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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삭제합니다

시작은 아이폰의 컨트롤 센터에서 잘못 누른 녹화버튼이었다.

by HW

어느 날 휴대폰 갤러리를 정리하다가, 화면을 녹화한 영상이 하나 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재생해 봤다. 영상 속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제공하는 숏폼 콘텐츠를 숨 쉴 틈도 없이 스크롤 중이었고, 영상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으로 넘기기에 급급했다. 동영상 속 나는 1초에 세 개가 넘는 쇼츠를 훑고 있었다.


솔직히 두렵다


내가 얼마나 인스타그램에 시간을 보냈을까. 아이폰에서는 Screen Time 기능이 있다. 아이폰 내에서 작동하는 앱의 실행시간을 추적해 주고 각 앱의 휴대폰 리소스를 보여주기도 하는, 유용한 기능이다. Screen Time에서 보여주는 내 인스타그램 사용량은 일주일 동안 18시간 19분이다. 단순 산술평균만 내봐도 하루에 157분을 저 스크롤에 썼단 이야기다. 한 숏폼 영상을 30초가량으로 잡고 보면, 매일 300개 이상의 영상들을 소비했다는 이야기인데, 그 시청 결과로 떠오르는 기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특히 특정 요일, 이를테면 수요일 사용 시간이 유독 높았던 이유는 더 알 수 없었지만, 돌아보면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도 내 손끝이 끊임없이 숏폼을 찾아 헤맨 것 같다.


img.jpg 수요일엔 무슨 일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숏폼 콘텐츠가 이렇게나 쉽고 빠르게 소비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요즘의 숏폼 플랫폼은 사용자의 취향과 시청 패턴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을 운영한다. 내가 어떤 영상을 얼마나 길게 봤는지, 어떤 요소에 반응했는지를 끊임없이 분석해서, “네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순식간에 제시해 주는 것이다. 덕분에 따로 검색이나 선택을 거치지 않아도, 화면만 스크롤하면 개인에게 맞춘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자극적인 음악과 효과, 간결한 편집이 합쳐지면, 빠른 속도로 흥미를 자극하는 ‘작은 도파민’이 끊임없이 공급된다. 한두 번은 무심코 넘길 수 있지만, 그것들이 수십 번, 수백 번 쌓이다 보면 그 짧은 영상만 찾아 헤매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스마트폰이라는 환경과 숏폼이 찰떡같이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화면을 세로 방향으로 가득 채우는 전체 화면 구성은, 사용자가 다른 일을 병행하기 힘들게 만든다. 몇 초 안 되는 영상을 보느라 집중이 분산되고, 영상을 끊임없이 내려보다 보면 머릿속이 흡사 ‘파편화’되는 느낌이 든다. 결국 “하나만 더 보고 꺼야지” 하고 마음먹어도, 이미 알고리즘은 다음 영상을 기다리는 동안의 몇 초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이 짧고 강렬한 자극이 반복될수록, 자연스럽게 다른 일에 몰입하기 어려워지고, 한편으로는 계속 뭔가 놓치고 있다는 불안까지 생겨난다.


물론 숏폼 콘텐츠가 무조건 해롭다는 뜻은 아니다. 짧은 영상을 통해 빠르게 정보를 얻거나, 간단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누구든 손쉽게 크리에이터가 되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다만 이런 간편함과 폭발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알고리즘과 자동 재생 시스템이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긴 시간을 소모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 영상이 끝나자마자, 또는 끝나기도 전에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구조에서는 “이 영상을 내가 왜 보고 있지?”라고 질문할 여유조차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거칠게나마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했다. 곧바로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했고, 유튜브도 프리미엄 구독을 취소하고 광고를 보게 만들었다. ‘편리함의 중단’이 꽤나 불편하긴 했지만,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무제한의 숏폼 세상으로부터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기 위한 선택이었다. 익숙한 자극의 연속에서 스스로를 떼어놓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습관처럼 다시 앱을 열려고 했다가 “아차” 하고 멈춘 날이 많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다른 일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찰나에 사라지는 영상 대신, 짧아도 몇 문장 정도의 글을 읽거나 음악을 조용히 듣는 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이 흐른 뒤의 나는,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숏폼 영상 속에서 강한 자극을 느끼는 대신, 온전히 집중할 무언가를 오래 붙잡고 고민하는 날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큰 가치를 준다. 숏폼 콘텐츠가 주류인 지금 시대에도,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화면을 끄고 나면 보이지 않던 여유가 비로소 손안에 돌아오는 것을 보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거리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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