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회사를 그만 둔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고백하건데 이십대 중반부터 시작한 회사생활의 거의 대부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보냈다. 사원 2년차에 접어 들었을 때부터 나는 내가 하는 업무에 온갖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그렇게 8년 이상 더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작년에 그만 둘 걸, 내년에는 그만 둘 수 있을까’이런 생각만 수도 없이 했다.
정말 부지런하고 추진력이 좋은데 운과 재능이 받쳐주는 사람들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글을 쓰고 공모전에 도전도 하며 심지어 당선도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죽기보다 싫어하는 회사생활은 나에게 있어 양날의 검이었다. 알량한 회사 스트레스 조금만 견디고, 야근만 견디고, 좀비처럼 왔다갔다 출퇴근만 하면 매달 고정급이 꽂힌다는 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시작’을 늦출 수 있는 아주 합리적이고 그럴싸한 핑계거리가 됐다. 나는 꿈을 품고, 현실을 비관하면서도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마치 비만인 사람인 나는 살만 빼면 연예인 외모쯤 된다며 스스로를 긁지않는 복권이라고 부르며 위안을 삼는 것과 같았다.
왜냐? 바쁘기 때문이었다. 어제는 야근을 했고, 오늘은 끝나고 요가 수업이 있으며 내일은 퇴근 후 마트에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시작을 못하는 핑계는 충분했다.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알량하고도 소중한 나의 고정적인 수입을 포기하고 나서야 더 이상 핑계 댈 곳이 없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다독(多讀)하고 다작(多作)하면 시간이 나를 작가의 길로 인도해 줄 것 만 같았다. 수입원 하나 없이, 하루 24시간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으니 소설과 드라마 모두 장르를 넘나들며 맘껏 이야기를 펼칠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더 많아진 만큼 쓸데없는 생각과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넷플렉스에는 참조해야 할 드라마가 넘쳐 났으며 24시간을 통제하기는커녕 남들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에 멍하고 멍청하게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정신을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실업급여 수령 기간도 끝이 나고 미취업 상태로 너무 오래 있는 바람에 원래 하던 업무를 계약직으로라도 일할 수 없게 된 현실을 깨달은 이후였다.
일정한 수입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도 못한 것처럼 통장의 잔고를 통해 월세니 생활비니 이것저것 제하면 몇 달 버티지 못한다는 강력한 생활고의 압박이 나로 하여금 뭐라도 자꾸 쓰게 했다. 큰 맘을 먹고 드라마에 도전했다. 작법서를 사다가 읽고 내 속에서 응어리 지다 못해 뭉개진 이야기를 담아냈다. 반 년 간 크고 작은 드라마 단막 공모전에 떨어진 이후에 드라마 아카데미 학원에 등록해서 작법을 제대로 배우고 또 도전했다. 또 떨어졌다. 그 와중에 카카오페이지 공모전 공고를 보았다. 드라마는 아니지만 소설이든 에세이든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요가에 관한 이야기를 묶어서 분량에 맞게 제출했다. 최종심까지 올라서 내심 기대했으나 또 떨어졌다. 2018년 8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나는 계속 쓰고 계속 떨어졌다. 시작은 굵직하고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공모전 도전으로 창대했으나 자꾸 떨어지다 보니 눈은 하염없이 낮아져서 경쟁률이 낮아 보이는, 듣도 보도 못한 지방 자치단체 주관 공모전까지 도전 했으나 죄다 떨어지는 미약한 결과를 낳았다.
회사 생활 내내 그렇게 가슴에 글쓰기 열망을 품고 살았는데, 내가 회사를 못 견뎌하고 회식을 싫어하고 유독 사회생활을 못하는 이유를 ‘나는 글을 쓸 사람이다’ 라는 그럴싸한 핑계만 갖고 있었는데 이젠 붙들고 있던 이 동아줄이 황금은커녕 속이 옴팡 곯은 썩은 동아줄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에서는 또 온갖 잡스러운 상념들과 후회로 가득차서 몇 주 째 불면의 시간을 보냈다.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도 매일 아침 다시 시작한 다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연애와 관계 부부생활에 관한 에세이에 관한 글을 쓴 뒤 열 몇 군데 출판사에 투고했다. 역시나 출판사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며 거절 메일을 받았다. 내 상황과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고 한껏 쪼그라들다 보니 정중한 거절 이메일에도 상처 받았다.
‘뭘 이렇게 구구절절 원고를 거절하냐...그냥 심플하게 씹어주지’
그렇게 꾸역꾸역 투고한 곳이 10군데를 막 넘길 무렵 한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글이 흥미롭다며 나를 ‘작가님’이라 부르며 만나 뵙고 싶다고 했다. 워우- 나보고 작가란다.
첫 번째 미팅 후, 나를 작가로 불러준 출판사와 첫 계약을 따냈다. 지금은 열심히 수정원고를 보내면서 합을 맞춰가는 중이다.
결국 수동적으로 끌려 가기만 했던 내 인생이 퇴사라는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연 것을 시작으로 뻘짓하기, 글쓰기, 비어가는 통장 잔고에 자극 받기, 좌절할 새 없이 공모전에 도전하기, 공모전이 안되니까 출판사 문을 직접 두드리기 등등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작가의 ‘시작’을 만들기 위한 온갖 발길질이었다.
이번 작가로서의 시작이 또 나에게 수많은 기회와 크고 작은 실패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내가 계속 살아가는 한 인생은 수많은 시작의 연속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