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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Feb 02. 2021

판사 탄핵 소추의 시작

2018년 11월 전국법관회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경기 용인정)이 2월 1일 오후 <법관 임성근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 의결 정족수인 151명을 넘긴, 161명이 함께 했습니다.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면 72시간 안에 표결해야 하기 때문에 오는 4일 목요일에 국회 표결이 이뤄질 걸로 보입니다. 만약 통과된다면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이라는 기록이 세워집니다.



물론, 꼭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무기명 투표라는 점을 이용(?)해, 탄핵소추안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실제로는 반대표를 던지는 의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소추안이 부결되면 민주당은 개혁 대 반개혁 세력으로 분열되고, 실망한 지지자 일부가 반대표를 던진 의원 색출에 나서면서 이낙연 대표의 리더십은 더 흔들릴 우려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 소추안 통과는 이탄희 의원에게뿐만 아니라 당 지도부에게도 큰 과제가 됐습니다.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 보고 오기


물론, 애초 공동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정성호 의원, 이상민 의원 등이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도 없진 않습니다. 소추안이 151표 이상을 얻는다면 헌법재판소에 회부되고 그때부터는 헌재의 시간, 사법부의 시간입니다. 입법부인 국회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재판관에 대한 탄핵 소추안에 대해 헌재 재판관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이번 탄핵소추안과 관련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회의'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전국법관대표회의입니다. 2018년 11월에 열렸는데요. 사법농단 판사들에 대한 국회 탄핵 얘기가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이번 국회의 판사탄핵 소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때 어떤 말들이 오간지 당시 회의록을 구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주목해서 봐야 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전국 각급 법원 판사들의 회의체인데 2003년에 처음 소집됐을 때는 비정기적인 일종의 '워크숍'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2018년 4월에 공식 기구됐습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중요한 이유는 이 회의가 전국 판사들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기구이기 때문입니다. 회의는 1년에 두 번 열리는데 이 회의 참석을 위해서 전국 각 법원 판사들은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일종의 대의원 판사를 법원별로 두 세 명씩 뽑습니다. 성원은 117명 . 이 숫자 안에 대구고법 대표 판사, 서울중앙지법 대표 판사, 수원지법 대표 판사, 대전지법 대표 판사, 특허법원 대표 판사, 대법원 대표 판사 등등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결과의 무게는 가볍지 않습니다. 판결은 아니지만,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초, 검찰의 판사 사찰 문건과 관련해 '법관회의에서 입장이 나올까?'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오늘을 예상했을까.


다시, 2018년 11월 18일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날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는 전례 없는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대구 지법 안동 지원 판사 6명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을 탄핵하자고 제안한 데 대한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일선 판사들이 안건을 제시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래는 회의에 참석한 몇몇 판사들의 주요 발언입니다. 



A판사

"우리 법관들은 외부에 대해서는 엄정한 잣대를 미덕으로 얘기하면서 업무를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친인척들의 부탁에 대해서 냉정하게 거절하고 엄정한 기준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과연 그와 같은 엄정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지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B판사

“비록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더라도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점에서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C판사

"이 정도 사실 관계가 나온 이상 판사로서 거기에 대해 판단이나 확인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고 판사 개인이 무조건 시키는대로만 하지 않고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의안에 대해 논의하고 결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D판사

우리 법관대표자회의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법관 독립 침해 사안에 대한 조치 요구 아닌가요? 공식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는데도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면 과연 대표회의가 왜 존재하는 것인가...”


E판사

"개정된 우리 법관대표회의 내규에 따르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사법 행정권 남용 또는 법관 독립 침해 사안에 관한 조치 요구 입니다. 대구 안동지원 판사님들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이와 같은 우리의 임무가 있음에도 대표회의가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대표회의가 왜 존재하는 것인가...큰틀에서 보면 법관대표회의가 해야 할 임무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봐 주셨으면 합니다."


F판사

우리가 계속 뒷북을 치면 국민들은 우리 진정성을 알아주지도 않을뿐더러 자정의지를 가진 집단이라고 전혀 생각해주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자정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G판사 

"올해 이런 일들이 자꾸 결의안건으로 올라와서 곤혹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법관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공식적인 판단을 해주는 것이 맞습니다. 누군가는 판단을 해줘야 하는 것이고 안건으로 올라온 이상 미룰 수도 없습니다.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의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토론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H판사 

"우리 법원의 경우 설문조사에 참여한 8명 가운데 7명이 반대의견이었습니다. 반대 의견 중 권력분립원칙상 국회에서 해야 되는 일을 법원에서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나 사법부의 내분을 보여줄 뿐이지 국민신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I판사

"저희 법원 의견 수렴 결과 선언적 의미에서 우리의 반성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신뢰 회복보다는 법관들이 스스로 이런 부분들을 섣불리 단정지어 낙인효과만 주는 것 아니냐, 향후 수사 절차나 사법부 상대로 한 여러 조치들이 취해질 때 이게 어떤 도움이 될지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J판사

"헌법기관인 법관 개개인을 대표하는 전국 법관대표회의에서 이런 정치적 논쟁으로 깊이 들어가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K판사 

"사법농단 판사들의 행위에 대해서 '헌법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는데 그 헌법적 판단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뭔지를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 의안을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L판사

"저도 '헌법적인 판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고 국민들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의결한다면 명확한 언어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헌법 위반이다 vs. 아니다

정치적 논쟁이니 빠지자 vs. 우리 입장을 밝혀야 한다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 전국 법관들이 입장을 밝힐 것인가, 밝힌다면 어느 수위로 할 것인가?


논의를 거듭한 끝에, 판사들은 사법농단에 대해 아래와 같은 공식입장을 채택했습니다. 찬성 53 : 반대 43 : 기권 9. 찬성표가 10표 더 많았고 결국 아래와 같은 입장문이 가결됐습니다.  



<재판 독립 침해 등 행위에 대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견>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하여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하여 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 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 절차 외에 탄핵 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         


"'재판 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는 징계 절차 외에 탄핵 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이다"라며 사법부가 입법부에 사실상 탄핵소추를 점잖게 요구한 겁니다.  마치, 남 일 얘기하듯 하고 있지만 엄정중립한 판사들의 말 임을 감안하면 꽤 적극적으로 의견 표명을 하고 있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그리고 전국법관대표회의 2년여 만에 국회는 2월 1일사법부의 요청에 응답했습니다. 전국법관들의 요청에 대한 입법부의 응답에 대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어떻게 응답할까요? 이탄희 의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있는 듯 합니다. 이탄희 의원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의 참고자료 목록에도 이날 전국법관대표회의 회의록이 들어가 있습니다.    


**<법안으로 세상읽기>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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