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겨울에 머물고 싶은 남자
"바람둥이!"
그녀가 나에게 던진 첫 말이었다.
연락처를 좀 물어봤다고, 바람둥이라니..
어안이 좀 벙벙했지만,
이내 나는 순발력으로 맞받아쳤다.
"아..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바람둥이라는 걸? 하하"
"이러는 거 익숙하신 분이시죠? 딱봐도 얼굴에 써있어요."
후후.. 나는 그녀의 이런 단도직입적인 부분이 좋았다.
자신이 느낀 거, 생각한 거를 정제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거.
나도 솔직한 타입이기에 솔직하게 말하는 타입이 좋다.
서늘하게 내려앉은 공기를 타고
나란히 벤치에 앉은 우리는 이런 솔직한 서로의 말투에 통하고 말았다.
겨울이다.
겨울은 역시 누군가를 끌어안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있으면 내 영혼이 너무 차가워짐을 느낀다.
얼어붙지 않기 위해,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려 단도직입적으로 연락처를 물어봤던 것이다.
"바람둥이라 판단되지만, 용기가 가상해서 연락처 알려 드릴께요. ㅎㅎ"
반쯤 못미더워하는 말투와 눈길로 나를 응대했지만,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 저항심 없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놓였고,
우린 벤치에서 일어나 쌀쌀한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춥네요. 추워요. 전 여름이 좋아요."
그녀는 여름이 좋다고 했다.
건강한 햇살에 자신의 건강한 피부가 맞닿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저는 겨울이 좋아요. 꽁꽁 싸맬 수 있는 겨울이 좋아요."
나는 겨울을 좋아했다.
입김이 나는 것을 보는 걸 좋아했고, 쨍쨍한 여름의 하늘보다,
겨울의 차갑고 청명한 하늘이 좋았다.
우리는 가로수길의 보도블록 하나하나를 사뿐히 밟아가며 거닐었다.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려오기 시작하자, 그녀가 말했다.
"이게 벛꽃잎이면 좋겠어요. 그럼 지금이 봄일테고, 곧 여름이 올 테니까요."
그녀는 하늘 위로 손을 벌리며 내리는 눈을 움켜잡으려 했지만,
눈송이는 이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며
그녀의 바램 대로 벛꽃잎으로 바뀌어 떨어지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걷고 있던 나는,
시간이 영속의 터널로 빨려 들어가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환상 속에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아.... 이 사람.... 간절히, 시간을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구나...'
그녀의 손끝에 닿을 듯 멀어지는 눈송이의 실루엣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 이제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그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 속 그녀 모습을 옆에서 지켜 봐주고 싶었다.
단지, 그걸로 인연을 맺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을 기다리는 여자,
그리고 겨울에 머물고 싶은 남자.
마법 같은 첫 번째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짤은 이야기를 끄적임에 있어,
항상 조각조각들을 생각해두고 쓰는게 아니라,
오늘 같이 확~ 뭔가 쓰고싶으면,
퇴근길 집앞 벤치에 앉아 담배하나 피면서 순식간에 써버리고 만다.
항상 즉흥적인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