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나들이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아팠던 긴 겨울, 봄이 방문했다. 모처럼 환해진 방의 커튼은 부풀어 오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무작정 떠나고 나면 다시 숨통이 트이고 마음에 윤기가 생길 것 같았다. 2박 3일간의 친구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이다.섬은 나를 낮게 부른다.
밤 9시가 넘어 제주공항에 닿으니 봄비가 내린다. 제주는 올 때마다 새롭다. 바람 많은 제주답다. 옷자락이 사납게 휘날린다. 숙소는 서귀포에 있는 그린빌라 호텔이다. 리무진 버스로 한 시간 이십 분 걸리는 거리다. 안개와 어둠이 제주를 숨겨놓은 것 같다. 이미 도착한 친구네 마중을 받았다.
파인애플로 안주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행은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갈등 문제도 부드럽게 넘어간다. 집에서 부부가 5분 이상 대화하면 싸움이 나 집안에 들어가면 입을 닫는다는 선배 말이 생각난다.
깊이 단잠을 자고 나니 상쾌한 아침이다. 신혼여행 때는 단체버스로 다니며 일정에 쫓겨 사진만 찍은 기억이 난다. 구석구석 여유 있게 보고 싶어 렌터카를 이용했다. 가지 않은 지역 위주로 일정을 잡고 우선 분재공원으로 갔다. 방언 좀 알려달라고 하자 “오딩허난 폭삭 죽었소”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았다.)고 했다. 토속적인 말이나 외국어처럼 생소하다.
조선왕조는 섬을 떠나지 못하게 토박이들에게 출륙 금지령을 내려 중앙과는 단절된 문화권 속에서 독자적으로 고유의 문화를 키워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뭇 다른 제주만의 민속과 방언이 생긴 것이다.
길가 옆 낑깡 나무 열매가 낑낑거리며 매달려있다. 동양의 하와이답게 남국의 정취가 느껴진다. 서너 개 따보라며 세워주는 친절에 먹어보니 달고 맛나다. 저 멀리 운무 속의 한라산이 보인다. 구름 걷힌 한라산을 보는 것도 운이 좋아야 한다. 서귀포에서 바라보면 여인이 누워있는 모습 같다고 하니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거리에서 방풍 나무를 보니 바람 많은 제주를 실감한다. 또한 밭들은 돌담으로 경계를 이룬다. 가만 들여다보니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데 태풍에도 끄떡없단다. 기하학적이고 미적인 솜씨가 놀랍다. 바람도 막아주나 말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 어른들의 삶의 지혜란다. 밭담과 집 담, 산소 담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분재 예술 공원의 분재마다 갓난아이를 돌보는 정성을 읽을 수 있다. 나무 하나마다 인간의 의지를 이토록 아름답게 승화시켜놓은 것이 놀랍다. 예고에서 시를 가르칠 때 분재처럼 여러 생각이 들더라도 한 개의 생각의 줄기를 남겨두고 가지치기로 명징하게 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진의 고수가 되면 덧셈보다 뺄셈에 더 전력을 기울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제주군 안덕면 제주조각공원으로 가는 도로가 막힘 없이 시원하다. 도로가 늘 주차장 되는 도시와 다르다. 눈도 시원해진다. 고층 건물이 없어 시야가 탁 트인 채 상쾌한 공기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멀리 뱀을 잡으려고 그물을 쳐놓은 모습을 보자 어릴 적 산토끼 잡던 추억도 더듬어 본다. 길가엔 억새풀이 무성하다. 짚으로 새끼를 꼬아 지붕을 갈던 뭍과 달리 제주에선 억새 풀로 새끼를 꼬아 지붕을 갈아주곤 했던 모양이다.
넓은 들판에서 풀을 뜯는 말들의 목가적 풍경은 수채화다. 아름다움에 허기지던 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한라산의 높이는 1950m다. 한라산의 높이를 기억해내는 방법은 ‘한번 구경 오십시오’라니 기사의 말에 위트가 넘친다. 창 너머로 산방산이 보인다. 산방산 자락 밑으로 개나리와 유채꽃이 봄축제를 열고 있다. 노란 물결이 황홀함을 자아낸다. 쉬어가라 부르는 꽃들의 부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잠시라도 유채 향기에 푹 빠져보았다.한라에 기대어 젖은 마음을 말린 것 같았다.
조각공원 전망대를 오르는 오솔길이 아늑하다. 손님이 없어 문을 닫던 점원이 우리를 반긴다. 제주도도 해외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예전 같지 않다고 제주에 펜션을 낸 지인이 투덜거린 적이 있다. 따끈한 차 한 잔이 바람에 시달린 몸을 녹여준다. 차는 밥과 달리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을 정겹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실 나온 기분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차를 마시는 시간 같다. 카페 앉아 창 너머로 화순 바다를 굽어보는 풍경이 괜찮았다. 폭풍주의보로 정박해 있는 중국어선들이 멀리 떠 있다. 카페에 음악이 흐르고 바람소리가 하모니를 이룰 때 다른 한 쌍이 들어선다. 신혼부부다. 카페 안이 다 환해진 느낌이다. 박수를 쳤다. 제2 인생을 출발하는 그들에게 축복을 담아 손바닥이 뜨겁도록 응원을 했다. 이상하게 나는 결혼식장 가면 눈물 난다. 앞으로 험난한 결혼의 바다를 헤쳐 나갈 청춘들에게 좋은 일만 많기를 바라는 선배의 뜨거운 기도인지도 모른다. 해외에 빼앗긴 신혼부부가 그만큼 귀해진 것인지 카페가 신이 났다.
조각공원을 내려오다 작은 연못가에서 만난 오리 떼가 내 곁에 몰려든다. 애정이 그리운 모양이다. 시 창작 지도 시간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오리를 불러오곤 했다. 오리는 우아하게 물가를 헤엄치는 듯 보이나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쉼 없는 발길질을 한다. 시를 쓰려면 오리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쉼 없이 공부하고 사유하고 경험해야 한다고 했었다. 생명들은 저마다 자유를 구하고자 한다. 저 오리도 갇혀있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이곳을 찾는 상춘객들에게 자리지킴에 충실하면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운명인지도 모른다.
입구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부모나 자식 남편 형제가 죽을 때마다 손가락 두 마디씩 자르며 죽은 자와의 고통을 나누는 정표로 삼았다는 기이한 풍속 사진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설록차 재배지역을 지나면서 아침마다 일어나 녹차 한잔으로 시작하는 나의 하루가 생각났다. 용머리 해안에 나오면서 제주민들의 생업이 궁금해진다. 자연풍광은 신비의 섬처럼 천혜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척박한 땅에서 살기는 힘겨웠을 것이다. 국내외 관광지로 각광받아 60%는 관광업에 종사하고 40%는 황금 작물(귤,유채, 고구마 등)이 삶의 주름살을 펴준다고 운전기사는 전한다. 저 멀리 마라도가 보이고 형제섬도 보이는 바닷가다.
봄날이라고 하나 아직은 햇살이 스산하다. 태왁(뒤웅박)을 껴안고 주저함도 없이 차가운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들의 모습이 가슴 뭉클하다. 엄마의 힘이다. 남자보다 강하고 부지런한 이 섬의 여인들의 의타심 없는 모습이다. 제주 섬은 해녀들의 억척스럽고 강한 삶이 지켜나온 것이 아닐까. 남자들은 물론 멀리 배를 타고 나갔다거나 전쟁터로 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등학교를 시골에서 마치고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나를 책임지는 것은 오로지 나,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을 입학한 불효의 시작이었다. 대신 등록금 생활비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검소와 성실은 기본이었다. 서울이라는 바다를 나도 해녀들처럼 억척스럽게 아르바이트하며 서울살이를 견디었다. 친척 집과 자취와 신혼인 오빠 집에 두루 거하면서 불편을 겪었다. 그때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사람이 저녁이면 돌아갈 따스한 집이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래도 휴학하지 않고 4년 만에 혼자 힘으로 졸업했다. 그때부터 삶을 스스로 꾸려 가기 위한 가계부를 적고 자립정신을 온몸으로 밀고 가며 배웠다. 제주 갈매기 떼가 하늘을 맴돌고 있다.
송학사 분화구로 가는 해안가에서 일본 사람이 포를 쏘아 만들어졌다는 동굴 ‘가미가제’에 갔다. 비바람에 자연스레 깎여 나간 흙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장관이다. 바위에 파도가 부딪혀 부서진다. 동굴 안을 들어가 보니 흙으로 되어있다. 무너져 내리지 않는 자연의 조화와 힘이 경이롭다.
살면서 동심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한다. 파도를 따라 걷는다. 제주돌도 보고 조개껍질도 줍고 성게도 딴다. 제주 땅의 모든 돌이 놀러 왔다가 바다의 아름다움에 그대로 머문 듯 돌무덤이 운치를 자아낸다. 난 모래 위에 내 마지막 꿈을 그렸다. 바다 내음을 마시니 배고픔도 모르겠다. 마음에 찌든 때도 어떤 감정들도 씻어내고 관광식물원인 여미지로 향한다. 가는 길에 설문대할망과 이어도에 관한 전설을 들었다. 전설들은 흥미롭다.
왜구의 노략질이 끊이지 않던, 조선시대 죄인들의 유배지로 눈물과 한숨이 얼룩진 곳이 제주다. 특히 4.3 사건의 비극과 6.25 피난민들의 참상을 함께 했던 곳이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짓눌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들이 전설에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여미지에는 봄나들이 나온 인파가 많았다. 봄내음 전해주는 꽃의 화려함이 풍성하다. 전망대에 오르니 하늘과 맞닿아 내가 서 있다. 서울에선 내 하늘을 가지고 싶어서 내 집 마련을 하는데 공동 아파트에 살다 보니 그마저도 어렵다. 고층빌딩에 조각난 하늘을 보다가 예와 제대로 푸른 하늘을 만끽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정답다.
잠수함으로 떠나야 한다는 기사의 서두름에 차에 올랐다. 서귀포 신시가지를 지날 때 회색 아파트 숲이 들어왔다. 환상의 섬 제주가 인간들의 욕심과 파괴로부터 망가지질 않길 바라며 서귀포 항구에 닿았다. 비릿하다. 내 고향 서해 냄새와 닮았다. 지금은 메워진 갯벌이나 고향 갯벌에서 놀던 추억이 떠오른다. 나의 감수성에는 서해가 흐른다.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준 피는 서해나 들판이나 자연일 것이다.
폭풍우로 잠수함은 내일로 미루어졌다. 여행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인생 같다. 비가 오다가 개인길도 가고 다시 비도 오고 바람 불고 흐린 길도 간다. 길도 잃고 여정을 바꾸는 일도 생긴다. 짐이 많으면 여행길에서는 고달프다. 인생도 짐이 많으면 고달프다. 여행에선 쓰레기를 버리는데 과감해진다. 인생도 쓰레기 같은 것을 떠안고 살고 있다. 리모델링 하면서 버리는 일만 6개월을 했다. 심플하게 살아야 사람이 주인이 된다.
오늘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약천사로 다시 향한다. 비포장길은 덜컹거린다. 허기가 약간 느껴진다. 인간의 파괴가 아직 닿지 않는 자연 모습이 펼쳐진다. 스님이 안내와 설명을 해주신다. 잠시나마 속세의 잡념을 잊는다. 마음을 내려놓는 下心(불교에서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을 한다. 한발 한발 걷는 것이 마치 萬行(불교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처럼 여겨졌다. 손수 그린 탱화와 아파트 10층 높이의 기둥 없는 건축 방법이 인상적이다. 운전기사가 구수한 음성으로 들려주는 <오돌또기>민요를 들으며 여정을 마쳤다.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것과의 만남도 있지만 나만의 호젓한 시간을 가져보는 데도 있다. 어둠이 깔린 거리지만 친구와 시장으로 갔다. 이곳 사람들의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항공모함이란 클럽에서는 취기와 신나는 춤의 분위기가 있었다.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춤꾼이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춤이 좋다. 대학 시절 1학년 때 치어리더로 활동했다. 타고난 춤꾼이라고 선배가 칭찬했다. 한 문우는 내가 추는 춤만큼 시를 쓰면 성공할 거라 하기도 했었다.
다음날 잠수함으로 가기 전 허니문 하우스에 들렀다. 일행이 간단한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혼자 봄 처녀라도 된 기분으로 둘러본다. 다시 20대가 된다면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수로 결혼을 한다면 아이는 낳지 않을 것이다. 실수로 아이를 낳는다면 아들은 낳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아들들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가. 오죽하면 취업포기 연애포기 결혼포기 자녀포기, 아파트포기 5포 세대가 탄생했을까. 아들만 결혼해도 우린 서로 성공했다고 친구들끼리 축하한다. 억도 아닌 수십억 아파트를 만든 어른들의 잘못으로 내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청춘들이 안쓰럽다. 스펙만 쌓다가 졸업을 미룬다. 취업 안 되니 대학원 진학하고 고학력, 캥거루 가족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가 너무 크다. 좋은 일자리 만드는 기업의 투자도 줄고 정치는 분열과 싸움만 하는 사이 청년들의 미래는 없다. 저출산이 왜 오는지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어른들은 안다. 문단 선배는 오죽하면 이번 생에 딸 하나 둔 게 젤 잘한 일 같다고 할까.
잠수함이 머물 문섬을 향해 떠나는 배에 올랐다. 물보라가 세차게 달려든다. 파란 물감을 쏟은 바다. 옥상 건물 10층 정도다. 수심 31미터에서 보는 바닷속은 맨드라미 산호의 꽃밭이다. 다양한 어패류의 보고답다. 이 아름다운 수중에서 수중 사진작가들이 수중 전시전도 가지고 한국의 바닷속을 널리 알렸다니 자랑스럽다. 40분 동안 44명은 수중을 둘러보며 연신 탄성을 지른다. 스쿠버다이버가 만남의 장소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줄 때는 행복해진다. 자연의 품 안에 드니 천진해지고 순수해진다. 사악한 물은 음흉하나 순수한 물은 예민하다. 갑작스런 눈보라에 탄성이 나온다. 물을 뺄 때 공기가 물방울을 만드는데 그것이 눈보라로 황홀한 착각을 만들었다. 다시 서귀포 항구에 다가갈수록 탁해지는 바다가 안타깝다.
알프스 승마장에서 말도 타고 민속 마을을 둘러보고 요트도 타본다. 싱싱한 회를 길가에 앉은 채로 먹는 즐거움도 크다. 하얀 융단을 깔아놓은 표선 해수욕장에서 백사장에 고생한 발을 넣어보니 발가락이 간지럽다, 발가락 글씨로 ‘제주도에 한 달이라도 살고 싶다.’라고 썼다. 바다가 하늘보다 푸르니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없다.
가로수의 벚꽃이 아직은 꽃봉우리를 머금은 채 있다. 제주는 4,5월이 성우기라 한다. 유채꽃이 바다를 이루고 벚꽃이 만개하여 미의 극치를 이룬다. 벚꽃 만개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이번 여행에선 더 이상 욕심을 부릴 수 없다.
산굼부리를 올라 둘러본 뒤 5.16 도로를 지나 <신비의 도로>로 향했다. 누군가의 발견으로 지금은 <요술의 도로>로 관광객이 다녀간다. 보기에는 분명 언덕진 길이다. 언덕 중간쯤에서 차 시동을 끈 채 있으면 차는 밑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고 위로 올라간다. 물을 부어봐도 거꾸로 위로 물이 흐른다. 분수 외에 어떤 물이 위로 흐른단 말인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길을 착시현상이라는 말로 설명이 안 된다. 고개만 갸우뚱거리며 떠나왔다. 기적적인 일이 인생에서도 얼마나 많이 일어나던가. 나에게 기적은 아들과 딸을 낳은 것이요 또 하나의 기적은 내가 시인이 되어 시집을 여러 권 출산한 것이 아닐까. 내가 힘들 때 종교처럼 혹은 애인처럼 시는 내 곁을 지켰다. 세 번째 기적은 아들과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취업을 하였다는 점이다.
귀로에 오르는 길 제주의 가로수는 참으로 다양하다. 유두화, 벚꽃나무, 개나리, 문주란, 야자수, 귤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제주의 땅은 축복이다. 어디를 가도 신비스럽다. 마음에 윤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