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게 아니라 나랑 잘 살고 있는 중
우리 동네에선 혼자 무얼 하는 것이 제격이다. 일산 신도시와 파주지역 경계에 있는 작은 마을, 나는 혼자인게 아니라 나랑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약속도 만들지 않고 난 혼자 잘 놀고 혼자 잘 지낸다. 혼자 산책하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기타치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먹는 혼자의 시간에 충실한다. 외로움이 뭔데? 바빠서 모른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들어오려는데 신내림을 막 받은 어느 보살이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거 때마다 3호선 연장해준다는 것을 미끼로 표만 받아 가는 정치인들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주택정책 발표할 때마다 전국 아파트 가격이 마구 치솟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동네 아파트는 조용해서만도 아닐 것이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네다. 바람 많이 불어 시원한 우리 동네, 아무튼 살수록 좋아진다.
거주지 환경이 건강지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좋은 동네 요건으로 교육 수준, 평균수입, 고용률, 녹지공간이 충분한 곳을 따진다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녹지공간은 충분한 동네다.
아파트 단지마다 가로수로 벚꽃을 심어 3월이면 벚꽃이 마을을 뒤덮는다. 봄밤이 하도 아름다워 퇴근 후 동네단지를 걷는다. 밤공기와 밤하늘을 수놓는 꽃잎들의 자태에 황홀해질 때가 많다. 나만 혼자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 걸까. 내가 이렇게 봄밤을 짝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고등학교 하나와 중학교 하나 초등학교 두 개가 병풍처럼 둘러싼 작은 산이 마치 우리 동네 심장 같다. 그 작은 산에는 둘레 길도 조성되어 있다. 주말 아침이면 딸이 같이 걷자고 나서지만 혼자 걷는 게 좋다고 혼자 집을 나선다. 몸안으로 나무 향기가 스며들어온다. 고요하다. 내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이런 고요가 나를 위로한다. 산에만 오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평온해진다. 예전 직장 잡지사 동료는 아직도 그동네에 사냐고, 왜 옮기지를 못하고 한곳에 말뚝 박고 사냐고 퉁박을 준다.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동네라서 떠나기가 싫어진다.혼자인게 아니라 완전체 모드다.나를 챙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도서관이 집 앞에 있고 도서관 윗길로 오르면 작은 산이 어머니 품 안처럼 받아준다. 피톤치드를 마시며 걷는다. 신록이 우거진 숲을 보면 세상 부러운 것이 줄어든다. 벚꽃이 지천인 봄날에도, 밤꽃 향기가 흥건한 6월과 단풍이 불타는 가을, 심장을 뛰게 만드는 산에 흠뻑 빠진다. 둘레길 조성하면서 여러 곳에 흔들의자들도 두고 운동기구도 하나둘 늘어나더니 제법 동네 헬스장 같다. 혼자 운동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나무도 바라보고 새도 날아와 모이를 쪼고 청솔모와 들고양이도 지나간다. 산책에 나온 사람들이 운동하는 사이 강아지들도 주인 곁에 앉아 혼자 가만히 있는 모습이 명상하는 개 같다.
어떤 중년 부부가 산 둘레길을 손을 잡고 나란히 간다. 보기가 좋다. 어느 노부부가 남편이 앞서고 아내는 뒤를 따라 조용히 걷는다. 그 모습도 아름답다. 하지만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혼자 걷는 이들이다. 불교에서 만행을 하듯 혼자 걸으며 많은 생각들을 덜어내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무아無我를 체험하기도 한다. 자발적 고독을 즐기는 사람들 아닐까. 혼자 걷는 이들이 많아진 풍경이 자연스러워진다. 혼자 운동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혼자서 뭘 하려면 쑥스럽던 시절도 가버린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걷는 것도 좋지만 혼자서 자신에 집중하거나 혹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은 충만한 시간을 준다. 젊어서는 잘 들어오지 않던 야생화나 나무들도 이젠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자연이 좋아질 만큼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나에겐 축복같다.
예술고등학교에서 시를 가르칠 때는 학교 수업 마치고 동네 헬스장 들러 한 시간 운동하고 샤워하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학교를 떠나고 지금 쇼핑백 만드는 회사로 옮긴 후 디자이너로 도전해 마케팅 팀장으로 퇴직을 했다.코로나 시대를 회사에서 일하며 잘 건너갔다. 동네를 혼자 한발 한발 내딛으며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알아간다.
계절의 풍요는 우리 동네 꽃 같다. 봄이면 벚꽃이 허공을 찬란하게 만들고 5월이면 장미가 학교 울타리, 아파트 울타리에서 붉은 합창을 한다. 혼자 걸으면 좋은 점이 옆 사람 신경 쓰지 않고 풍경들에 눈길을 줄 수가 있다는 점이다. 탐스러운 꽃들이 걷는 발길을 자꾸 세워둔다.
술집도 없는 동네다. 그래선지 취객을 본 적이 없다. 밤에 혼자 걸어도 위험하지 않다. 함께 탁구 치던 경찰 지인이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경찰 중 우리동네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만큼 조용한 동네다.
혼자 도서관 이층에 앉아 있으면 산 하나가 마치 다 내 정원처럼 들어온다. 동네 도서관도 내 서재같다. 내 서재에서 바라보는 내 마음의 뜨락 같다. 세상 다 가진 듯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도서관에서 바라보는 푸른 녹음들에 활자가 잘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다. 산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가끔 친구는 “이렇게 좋은 날에 도서관에서 혼자 뭐하냐? 이젠 그만 도서관 다니고 실제적인 경험을 해야지.”한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는 것도 중하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않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를 돌보거나 나를 찾을 시간이 늘 부족했던 삶이었다. 겨우 주어지는 시간이면 운동을 하거나 잠을 자야 했던 밤이었다. 주말이면 또 혼자 된 아버지를 뵈러 시골도 간다. 그러다 보니 되도록 약속을 만들지 않게 된다. 들러리나 동원되는 일은 질색한다. 시끄러운 것보다 조용한 공간이 좋아지고 가만히 반려 식물들을 돌보는 것이 작은 기쁨이다. 혼자 마을 구경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 새롭게 들어선 빌라도 보이고 간판이 바뀐 음식점도 눈에 들어온다.‘아, 여기 꽃을 파는 집이 있었구나.’들어가 이런 저런 꽃도 구경하다가 작은 화분 하나를 사기도 한다.
‘어머 여기 카페가 또 들어섰구나,’커피 볶는 냄새가 거리를 뒤덮는다. 좋다. 자꾸 간판이 바뀌는 것은 장사가 안되는 증거일까? 그래도 작은 마을에 카페가 많다는 건 마실 같은 역할을 요즘 커피숍이 하나보다. 혹은 카페가 공부방이나 창작실이 되어주기도 한다. 도서관이 너무 엄숙해 뭔가 강의를 듣거나 할 때 도서관보다 동네 카페를 이용한다.
벌판에는 온갖 농작물들이 자라고 논에는 벼도 자라고 있다. 아파트 큰 창 너머로 들판은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다 보여준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걸으며 보이는 감자밭이며 마늘밭, 파밭들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자꾸 눈길이 간다. 농부의 딸인 걸 숨길 수가 없다. 들판에 자라는 것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느낌과 향수를 불러온다.
요리를 해먹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나 나와는 다르게 사는 언니가 있다. 아들과 딸이 다 결혼하고 부부만 남았을 때 다르게 살아보자며 점심을 부부가 나가서 사서 먹는단다. 점심을 충분하게 먹고 아침과 저녁은 간단하게 먹다 보니 부엌을 들어가지 않는단다. 부엌에서 해방 되었단다.
“정말 나이 들어 산다는 게 인생의 황금기 같다.고 언니는 소리친다. 순간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을 늘 “오늘은 뭘 해먹나” 하면서 찬거리를 걱정하던 것이 생각났다. 나 역시 오늘은 무슨 국을 끓일까, 어떤 찌개를 만드나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딸을 보면 행복해진다. 난 밥벌이만큼이나 밥 짓는 일도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혼밥도 즐겁다. 영화랑 먹기도하고 뉴스랑 먹기도 한다. 신문이랑 먹을 때도 있고 음악이랑 먹기도 한다. 요리도 신난다. 창의력을 발휘해서 요리를 해보면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다. 엄마 돌아가시고 김치도 이젠 얻어먹을 곳이 없어졌다.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에는 동네 숨은 맛집들을 순례하기도 한다. 혼자 먹어도 괜찮은 식당들이 많다.
평양만두집은 얼큰한 맛으로 입맛 없을 때 식성을 되살려 주는 효과가 있다. 학교를 떠나고도 가끔 오는 제자들이 있다. 함께 만두집에 데려가 만둣국을 사 먹여 보내곤 했다. 포장해 와 집에서 혼자 끓여먹어도 풍성해지는 맛이다.
요즘 나는 새롭게 혼자하는 놀이가 늘었다. 기타를 연습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한다. 요가를 하기도 한다. 서랍을 정리하고 서재를 정리해도 좋아진다. 맛있는 걸 먹는 기쁨도 새삼 알게 되었다. 모주 한 잔에 감기도 떨어지는 전주 콩나물국밥집도 혼자 가서 먹는다. 예전 같으면 혼자 먹는 게 눈치가 보였다면 요즘은 혼자 먹는 사람들이 대세가 되어간다. 식당에서도 혼자 먹는 자리를 늘려간다. 죽집에 가면 속이 편해지고 기운이 돋는다. 한때는 나도 죽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야채죽을 먹으며 속이 아픈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건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같다. 친정 아버지도 엄마를 먼저 보내고 혼자 명심보감을 베껴 쓰고 실내 자전거를 타고 고요를 견디고 있다. 무슨 전화를 이렇게 자주하냐고 내게 쏘아대지만 아버지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어느 날에는 낮잠을 깨웠다고 화를 낸 적도 있어 전화드리기도 겁나지만 혼자 잘 사는 92세 아버지가 보기 좋다.

*오늘 엄마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90되던 해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 살아보니 인생 별거 없다. 너무 아둥바둥 힘들게 살지마라.재미있게 살아라."하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