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가는 여전히 여성의 권리를 방치하는가
2019년 4월 11일에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이 내려짐과 동시에 터져 나온 환호성과 눈물을 기억한다. 66년 만에 드디어,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하고 처벌하던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낙태죄가 폐지되었지만 바뀌지 않은 것들
2021년 1월 1일부로 형법상 처벌 조항의 효력이 상실됨으로써 낙태죄는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낙태는 지금 합법인걸까?
낙태, 즉 임신중지는 불법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합법도 아닌 어정쩡한 경계에 머물러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국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 입법을 해야했다. 21대 국회에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긴 했으나, 당시 정부에서 제시했던 입법안은 여전히 임신 주수에 따라 일부 낙태를 처벌하는 법안이었다. 여성계와 시민사회는 크게 반발했고, 국회와 정부는 합의와 입법에 대한 책임을 미뤘다. 의료 현장은 혼란스럽고, 여성들은 정보를 찾아 헤맬 수 밖에 없다. 안전한 시술, 혹은 검증된 약물을 통해 ‘낙태를 할 권리’는 법의 공백 속에 방치되어 있다.
성평등가족부의 출범과 임신중지 약물 도입에 대한 언급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평등가족부에서 미페프리스톤 등 임신중지 약물 도입을 언급한 것이다. 대표적인 약물인 미프진(Mifegyne)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결합한 약물로, WHO(유엔의 세계보건기구)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안전한 임신중지 약물이다.
현재 한국에서 임신중지를 위한 약물은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못해 아직 유통되지 않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포함해 대만, 중국, 일본 등 세계 90개 이상의 국가에서 승인되어 사용되는 약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용할 수 없다.
WHO에 따르면 임신 10주까지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가 안전하며, 의료진의 직접 관리가 없어도 되어 접근성이 높다. 수십 년간의 연구와 임상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수술적 방법과 달리, 약물을 통한 임신중지는
비침습적이고 안전하다 (몸에 기구를 직접 삽입하지 않고 약물 복용)
초기 임신에 매우 효과적이다 (성공률 95% 이상)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다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더 많은 통제권을 가질 수 있다. 병원 방문 횟수가 적고, 익숙한 공간에서 과정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큰 차이를 만든다.
지금, 여기서 가능한 것들
“그럼 지금 당장 미프진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Women Help Women(WHW, 위민헬프위민)이라는 단체를 소개하고 싶다. WHW는 의료 접근성이 제한된 지역의 여성들에게 안전한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국제 비영리 단체다.
WHW(위민헬프위민)는:
WHO 기준에 맞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제공한다
의료진의 온라인 상담을 제공한다
과정 전반에 걸쳐 정확한 정보와 지원을 제공한다
한국어 지원이 가능하다
https://consult.womenhelp.org/ko/
위의 링크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계속 말해야 하는 이유
2019년의 승리는 나에게 큰 울림으로 남아있었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한국 여성운동의 분화와 여러 논쟁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성의 ‘재생산권’과 ‘자기결정권’을 위해서 한 목소리를 냈다. 낙태죄 폐지 운동 당시 광장에서, 낙태를 경험한 이들의 수치심의 자긍심이 되던 것을,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이 ‘우리 모두의 일’이 되었던 연대를 기억한다. 그럼에도 여성의 재생산권을 위한 운동은 아직 미완이다. 법의 공백을 채우는 것, 안전한 약물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 임신중지를 둘러싼 낙인을 없애는 것. 우리 앞에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 재생산권과 여성 운동에 관심 많은 연구자로서, 앞으로도 관련한 주제에 대해 계속 글을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