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힘

-내시엔 주인공이 산다. 내가 서사시를 쓰는 이유.

by 안명옥


내게 생업이 아닌 시간이 주어졌다면 나는 아마도 소설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야기에 목말라하는 생활들이 이어졌다. 처음 ‘한국 서사시 연구회’에 들어가 역사 속 소서노召西奴란 주몽의 아내를 만났을 때 난 소서노란 인물에 대해 매력을 느꼈다. 2년 정도 소서노에 푹 빠져서 살았다. 늦은 나이에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에 들어가 잠시 공부를 한 것도 김용범 교수님이 이끄는 서사시 연구회 인연 때문이었다. 한국서사시 연구회 회원전윤호 시인, 최영규 시인, 강수 시인들과 두 번이나 중국을 견학하며 백제와 발해지역까지 살폈다. 소서노가 말을 타고 활을 쏘던 그 광할한 평야를 바라보면서 감동이 벅차올랐다.

넓은 콩밭으로 변한 그 땅에서 소서노를 상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모로 만든 것이 바로 그 땅이란 생각이 들었다. 탁 트인 곳에서 나고 자라면서 작은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남성적이고 대륙적인 기질과 여걸다운 성품이 야생화처럼 길러진 것이 아닐까. 환경의 영향을 받는 인간으로서 말이다. 야생화의 향기와 빛의 아름다움과 단단함과 뜨거움에 한동안 떠날 수 없어 서성거리다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2005년 첫 시집도 서정 시집이 아닌 소서노 장편 서사시집이다. 당시 구멍 시리즈 전작 65편 정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사 시집을 내 처녀시집으로 발간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쿨하고 강인한 소서노는 또다른 나이기도 하고 우리이기도 하며 우리가 닮고 싶은 여성이기도하다. 난 소서노가 무대 위에서 부활하여 현대인들의 가슴속에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 소서노 칸타타 공연을 계명대 강당에서 할 때 딸과 함께 참석해 감동받은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페라 공연도 할 수도 있었지만 공동저작권이란 벽을 만나 작업을 포기했다.

나에게는 다른 건 몰라도 인복은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당시 난 문학의 전당이란 출판사를 낸 김충규 시인을 만났다. 앞으로 계속 역사 속 여성 인물들에 대한 서사시를 쓰고 싶다고 하니 문학의 전당에서 내줄테니 작업을 계속하라고 격려를 받았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나마 소서노가 교보문고에서 당시 베스트셀레에도 들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 문학으로 선정되어 4쇄까지 책을 찍었다. 세상에 공짜로 얻는 것은 없다. 이 책이 나에게 성균문학상(우수)을 받게 해주었다.

그 후 난 두 번째 <칼>이란 시집을 내었고 세 번째로 진성여왕에 대한 장편서사시집을 낼 계획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주말이면 국회 도서관이며 남산 도서관을 뒤지며 사료와 논문을 읽었다. 당시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창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방학을 이용 연희 문학촌에 입촌할 수 있었다. 두 달간 집필실을 지키며 몰입해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란 원고를 퇴고했다. 당시 박범신 소설가가 연희 문학촌에 장으로 계셨다. 그리고 안현미 시인이 거기서 근무를 했는데 어느 날은 방으로 인터폰이 왔다. 방에서 한번도 나오지 않고 뭐하냐고 안현미 시인이 여기 시인들 모여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그 날도 나가지 않았다. 두 아이를 집에 나두고 문학촌에 들어왔으니 주어진 시간을 다해 작업을 마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방 안에 떡국과 사과랑 고구마를 두고 두달을 견뎠다. 진성여왕을 쓸 때는 진성여왕이 되어 살았던 것 같다.

연기자들이 해당 인물을 연기할 때처럼 그 사람이 되어야 감정이입이며 표정과 연기가 살아나듯 나 역시 여성으로서 현대적으로 진성여왕을 재해석하려고 애를 썼다. 진성여왕이 다 나왔다고 출간 소식을 문학의 전당에서 알려왔다.

“감사합니다. 애쓰셨습니다. 제가 밥 사드릴게요. 3번째 역사 서사 시집도 열심히 작업 중입니다.”

함께 밥 먹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서 약속 날짜를 며칠 앞두고 최종천 시인이 김충규 시인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 도저히 믿겨 지지가 않았다. 아주 세게 내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하고 몸에 기운이 없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면서 밥약속을 할 때 김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쓰다 만 세 번째 역사 서사시 원고가 길을 잃고 있다. 다시 일어나 작업을 마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래 글은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를 읽고 최종천 시인이 보내준 글이다. 열심히 읽어주고 글을 보내준 시인의 노고를 생각하며 감사함을 담아 소개한다.

패배한 모성애를 위한 진혼곡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라는 시집 안에서 신라의 여왕 진성과 화자로서의 안명옥 시인은 겹쳐져 있다. 그 겹침은 완벽한 하나로의 겹침이 아니라 슬쩍 적당한 각을 두고 마치 방긋이 열린 문처럼 사이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 긴 시를 쓰게 한 동력은 역사에 대한 것 이라기보다는 은밀하게 母性일 것이다. 아마도, 고통스럽고 고독한 자신의 일상을 시인은 진성여왕을 통해 분석한다. 우리의 도식적인 지식에 의하면 진성여왕은 음란하고 정치를 바르게 하지 못하여 신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여왕이다. 시인은 이렇게 가려진 여왕과 역사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여왕의 내면을 응시하고 조명해 낸다. 그것은 바로 모성이다. 이 모성은 정치적 현실 속에서의 모성이어야 하는 것이다. 진성여왕은 그러나 자신의 모성을 정치화하는 것이 용이 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은 보여준다. 한편 여왕에 대한 세상의 음란 판정에 대하여 시인은 다음처럼 사랑의 본질을 말함으로서 여왕을 긍정한다.

과인은 낭만적 사랑을 하고 싶답니다/ 고통 많은 세상에서 사랑이 구원이랍니다

페하, 낭만적 사랑은 숭고한 사랑과 열정적 사랑을 구분하지요

열정적 사랑이 해방과 의무로부터의 단절을 준다면

낭만적 사랑을 자유와 자아실현의 결합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표현은 여왕과 화자로서의 시인이 같은 처지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왕에게 있어서 자아의 실현과 낭만적 사랑 열정적 사랑은 결국 여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고 동시에 시인 자신이 소망하는 자아실현으로서의 사랑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한 사랑의 실현을 위해 시인은 최치원과 여왕을 만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만나는 공간은 시인의 희망이기도 하고 이미 지나간 역사적 시공간이기도 하다.

진성여왕이 모성을 버리고 부성을 가지고 부권으로서 정치를 했다면 패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녀가 패배한 것은 백성들에게 모성을 베풀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 시인이 시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모성의 패배는 시집 서두에 다음과 같이 진술되고 있다.

농사가 잘되면 땅에 고맙다고 하지 않고/ 하늘에 고맙다고 제사를 지내네요.

땅을 하도 밟고 다니니까/ 땅을 우습게 여기는가 봅니다.

땅처럼 인고가 분명하고 경우가 밝고/ 보은을 아는 경우도 드물지요.

땅이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은 바로 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땅에 씨를 심으면 반드시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한다. 이것은 낳고 기르는 모성인 것이다. 그러나 그 모성은 패배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보다 근원적 의미에서 세상이 되어가는 이치로서의 일종의 변증법과 같은 법칙인 것이다. 모성이 낳고 기르는 것은 창조 그 자체이다. 그러나 모든 창조는 그 창조 자체를 파괴하는 데로 나아가기 마련인 것이다. 인간을 창조한 신이 인간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과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 자신을 썩히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 만든 사물들 상품들 때문에 인간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이러한 이치를 인식하면서 패배한 여왕의 모성을 탐색한다. 나는 시집을 읽고 나서 한 가지가 궁금하다.

그것은 모성을 패배시키는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괴테는 여성성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한 바가 있다. 그건 여성성, 모성이 패배하지 않는 것이 전제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인이 이 시집을 통하여 말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이 시집은 부성에 패배한 모성을 위한 진혼곡이다.


김용범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님은 표사에서 다음과 같이 이 책을 말한다.

안명옥의 서사시는 우리 시대의 시인들에게 주는 경각警覺이다.그는 놀라울 정도의 집중과 몰입을 통해 천 년 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안명옥에게 빙의된 진성은 우리에게 쏜살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지고한 사랑일 수도 있고, 절대적 진리일 수도 있고, 정치적 함의 일 수도 있는 매우 다양한 해석을 전제한 앰비규티ambiguity이다.

애매성과 모호성의 앰비규티가 아니라 다의성의 앰비규티. 그것은 읽는 사람의 시선과 시각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 다의적 의미망을 보여주면서 스쳐 지나간 행간의 의미를 새삼 재음미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안명옥의 힘이다. 서사시는 몇몇 시어나 레토릭의 예술이 아니다.그것은 탄탄한 내러티브의 힘을 보여주는 예술이며 소위 시에서의 스토리텔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르다. 그래서 서정시 지상주의의 시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르이다. 희곡과 시와 서사 내러티브와 역사적 팩트가 통섭된 문화융합의 세계이다. 안명옥이 발견한 것은 바로 그런 영역이다. 그 속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대시가 나가야 할 새 지평이다. 중략

그다음 그녀가 펼칠 또 다른 인물과 사건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이 역시 안명옥의 힘이다.

-이 시대에 무슨 서사시 타령이냐고 한다면 스토리 텔링에 홀린 시인으로서 이야기를 품은 시로 존재를 말하고 싶다.말하지 못한 것들이 시가 되어 흐를 때 이야기는 나를 기억하게 한다.한 편의 시에 한편의 인생이 드라마 찍듯 시를 쓰다보면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터졌다.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란 장편 서사시집은 한국문화예술 위원회 우수문학 도서로 선정되었고 한용운 선생님을 기리는 <만해 님 시인상>과 <바움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뚜벅뚜벅 세 번째 작업을 위해 걸어가야겠다. 짧은 시 말고 긴 얘기 좀 나누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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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전하고 싶은 말은 비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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