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cambio.com 입사하다(1)

헬조선을 떠나 아일랜드에서 스타트업 기업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인 이야기

by Honkoni

이렇게 될 줄 은 아무도 몰랐다.

2015년 6월 중순에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6개월 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9월 초쯤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2014년 11월 말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훌쩍 아일랜드로 떠나왔다. 한국이 싫어서 아일랜드로 도망쳐온 서른 살 넘은 직장인이 할 수 일이라고는 스펙을 쌓기 위해 어학연수를 떠나 온 열 살쯤 어린 한국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생비자를 받기 위한 25주간의 어학원 등록과 홈스테이 생활의 시작. 7년간의 직장생활의 끝에 가난한 유학 수준을 면할 수 있는 돈이 수중에 있었으나 이미 사회의 맛을 아는 전직 직장인에게 소득 없이 저축을 쓴다는 것에 항상 죄책감과 일종의 불안감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혹독한 아일랜드의 겨울을 보내고, 온 천지에 수선화(Daffodil) 가득한 기분 좋은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여름 같지 않은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지루할 것만 같았던 6개월간의 어학연수가 끝이 났다. 쳇바퀴처럼 무한 반복되었던 한국의 삶이 싫어서 떠났고 여기서도 랭귀지 스쿨과 홈스테이 집을 반복하는 삶은 계속되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삶이 절망적이진 않았다. 한국에서는 하루 24시간 꽉 채워서 바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난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멈 출 수가 없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돈은 계속해서 벌고 있었고, 아껴가면서 적지 않은 부분 적금을 들고 있었지만 나는 좀처럼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최대 1년만 한국을 벗어나서 살아보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떠나온 아일랜드에서의 삶은 단조로웠다.



한국처럼 숨 막히진 않았지만 학생비자로 인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이었다. 1년 동안 단조롭고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학원이 끝나자마자 나는 본격적으로 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내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1. 지금이 6월 중순이니 아일랜드의 많은 한국 유학생 패턴이 그러하듯 한두 달 유럽여행을 한 후, 8월 말이나 9월 초쯤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이후는? 모르겠다.

sticker sticker

2. 나는 아시안 Look을 갖고 있으니까 뭔가 에지 있는 외모로 TV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여 아시안 모델이 필요한 찾는 곳에 지원하여 드라마, CF모델 등에 도전해 본다. 그러나 가능할까? 내가 원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역시 모르겠다

sticker sticker

3. 그냥 티켓팅 하고 2주쯤 뒤(아일랜드 여행 후) 한국으로 돌아간다. 여기 더 있어서 뭐해. 할 것도 없고, 돈도 없고, 그냥 6개월간 어학 연수했다고 이력서에 한 줄 더 넣고 다시 한국 가서 job을 찾아봐야 하나? 인생을 바꾸자고 아일랜드 왔건만 역시 인생을 바꾸는 건 불가능해. 가장 편하고 익숙한 결정이기도 하다. 대충 포기하고 사는 거. 그러나, 문제는 그러기가 너무 싫다는 것!!!!!! 이렇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돌아갈 거 였으면 애초에 온 것 자체가 실수라는 것.

sticker sticker

스무 살 이후 처음으로 난 6개월을 한량으로 살았다.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무엇보다 내 인생에 조바심을 갖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다. 영어공부는 사실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복잡하고, 바쁘고, 좇기고, 우울했던 나의 지난 서울생활에서 벗어나서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찾고 싶었다. 그렇게 비우고 비워내다가 비자법으로 내가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이 6개월이 체 남지 않게 되자 다시 조바심이 저 밑 어디선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랭귀지 스쿨은 6월 중순에 마친 나는 난생 처음 하루 종일 생각이라는 것만 하고 지냈다. 어차피 나올 수 있는 결론은 대안 3개 중 하나를 선택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 일주일쯤 뒤 내가 내린 결정에 운명을 맡기기로 하고 나는 스코틀랜드행 비행기표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