같은 감각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사실 브런치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하면서 이미 다섯 편의 글을 올려 두었다. 서랍 속에 다섯 편의 글이 있었고, 그중 세 편은 응모 글이었다. 어쩌면 그 글들이 이미 브런치에 남겨진 나의 첫 흔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은 ‘처음’이라기보다는 첫 번째 글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이미 발자국은 찍혀 있었고, 나는 그 위를 다시 한번 확인하듯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중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읽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숙제처럼 주어지던 독후감이나 일기 같은 것들은 늘 조금 귀찮은 일이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습관들도 어쩌면 그 시절의 주입식 교육 속에서 우연히 얻어걸린 것들 일지 모른다. ‘논리야 놀자’ 같은 책을 읽었던 기억,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위인전 시리즈를 줄줄이 읽던 기억 같은 것들. 그때는 별 의미 없이 넘겼던 문장들이 지금 어딘가에서 남아 작동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음악을 한다고 하면서 랩 가사를 쓰던 시간도 있었다. 라임을 맞추고, 단어와 단어의 리듬을 맞춰보려고 괜히 노트를 채우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은 꼭 음악만을 위한 연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의 호흡을 생각하고 말의 리듬을 만지는 일은 결국 글과도 꽤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때의 습관들이 지금의 문장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 브런치스토리는 꽤 오랫동안 조금 멀리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책을 많이 읽고 어휘력이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장을 꺼내 놓는 곳. 나는 그저 바깥에서 가끔 들여다보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그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는 생각도 크게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스레드를 보다가 어떤 글을 읽게 됐다. 다섯 번을 도전했는데 아직 선정이 안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 글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쯤일까. 특별한 자신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궁금했다.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신청을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문이 열렸다.


기회가 좋았던 건지, 운이 좋았던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 번에 선정이 됐다. 기분은 분명 좋았다. 설렜고 또 설렜다. 마치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괜히 들뜨기도 했다.


어쩌면 로또에라도 당첨된 것처럼 잠깐 들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신나고, 괜히 설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걱정이 따라붙는다. 그 감정이 조금 어색했다.


생각해 보면 그냥 ‘선정’ 일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분주해지는 걸까. 나만 이런 걸까.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사람들 대부분도 이런 설렘을 안고 시작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 웃기기도 했다.


나는 원래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단지 그 장소가 브런치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무언가 인정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서 이 감정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단지 ‘선정’이라는 사실 하나로 생각이 많아졌다. 원래 나는 사진을 먼저 찍고, 그 사진을 고르고, 그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다. 사진이 먼저였고, 글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 글의 시작은 사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진 속에 담긴 감정을 조금 더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이 문장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글이 먼저여야 하는 걸까. 글에 맞는 사진을 찾아야 하는 걸까.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 달라져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머릿속이 생각보다 조금 복잡해졌다. 아마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 블로그도 있고, 인스타그램도 있고, 스레드도 있다. 각각의 공간은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내게는 사진과 글을 올리는 비슷한 장소들이다. 거기에 브런치스토리라는 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 그래서 잠깐 멈춰 서서 생각하게 된다. 이걸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글이든 사진이든 무엇이 되었든, 나는 결국 표현하고 전달하고 남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만족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사람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방식이 글이 될 때도 있고, 사진이 될 때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장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공간이 하나 늘었을 뿐이다. 다만 그 공간의 이름이 브런치스토리일 뿐이다.


아마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생각, 지금의 순간, 지금의 느낌을 가능한 많은 곳에 남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동시에 그건 조금 과한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일단 이렇게 정리해 본다. 첫 번째 글쓰기는 설렘 속의 불안, 그리고 방향을 고민하는 나. 지금의 나는 아마 그 정도의 위치에 서 있는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다음 글이다. 사실 방법은 단순하다. 그냥 쓰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단순한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마 대부분의 글이 그렇게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별로 대단하지 않은 한 문장으로.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다.


다음 문장은 아직 없지만,

어딘가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