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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koni May 08. 2022

생거진천

(feat.  사거용인)

물이 많고,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짓기에 좋아서 예로부터 생거진천, 즉 살아서는 진천에 사는게 좋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했다. 

청주에서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출신이 충청도 인것과 청주 주변의 크고작은 도시, 동네들을 아는 것과의 간극은 상당하다.

마치, 미분이니 적분이니 배우고, 풀었고,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절기에 배웠는지를 몸으로 또렷히 기억하는 것과 그래서 지금 풀 수 있냐 없냐는 묻는다면 연필을 가만히 쥐기만 한 채 풀어나갈 수 없는 현재의 모습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로 진천은 나에게 서울 태생의 친구들보다야 가깝겠지만 놀러갈 생각조차 안해본 낯선 시골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부모님을 뵙게 위해 청주를 내려가다가 생거진천이라는 진천군청의 대형 광고판에 홀리듯이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얼떨결에 진천의 걷기 좋은 길로 불리우는 '농다리'를 향했다. 

농다리는 붉은 돌을 쌓아서 만든 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곤 긴 돌다리로 통하는 문화재이다. 농다리를 천천히 왔다갔다 하면서 빠른 물살에 손을 담가 보기도 하고, 농다리 뒤로 펼쳐지는 절경에 대고 손 카메라를 만들어 눈을 갖다댔다. 눈에 꽉찬 산 새, 하늘, 반짝이는 물결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상하다. 슬픈 것도 아닌데 가슴께에 아릿하면서 눈물이 눈에 가득 차오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건넜을까 하는 생각과 아무리 산을 깎고,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내 어린시절의 추억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농다리는 문화재 라는 이름아래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생거진천 사거용인을 가만히 중얼거린다. 죽은 뒤에야 용인에 살든, 구천은 떠돌든 모르겠고, 살아 생전에는 왜 진천을 살기 좋다고 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더여 질 정도로 조용하게 나를 감싸는 진천의 기운에 뜻모를 포근함 마저 느꼈다. 

농다리르 지나서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데크가 넓게 펼쳐져 있고 끝까지 따라가면 구름다리가 나온다.

때마침 군청에서 농다리를 배경으로 한 그림엽서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고 방명록을 남긴 뒤, 소중한 한정판 엽서 2장을 챙겼다. 


국내 여행 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계획에 없었던 갑작스런 일탈, 기분좋은 일탈로, 가깝지만 먼 동네를 찾은 후에, 내 마음속에서 언젠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로 각인 되는 순간, 여행은 성공적이다. 

외국의 유명 여행지에서 처럼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았으니 이 관광지에서 뭔가 뽕을 뽑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다. 소소하고 의미있는 추억을 자연스럽게 새기고, 계절이 바뀔때마다 농다리를 또 찾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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