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인듯, 별거 아닌 계란볶음밥

by Honkoni

식용유, 찬 밥 한 덩이, 계란 2개, 소금 한꼬집 이면 재현되는 엄마의 맛,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맛이 재현된다. 나와 오빠는 아빠가 안계신 주말이면 엄마릉 붙들고 "엄마, 계란볶음밥 먹을래" 이러면서 식탁 앞에 턱을 받치고 앉았다. 가스불을 켜고 10분이 채 넘기지 않고 식탁 위에 김이 피어 오르는 후라이팬에서 고소함이 넘쳐 흘렀다.

기름에 튀기듯 볶아진 쌀밥과 계란이 소금의 짭쪼름함과 잘 어우러져서 입에서 잘게 부스러졌다. 밑반찬은 김치와 김. 오빠는 늘 김치와 김을 곁들엿지만 난 밑반찬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계란볶음밥 자체가 반찬이 필요없는 완성된 음식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엄마 없이도 끼니 정도야 오빠와 내가 알아서 챙겨먹을 나이가 되었을 때 오빠가 나한테 주문한 음식도 항상 계란볶음밥 이었다.

"어이 동생! 우리 계란볶음밥 이나 해먹자."

해먹자는 말은 곧 동생인 나보고 하라는 명령의 다른 표현이었으므로 입이 삐죽 나오기도 했었다. 그래도 나는 계란볶음밥 무기 삼아 오빠에게 딜을 치기도 했다. "신해철 앨범 샀지? 나 주말동안만 빌려줘. 그럼 얼른 만들어 줄게." "아빠한테 말 좀 잘해서 나 휴대폰좀 사게 도와줘. 우리반 애들은 다 있단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유독 서먹 했던 우리 남매가 10대 시절 가장 말을 많이 한 순간은 계란볶음밥을 둘러싼 협상이었다.

"어때, 맛있어?"

나름 요리랍시고 열심히 밥을 볶아내서 오빠앞에 한 상 차려놓으면 오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엄마가 한 것 보다 훨씬 맛없어." 라고 밉상맞게 대꾸하면서도 한 그릇을 다 비워내곤 했다.

스무살 이후 집을 떠나서 살면서 몇 년간 계란볶음밥은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다시 내 인생에 떠오른 건 독일 에서 오페어로 반 년동안 살 때 였다.

나는 파독 간호사의 딸 집에 숙식하며 3살 짜리 어린 아들 벤의 한국어를 책임져야 했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딸 내외와는 독일어로 대화했지만 아들에게는 한국어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친숙해 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카톡도 없던 시절, 지금처럼 SNS 가 일상생활로 자리 잡기 훨씬 전의 일이라 난 한국에 있는 가족 및 친지들과도 월 2회 정도로 상당히 제한적인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상태였다. 벤이 내 말을 알아 듣던 말던 나는 그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로 떠들어 대며 한국어 향수병을 좀 덜어냈다.

"벤, 누나가 오늘 독일어 어학원 갔는데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었어. 나 좀 한심하지?"

"벤, 누나 그냥 한국 갈까? 오늘음 엄빠 아빠 생각도 많이 나고 좀 그렇다."

나는 벤을 붙잡고 일기장에 얘기하던 이런 저런 얘기를 떠들어 댔는데 벤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누나~ 자동차~ spielt mit mir (나와 놀아줘)" 이러면서 나를 제 방으로 끌고 가는 식이었다.

향수병의 최고봉은 한국 음식이 아닐까. 나는 김치도, 떡볶이도, 삼겹살도 아닌 계란볶음밥이 눈 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대학교 자취할 땐 먹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음식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입 안에서 터지는 밥알의 탱글한, 소금 간이 적절히 베인 계란의 짭짤한 그 맛이 그리워 시름시름 알았다.

내가 살던 함부르크 외곽은 터키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안 가본 골목으로 걷던 중, 허름한 아시아슈퍼를 발견했다. 바로 태국 쌀을 발견하고는 머리에 불이 띵- 하고 켜졌다. 얼추 비슷하게 나마 계란 볶음밥을 흉내낼 수가 있을 것이다.

100g에 10유로가 넘는 쌀을 사 들고 집에 와서 냄비밥을 지었다. 비록 동남아 쌀이더라도, 한국 쌀처럼 끈기와 윤기가 없더라도 밥의 모양새만 갖춘다면 계란볶음밥의 맛이 구현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흥분했다.

결과는 대성공! 간절함이 입맛까지 착각하게 했는지는 미지수 이지만 나는 볶음밥을 해서 벤고 함께 나눠 먹으며 계속 엄마를 찾았다.

"엄마~ 너무 맛있어. 엄마~ 나 계란볶음밥 해먹었어. 벤, 어때? 맛있어?"

"lecker!(맛있어)"

정말 별거 아닌 음식이지만 벤의 부모님은 아들 벤으로 부터 내가 한식을 만들어서 간식으로 종종 "요리"를 해줬다는 얘기를 들었는지 알바비까지 올려주셨다. 한국의 전통음식을 알려줘서 정말 감사하다는 얘기에 얼굴이 빨개진 채로 '이건 전통음식이랑 거리가 멀고 그저 엄마표 음식인데' 라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여러가지 고급음식을 법인카드로, 선배 카드로, 내 카드로 부지런히 긁어가며 먹느라 입맛은 예전보다 까다로워지고 높아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엄마표 "계란볶음밥"그 별것 인듯 별거 아닌 별거 같은 그 음식을 잊지 못한다.

사람은 과거의 한 때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왕년의 가진거 없지만 꿈과 배짱이 두둑했던 "나"를 방패삼아서 미래를 제대로 살아보고 싶을 때, 나는 계란볶음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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