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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길이 Jun 12. 2022

6월 1주차 회고

드레이먼드 그린과 광고회사 AE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나는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말해야하는 기회들이 생겼다. 동료들과는 농담으로도 나눴다가는 서로 부끄러워질 듯한 질문.


말로 하기에는 괜히 늘어질 것 같은 아젠다.

다만 "앞으로의 광고 AE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서 떠오른 인물은 박웅현도 아니고, 잭 스트라우트도 아니고, 데이비드 아커도 아닌.

지금 내 최고의 관심사. NBA 파이널에서 애매한 활약을 하고 있는 '드레이먼드 그린'이다. (와, 나랑 동갑이었어?!)


1990년생 드레이먼드 그린. 참고로 스타트업 투자의 귀재이다. 

드레이먼드 그린. 찰스 바클리와 데니스 로드맨을 이은 코트 위의 악동. 대표적인 트러블 메이커. 벽돌로 슛을 던지는 슈팅고자. 경기 당 30득점은 우스운 NBA의 네임드 스타들 사이에서 그린의 성적표는 너무나 초라하다.


슛을 잘하는 것도 아니야. 돌파도 안돼. 그렇다고 높이가 되서 골 밑을 씹어먹지도 못해. 패스, 잘하지만 TOP 클래스는 아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레이먼드 그린'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즈 왕조에서 빠지면 성립될 수 없는 조건이다. 


1. 약팀에서는 그냥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강팀에서는 팀을 최강으로 이끄는.

아마 그린이 골스가 아닌 다른 팀으로 간다면, 올스타는 커녕 한국 미디어에서는 볼 기회조차 없는 선수였겠지. 하지만 그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NBA 역사에 길이 남은 슈팅 듀오, 스플래쉬 브라더를 만난다. 

말할나위 없이 최고의 공격수이자 3점 슈터, 스테픈 커리. 3&D의 최강자이자 한경기 최다 득점슈터, 클레이 톰슨.이 외에도 앤드류 보거트, 숀 리빙스턴, 안드레 이궈달라, 저베일 맥기 등등 (케빈 듀란트는 일단 뺀다.)

 

개개인만 봤을 때엔 스테픈 커리 말고는 팀 자체를 최고로 이끌만한 조각이라기에는 애매해보이지만,

드레이먼드 그린의 공격 조립 능력 및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크린 능력.

이에 그린의 넓은 시야와 뛰어난 BQ, 적절한 패스 능력이 골스가 자랑하는 '모션오펜스*'의 KEY-FACTOR이다. 

*슈퍼스타 개인 기량의 아이솔레이션과는 반대되는. 팀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슈팅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술 방식. 

*물론 모션오펜스의 가장 코어는 스테픈커리가 맞다. 하지만 그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션오펜스가 성립되지 않는 것도 맞다.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그들의 시스템 농구를 한번 지켜보자.

https://youtu.be/g7YpGSez3UA


AE도 결국 같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기획서를 잘 쓰기에, PT를 잘하기에 본인이 슈퍼스타라고 생각하는 그런 AE들이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AE의 본질은 드레이먼드 그린의 특성에 닿아있다고 본다. 


톡톡튀는 제작팀과 콘텐츠 마케터, 기깔나는 디자이너, 철저하고 공격적인 미디어 플래너와 그로스 마케터, 퀄리티 높은 프로덕션 등...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시스템을 만들어, 강점을 극대화시키고 타겟들을 넓히고 공략해나가는.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축이 AE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의 필두인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제작팀이나 에디터, 퍼포먼스 담당자가 받으면 된다. 


우리는 그 시스템을 유지함으로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들면. 그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경기 중 시스템 유지를 위해 강력한 멘탈과 함께, 보컬리더(vocal leader*)가 되어줘야 한다. 

*보컬리더(vocal leader) : 경기 중 코트위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컨트롤을 주도적으로 하는 선수.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모션오펜스는 현 시대의 광고/마케팅 필드의 트렌드와도 닿아있다.


2. 모션오펜스와 스몰라인업. 꼭 지킬 것과 버려두는 것. 

머나먼 과거. 빌 러셀이나 월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자바 등 고대 괴수들의 빅맨의 골밑 장악력으로 승패가 갈리던 시절. 그리고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등 슈팅 가드의 가치가 급상승하며 그들의 절륜한 아이솔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히어로볼의 시대. 


그 와중에 나타난 스테픈 커리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마치 외계인이 탄 UFO처럼 특이했다. 


스테픈 커리를 필두로 발생하는 그래비티*을 기반으로, 코트 위의 다섯 명 모두 골밑 / 외곽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각자의 역할을 한다. 볼이 올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경우는 없다. 


백코트 멤버들은 계속해서 골밑을 오가며 림을 호시탐탐 노리고, 빅맨들은 골 밑에서만 존버하지 않고 외곽으로 나와 커리, 탐슨 스플래시 브라더스의 슈팅 기회를 위해 스크린을 선다. 그렇기에 키가 크고 덩치가 좋고 느린 전통적인 빅맨(이를테면 채치수?) 보다는 전체 선수들의 라인업의 높이가 낮아진 대신 매우 빨라지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그들은 쉽게 넣을 수 있는 슛 찬스를 찾아가고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 농구를 한다. 


빠르게 하프코트를 넘어와 상대방의 수비와 박스아웃이 없을 때 지체없이 슛을 날린다.

커리와 탐슨의 괴랄한 3점슛 셀렉션은 이를 성공시키되 실패하더라도 박스아웃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오펜스 리바운드를 잡거나 놓치더라도 빠르게 수비코트로 복귀하여 수비를 한다. 


가장 쉬운 득점임인 골밑 공략을 위한 빅맨플레이나 슈퍼스타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아이솔레이션 중심의 플레이가 아닌, 3점이라는 가장 효율적인 득점(물론 커리가 있기에 가능한)을 무기로 전체적인 공격의 시스템을 바꾸었고 이 것은 트렌드가 되었다. 


이 것이 바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몰라인업을 기반으로 한 모션오펜스 시스템이며, 이를 통해 골스는 8년간 6번의 파이널 진출, 3번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현재 보스톤과 4번째 우승을 노리는 중)


나는 이 스몰라인업 / 모션오펜스가 변화하는 광고/마케팅 환경과 닿아있는 것 같다. 

과거 칼날같은 하나의 전략 컨셉, 그리고 이를 받아주는 멋진 크리에이티브! (그러니까 TBWA 전성기의 그런) 


그리고 이 거대한 한 방을 가진 흔히 말하는 종합광고대행사들은 위기에 처해있고 그 위기는 심해질 것이다. 

왜냐면 어떤 광고주도 하나의 마케팅 수단을 통한 브랜드의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플루언서 / 프로모션 / 퍼포먼스 마케팅 / 콘텐츠 마케팅(SNS) / 오프라인 브랜딩 등등... 이제 종합광고대행사가 자랑하는 그 TVCF/크리에이티브는 위의 친구들의 One Of Them일 뿐. (요즘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내가 종대사의 AE들은 정말정말정말정말 디지털에 무지했다. CPC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결국 이 모든 툴들의 목적과 역할을 이해하고 최대한 빠르게 시도해보며,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모션오펜스와 같은 마케팅 시스템이 갖춰져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마케팅 수단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것은 막아야 하기에 규모는 컴팩트 해야 한다.(스몰라인업) 


최근 왠만한 마케터들은 다 본 것 같은 장인성님이 쓰신 '마케터의 일'에 보면 '작게 짧게 빠르게'라는 챕터가 나온다.  이 말 한마디가 요즘의 마케팅의 흐름, 그리고 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농구가 지금 에이전시의 흐름과 닿아있는지를 설명하는 한마디라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앞으로 '더 잘하기'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드레이먼드 그린 같은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드레이먼드 그린의 별명은 'Swiss Army Knife'. 즉 맥가이버 칼이다. 


다만 하나의 고민은 과연 대행사라는 프레임 안에서 내가 과연 드레이먼드 그린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우리 대행사들은 특정 수단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능해야하기 때문에. 


그럼 광고대행사만 줄기차게 7년간 다닌 나는 앞으로? 어떻게? 


Ps. 한창 NBA 파이널이 진행중이다. 파이널에 그린이 떡상해줘야 이 포스팅이 사는데 지금 죽쑤는 거 보니 마음이 아프다. 좀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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