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허상에 대하여, ⌜세일즈맨의 죽음⌟ 서평

Arthur Aster Miller, Death of A Salesman

by 소원
현대인은 자신의 꿈과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원래의 꿈이 왜곡되는 허상에 집착하고 매달리게 된다. 왜곡되었음에도 허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이 점차로 개인을 얽매고 그 존재 가치를 박탈하는 공포스러운 실체로 인식되며, 그나마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허상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_⌜민음사⌟ 작품 해설 중


책의 템포가 빨라 한 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희곡이라는 특성과 갈등 상황을 다룬 내용이 합쳐져서 독자를 매우 몰입시킨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 묘사된다. 읽을 때는 혼란스러운 극의 상황에 집중에서 보았다면, 읽고 나서는 윌리와 비프의 관계적 측면과, 해당 상황을 불러온 사회적 측면을 숙고하였던 것 같다. 또한 후자의 과정이 훨씬 재밌고 유익했기에,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으신 분들에게 한 번 두 측면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1 줄거리

윌리: 세일즈 맨, 한 가정의 아버지 / 린다: 윌리의 부인 /비프: 윌리의 첫째 아들 / 해피: 윌리의 둘째 아들


윌리는 두 아들에게 기대를 거는 세일즈맨이다. 그는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한 때 유망한 세일즈 맨이었고, 두 아들 역시 학창 시절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초반부 윌리가 비프와 해피에게 거는 기대는 독자 입장에서 모호하게 느껴진다. 이는 윌리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 때문도 있는데, 과거의 영광을 그리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아들에 대한 그의 평가가 신빙성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윌리는 두 아들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비프가 '올리버 사장'에게 가서 돈을 빌려 사업을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자신 역시 전근을 가 세일즈맨으로서 더 좋은 생활을 영위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윌리는 오랜 시간 생활했던 직장에서 해고 당하고 비프 역시 올리버 사장에게 돈을 빌리지 못한다. 비프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다. 윌리는 자신을 훌륭한 사람, 세일즈맨이라 칭했지만 실상 자신은 배달부였다는 것을. 비프는 이를 윌리에게 알리고자 하지만 윌리는 현실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회피하고, 진실보다는 이상만 좇는다. 비프가 자기혐오와 죄스러움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윌리는 아들의 사랑만을 느끼고, 이는 윌리를 더욱 파국으로 내몬다. 윌리는 비프가 사업을 성공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바탕으로, 보험금을 남겨주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2-1 클라이맥스, 부자(父子)의 동상이몽

누구나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자식에게 기대를 걸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런 기대를 깨고 싶어 하지 않는 아버지의 절망적인 노력에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_⌜민음사⌟ 작품 해설 중

클라이맥스에서 비프는 자신의 부족함을 역설한다. 이 장면은 무척이나 안쓰러우면서 절망적이다.

'아들'인 비프가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을 깎아내리기에 안쓰럽고, 가정의 파멸을 막고 그럼에도 나아가고자 한 그런 고해가 아버지에게 잘못 받아들여지며 죽음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절망인 것이다.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큰 기대를 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필자는 읽으며 비프에게 크게 공감하며 보았고, 따라서 더욱 절망스러우면서 좌절스러웠다. 아버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하여 표면적으로 노력하지만, 결국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비프. 비프는 더이상 아버지의 기대 속에서 유영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한 차례 성장하지만, 그의 환경은 이를 억제한다. 아버지, 그리고 동생인 해피와의 대화 속에서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현대의 인간상이 두드러진다.


윌리는 비프의 실패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프의 실패는 자신의 실패이며, 십 수년간 노력의 물거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허상을 깨부수는 것은 끔찍한 고통을 불러오기 때문에, 실질적인 파멸이 있더라도 허상 속에 사는 것이 인간에게 현실적인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비프의 '눈물'이 비프의 의도와 다르게 윌리에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정말이지 참담하다.

"아버지, 저는 이런 놈이에요! 전 아무것도 아닌 놈이라고요! 모르시겠어요? 반항하는 게 아니에요. 전 그냥 이렇게 생겨 먹은 놈이에요. 그뿐이라고요."

윌리는 비프의 터져나온 외침에서, 오로지 그를 향해 보인 눈물만에 집중하며 비프의 사랑을 꺼내 먹는다. 앞서 서로에게 상처를 내며 싸웠음에도 작게 느껴지는 비프의 사랑에 감동하는 윌리를 보며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그동안 겪어왔을 가장으로서의 외로움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고, 작은 확신에도 금새 다시 확장되는 자식에 대한 믿음에서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2-2 망상의 이유

극 속에서 윌리는 계속 1928년으로 되돌아가는데, 이때는 1929년 대공황 직전으로 미국이 세계의 자본가로 득세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_⌜민음사⌟ 작품 해설 중

이상과 현실에 대한 괴리로 인해 윌리는 계속해 망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위 작품 해설에도 나왔다시피 윌리는 1928년과 현재를 혼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직시를 하지 못하고 허구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윌리가 몰락한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책은 윌리의 병리적 행동들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제시한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는 현대 사회에서, 그러니까 모두가 '경제적 성공'을 바라는 사회에서, 개인은 현실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다. 우리를 꿈꾸게 하는 자본주의는, 누구나 '능력'이 있다면 '위'에 군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한정된 자본 속에서 '패자'로 전락하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비프는 경제적 성공에서 벗어나 본질적 개인의 성공을 찾으려 한다고 볼 수 있으며, 윌리보다 성숙한 자기인식이 근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집에서 나가고 세일즈맨이 되지 않겠다는 비프는 자기 가치를 더이상 사회의 인정 속에서 찾지 않겠다는 성장의 결과인 것이다.


극 중 내내 언급되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비프가 수학점수 F를 맞고 졸업을 하지 못한 일. 윌리는 비프를 질책할 때 지속적으로 해당 사건을 언급한다. 그러나 극의 후반부에서 비프의 미수료가 윌리에 의한 일임이 드러난다. 윌리의 불륜을 목격한 비프가 졸업에 대한 의지를 상실했던 것이다.


이를 보고 비프에 대한 윌리의 죄책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윌리는 그 날에 대한 죄책감을 숨기려 계속해서 허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윌리는 '그 날'을 기점으로 비프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비프의 망가진 삶은 윌리 그 자신의 책임이 된다. 따라서 윌리는 끝없이 비프의 성공을 '상상'하며 자위하게 되는 것이다.


#3 현대 사회의 병폐

결국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의 병리 사회를 꼬집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도된 가치관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윌리는 오직 사회적 성공을 꿈꾼다. 세일즈맨으로서, 가장으로서 그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이며, '세일즈맨'이라는 직업과 '가장'이라는 역할로 인해 더욱 촉발되었을 수 있다.


윌리는 사회로부터 받은 압력을 그대로 자식에게 되물림한다. 자식들 역시 용납되지 않는 '실패' 속에서 성장하며 비극을 되풀이하게 되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세일즈맨'이라는 그의 직업은 성과만 취급되는 현대 사회를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자기 과시가 없을 경우 교체품 취급을 받게 되는 사회에서 윌리는 허세로 자신을 무장할 수밖에 없다.


윌리의 자살은 자기 실패에 대한 혐오의 결과이다. 또한 가장의 책임감이다. 처음에는 그저 비현실적 인식에서 나온 '비프'에 대한 기대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는 일차적인 해석이다. 윌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윌리는 현재를 회피하고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 현재를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상과 다른 자신의 상황. 아이들에게, 부인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지만 방세조차 없는 현실. 현실을 직시하면 직시할수록 윌리는 숨어들어가고, 자기 혐오는 내부에서 썩어들어간다. '어떻게 해야 그 애에게 뭔가 남겨 주면서 나를 더 이상 혐오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윌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머쥐지 못한 성공에 대한 자기 혐오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미안함으로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윌리의 유일 가치가 사회적 성공과 인정이 아니었다면 결말은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자본의 가치만이 극대화된 상황은,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 사회와도 닮아 있으며, 아마 계속될 것이다.


비프의 마지막 깨달음은, 우리에게 던지는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비프의 자기 비하 속에서 독자에게 '네 주제를 알라'같은 무의미한 희망의 파괴가 책의 메시지가 아니다. 윌리의 비극을 바탕으로 '현실 인식'의 중요성 따위를 역설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쉬운 해석이며, 정반대의 해석이라고 느껴진다. 우리는 본질적 가치에서 삶의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 획일적인 삶의 목표를 기반으로 자기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대게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여러 글을 참고하며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 하지만... 해당 서평의 경우 그저 저의 생각이기에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잘못된 정보에 관한 지적과 다양한 의견들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윌리와 비프의 부자 관계가 흥미로우면서... 제 현재 상황에 대입하며 은근한 공감을 하며 보았네요. 책 자체에서 얻은 재미보다 서평을 쓰는 시간이 더욱 재밌고 즐거웠습니다. (물론 책도 재미있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떠오르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