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머리를 밀어보았습니다.
항암 일회만에 포기한 자의 회상.
유방암 수술과 재건 수술을 한 후, 몸이 조금 회복되었을 무렵.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병원은 사람으로 넘쳐나 좀 과장하면 추석 전 날 시장 같았다.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그랬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나만 그런 건 아니네 하는 못난 안도감이 들었다.
항암주사를 예방 접종 맞듯이 맞았다. 혈액채취 할 때처럼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빨간 주사, 하얀 주사, 투명주사. 쭉쭉쭉 맞았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처음이라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그렇게 빨리 맞는 것이 아니란 걸. 그래도 아는 것이 없던 나는 항의할 기회가 없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맞고 있었고, 나에게 항의할 항암 이 회 차 따윈 없었다. 난 일회차 이후, 항암을 포기했으니까.
후루룩 항암 주사를 맞고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마침 아빠가 마중 나오셨다.
"괜찮아?" 하는 물음에, "네" 하고 대답하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집까지 가는 삼십 분 정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메스꺼움을 삼켜야 했다.
웬만한 통증을 잘 참는 나도, 특히 부모님 앞에선 잘 표현하지 않는 나도, 항암이 주는 고통은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아프고 메스꺼우면 방에 들어가 누워있기만 했다. 좀 괜찮아지면 현관 소파에 앉아, 엄마의 수많은 걱정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항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방안에 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 엄마는 걱정이 된다며 방문을 열어 놓고 수시로 들여다봤다. 밤에도 방 앞에 이불을 펴고 주무셨다. 난 맘껏 아파할 자유도 잃었다.
며칠 만에 머리를 감았는데, 빠진 머리카락 양이 심상치가 않다. 급한 데로 집에서 가위를 가지고 단발 길이로 잘랐다. 머리카락은 솜사탕처럼 당기는 대로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밀어야겠다.
동네에 엄마가 다닌다는 미용실에 갔다.
권사님이라는 미용사는 안타까워하며 머리를 정성스럽게 밀어주셨다.
음. 내 두상이 나쁘지 않네.
눈물 따윈 나지 않았다.
아니, 엄마 앞에선 울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2층에 올라간 후, 남편에게 안겨 한참을 울었다.
빠진 머리는 정말 괜찮았지만, 점점 좋아지지 않는 몸 상태가 너무 무서웠다.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이걸 몇 번이나 더 해야 한다니...
남들은 어떻게 하는 거지...
주사를 맞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호흡이 가빠 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엄... 마...'
한 밤중이었지만, 엄마는 내 약한 목소리에 금방 일어나 주었다.
구급차를 부르고 30분을 달려 나름 제일 큰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남편이 모두 설명했지만 피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혈관이 잡히는 곳이 없어 사타구니에서 채혈을 했다.
엄마가 울었다.
그렇게 채혈을 하고 난 후. 그들은 항암을 자기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수액만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지역에 사는 큰 이모에 작은 이모까지 모두 응급실로 출동시킨 그런 식의 일은, 두 번이나 더 일어났다. 병원에서 아무것도 안 해준다는 걸 알면서도 응급실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집에서 죽을 순 없어서였다.
그만큼 난 죽을 것 같았다.
매일 자기 전에 다음날 눈을 뜰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엄마가 내일 아침에 내 시체를 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했다.
입안은 점점 말라가고, 헐어가고, 영혼까지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 짓을 몇 번을 더... 어떻게 하란 말이지.
겨우 삼 주를 버티고 엉망이 된 몸으로 다시 검사를 하러 갔다. 난 아직도 내 몸이 살아있는 시체 같은데, 수치가 정상화되었으니, 그 주사를 또 맞고 가란다.
덜컥 겁이 났다.
"저는... 아직 힘들어서... 조금 더 회복되면... 맞을게요... "라고 주치의에게 말했다.
주치의는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난 그 이후로 항암을 하지 않았다.
채 이년이 되기 전, 전이가 되었을 때, 혈액종양내과 선생님은 항암을 중단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지만,
난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항암을 다 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지금의 결과를 다 알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항암을 끝까지 못할 것 같다.
병을 이겨내고 계신 분들, 여러 차례의 항암을 견뎌내고 계신 분들, 견뎌내신 분들.
존경하고,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