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으로 가는 S23

시간은 고장 난 것보다 멀쩡한 것들을 먼저 밀어낸다

by 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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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쓰던 S23을 내려놓고 S26으로 넘어왔다. 휴대폰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매장에서 몇 번 서명을 하고 데이터를 옮기면 끝난다. 오래 손에 쥐고 다니던 기계 하나가 내 일상에서 빠져나가고, 대신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반짝이는 기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기술은 늘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한다. 더 선명해졌고 더 빨라졌으며 조금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화면은 조금 더 밝아졌고 반응 속도는 조금 더 빨라졌으며 카메라는 조금 더 좋아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런 작은 변화들을 꽤 기꺼이 받아들인다. 어쩌면 사람은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 며칠 정도는 괜히 이것저것 눌러보게 된다. 카메라를 켜보고 메뉴를 넘겨보고 필요하지도 않은 기능을 찾아보기도 한다. 마치 새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잠깐 들떠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며칠만 지나면 그 기계는 더 이상 새로운 물건이 아니라 그냥 또 하나의 일상이 된다.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기계가 조용히 밀려난다.

3년 동안 내 손에 들려 있던 S23이 그렇다.


고장 난 것도 아니고 화면이 깨진 것도 아니다. 배터리가 망가진 것도 아니다. 전원을 켜면 여전히 잘 켜지고 사진도 잘 찍힌다. 여전히 멀쩡한 기계다. 다만 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시간은 늘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고장 난 것들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것들을 조용히 뒤로 보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멀쩡한 것들이 시간 때문에 밀려난다.


그래서 물건을 바꾸는 순간에는 묘한 감정이 남는다. 새것을 손에 쥐고 있는데도 어딘가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기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시간을 남겨 두기 때문이다. 그 기계로 찍었던 사진들, 늦은 밤 보내던 메시지들, 지도 앱을 켜고 길을 찾던 순간들,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무심히 넘기던 영상들 같은 것들이 조용히 그 안에 남아 있다.


나에게 휴대폰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나는 그것으로 일상의 사진을 찍는다.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순간들, 길 위에 떨어진 빛이나 카페의 커피잔이나 어딘가의 하늘 같은 것들.


휴대폰은 어쩌면 내 일상을 가장 오래 들여다본 친구 같은 물건이다.


사진이라는 것은 이상한 기록이다.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갔는데 그 장면만 남는다. 사진을 넘기다 보면 그때의 공기와 감정이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사진은 순간을 남기는 일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시간만 남긴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시간은 고장 난 것보다 멀쩡한 것들을 먼저 밀어낸다.


새 휴대폰 상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상자 안에 S26이 단정하게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제품 포장처럼 보였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묘하게 낯설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작은 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기계는 늘 그렇게 등장한다. 상자 속에 누워서.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기계를 위해 조용히 밀려난다. 그때가 되면 그 기계는 아직 멀쩡한 상태로 어딘가의 서랍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기술의 세계는 늘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손에 쥐며 잠깐 설레고 조금 지나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또 시간이 지나면 더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그러면 멀쩡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다. 우리는 그 장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보면서도 그 흐름에 놀라울 정도로 쉽게 적응한다.


가끔은 이 모습이 우리의 삶과 꽤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처음에는 새것처럼 등장한다. 젊고 빠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잠깐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더 새로운 것들을 앞으로 내세운다. 그것이 특별히 잔인한 일도 아니고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하는 일이다.


멀쩡한 것들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일.


지금 서랍 속으로 들어갈 S23처럼 언젠가 우리도 그렇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직 멀쩡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났다는 이유로 조용히 뒤로 밀려나는 순간, 그리고 결국에는 어떤 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순간 말이다.


새 기계는 늘 상자 속에서 시작하고 사람은 관 속에서 끝난다.


그 사이에 있는 시간들을 우리는 특별한 이름 대신 그냥 삶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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