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모임_모임 폐쇄 공지

7년간 운영했던 모임을 닫으며 (2024년 3월 25일)

by 재현가능성

2024년 3월 25일에 올린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수원 언어 놀이터 모임 담당자입니다. 3월 25일에 공식 단톡방에 공지했던 것과 같이 모임이 폐쇄될 예정입니다. 공식 폐쇄 예정일은 2024년 4월 28일이며, 모임이 개설된 지 7년하고 10일이 되는 날입니다.


폐쇄를 결정하게 된 이유들을 말씀드리기 전 조치사항에 대해 먼저 안내해 드리려고 합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어로만 작성하며 영어 번역은 따로 제공되지 않습니다.



※ 앞으로의 조치사항

1. 앞으로의 신규 회원 모집은 중단될 것입니다.

2. 공식 카카오톡 채팅방은 폐쇄하지 않고 열어둘 계획입니다. 소통을 원하시는 분들은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셔도 되고, 아니면 개인 카카오톡으로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3. 모임 Meetup page, Facebook Archive, Naver blog는 그대로 보존될 것입니다.

4. 모임 인계인수는 없습니다. 다만 모임을 새로 개설하시겠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5. 스티커는 2024년 4월 28일까지, 일요일 공식 모임에서 나눠드릴 예정입니다. 모임 스티커가 필요하신 분들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스티커는 제 개인 돈으로 구매한 것이고 차후에 제가 사용할 수도 있으니 너무 많이 가져가지는 말아주시기 바랄게요.

6. 모임 폐쇄와 관련하여 좀 더 자세한 질문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개인 카톡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 폐쇄 사유

(날것의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용이 있어 불쾌감이 느껴지실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모임 초창기에는 다들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올까 고민하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저도 뭔가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이야기와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없습니다.


1) 글쓰기 때문에 고통을 받으시는 분들, 특히 모임 참석을 위해 모임 몇 분 전이 되어서야 꾸역꾸역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편이 언제나 불편하고 찝찝했습니다.

그렇게 할 이야기가 없었을까, 그렇게 인생이 바빴을 까라는 생각들도 들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식으로 쓴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마음이 텅 비어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모임 참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글쓰기의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쓰는 글에서 어떠한 깊이나 배울 점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노력이 들어간 글이니 반응을 해줘야 한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제 개인톡으로도 ‘쓸 글이 없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다.’라는 메시지를 몇 번씩 받고 나니, 다들 이렇게 고통을 받을 바에 이 시스템을 파괴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2) 평소에는 언어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단순 외로움을 달래거나 인간을 만나기 위해 모임에 오는 모습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저는 피드백 교환과 지적인 대화를 통해 다 같이 성장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지, 현대인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든 모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피드백을 아무리 주어도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 성장하지 않으려는 모습에도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질문을 물어봤어요’라는 표현이 틀렸다고, ‘질문을 했다. / 물어봤다’라는 표현이 맞다고 몇 십번씩 반복적으로 피드백을 해주어도, ‘나는 언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바쁘다’라면서 제가 준 피드백들도 제대로 확인하지도, 공부하지도, 복습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피드백 교환에서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3) 언어 우위 현상(Language Dominance)에 압도당해 숨이 막힙니다.

올해 초 세미나에서도 말씀드렸던 내용처럼,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은 모두가 영어를 사용하려는 분위기를 만들고, 한국인들은 그 분위기에 종속되어 가는 분위기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영어 원어민들과 영어를 잘 하는 한국인들만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나머지는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는 공동체의 파멸로 이어집니다. 모임 담당자로서 이를 저지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며, 다들 이를 개선하려는 모습보다는 그냥 순응하려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영어를 잘 하는 한국인들은 분위기에 동참해 영어를 계속 사용했고, 영어를 못 하는 한국인들은 소외되어 침묵하거나 모임을 떠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렇다고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위해 사전이나 번역기를 사용해서 대화를 하려거나, 어떻게든 한국어를 하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언어 교환 모임에서는 서로의 알려주고 배우는 것이 맞거늘, 영어를 쓰는 외국인만 배려 받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모습은 언어교환의 목적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4) 회의감과 피로감

이제 저에게 모임 참석은 구원을 약속해주지도 않을 사이비 교회에 가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모임에는 습관적으로 가지만, 모임 시작 몇 분 전에 꾸역꾸역 글을 쓰는 모습, 피드백을 줘도 무시하는 모습, 열심을 다해 언어 학습을 도와주어도 집에 돌아가면 어차피 언어 학습을 하지 않을 모습, 모임에서 영어만 쓰려고 하고 한국인들의 한국어를 듣지도 않으려는 모습들을 마주하는 것이 지칩니다. 저는 언젠가 보상이 따른다는 종교적 계시를 믿고 행동하는 봉사활동 단체가 아니며, 현실에서 당장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속 깊은 무언가를 나눌 수도 없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도 없고, 같이 성장조차도 할 수 없다면, 저는 모임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대를 잡는 출퇴근 시간이 되면 ‘모임이 가진 의미’에 대한 생각들이 수없이 제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의미를 찾는 행위를 지속할 지, 그만둘 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꾀할 지 고민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여행과 몸살 때문에 모임에 가지 못한 지난 2주 동안 순수한 행복이 솟아올랐습니다. 원래 모임을 가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행복을 느꼈던 제가, 이제는 모임을 벗어나니 행복을 느끼더군요. 다시 한 번 심사숙고의 기간을 거친 후, 더 이상 모임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그만두고 폐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인계인수를 하지 않고 모임 폐쇄를 결정한 이유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임 운영에 적합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임에 계신 분들 모두가 성품도 훌륭하시고, 지혜와 지식의 부분에서는 훨씬 뛰어나십니다. 그러나 리더라는 자리는 적합한 성향과 의지라는 두 가지 중요 요소를 지닌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좀 더 구체화하자면,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지식과 언어를 교환하며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 (성향), 균형을 잡으면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바로 나설 수도 있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해당 요소들은 모임 참석을 자주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며, 개인의 천성(nature)에 달린 것입니다. 또한 기존 회원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회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모임에서 이런 요소들을 가지신 분은 찾지 못했습니다.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 모임을 인수인계할 경우 혼란이 생깁니다. 학습 방식 / 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이 모임을 이어받을 경우, 운영 방식의 적절한 변형과 적용이 되지 않아 모임 전체의 학습능률이 낮아집니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회원들 간의 친밀도까지 높지 않은 경우, 모임 내 관계가 분열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상황이면 인계인수가 이루어져도 몇 달 후면 망해버리는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어느 정도 원만한 관계일 때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모임이 계속되기를 원하신다면 새로 모임을 여시는 것을 추천드리며, 운영에 대해서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모임을 그대로 물려받아 기존과 동일한 운영 방식을 고수하시면 저의 흔적들이 너무 많이 남아 오히려 본인과 모임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저의 성공/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새로운 모임을 운영하시는 게 올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 맺음말

1) 2017년 4월 18일, 4명에서 시작된 모임이 Meetup 사이트 기준 총 회원 2천명이 넘는 가장 거대한 모임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모임에 오는 회원은 얼마 되지 않으며, 모임에 오는 사람들 중에서 진심으로 언어를 배우는 사람, 서로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분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제 기준이 너무 높았을 수도, 평가 지표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이미 누적된 피로감과 회의감으로 인해 모임 운영과 발전에 대한 저의 의지는 돌아올 것 같지 않습니다.


2) 모임 폐쇄 공지를 한 날 아내가 하나 물어보더군요. 공지 후 저에게 염려를 표현하거나, 아쉽다고 문자를 한 사람이 있었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런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단 한 분밖에는 안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아내와 나눴던 ‘모임이 점차 식당처럼 되어간다’라는 대화가 기억이 났습니다.


예전에 이 모임은 저에게 진심으로 중요한 공동체였고 모두가 활발하게 토의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곳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점차 공업구역 내 한식뷔페가 되어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전처럼 모두가 상호간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본인이 먹고 싶은 반찬만 골라 담은 후 혼밥 식사가 끝나자마자 다들 돌아가 버리는, 아주 단순한 형태의 공급과 소비만을 추구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제 음식 맛까지 변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다 버리고 하나둘씩 떠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제 이곳을 재방문을 할 이유가 없으니 다들 떠나갑니다. 문을 닫더라도 손님 중 어느 누구도 사장에게 전화해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갑자기 문을 닫으셨어요?’라고 물어보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하며 자신의 삶을 살 듯, 우리도 언어교환의 맛을 곧 잊어버리고 각자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건 자명한 일이라고 보입니다. 이 지경이 된 원흉을 찾아보았으나, 결국 내가 이 모임을 식당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여정은 이제, 여기에서,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I will miss you! / 모임이 없어져도 그리울 거에요!”라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지도, 만나지도 않았고, 그러지도 않을 거면서 빈말만 하는 사람은 이제 질색입니다. 그렇게 그립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어떻게든 시간과 돈을 써서 만나거나 개인톡으로 대화라도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 정도도 못 할 것이라면 그립다는 말을 안 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3) 앞으로 저는 휴식기간을 가진 뒤, 학습 방법에 대한 연구를 거쳐 다른 형태의 모임을 개설할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영어-한국어 모임이 아닐 수도 있고, 언어를 배우는 모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서로에게 배울 수 있고, 서로와 나눌 수 있다.’라는 점은 뚜렷한 모임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 때가 되면 여러분들을 초대하게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우리의 연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tay TTTempting

작가의 이전글모임 사직서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