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연애 상담을 시작하게 될지 몰랐다.
내가 이와타현의 한 작은 마을의 중학교에서 미술과목 기간제 교사를 6개월간 했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하루에 두세 시간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나면 별다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무료한 교편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창문이 복도 쪽에만 있어 낮에도 어두컴컴한 반지하 미술실은 너무나 습하고 답답하여 내 영혼마저 칙칙 해져가는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우두커니 이젤과 화판 하나를 펴고 앉아 벽 선반 위에 놓인 아리아스 석고상의 오른쪽 측면을 얼마나 빠르게 그려볼 수 있는지 시간을 재보는 것 따위로 시간을 죽이는 게 일상이었다. 어떤 날은 석고상을 안 보고 형태를 외워서 그려보는 쓰잘 떼기 없는 도전을 한다던 지,
4B연필 말고 볼펜으로 도화지에 칼질하듯이 크로키로 깨진 석고상을 그려보는 짓을 하면서 오래간만에 시간 가는지 모르게 몰입 되기도 했으나, 이내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이마저도 실증이 나버렸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도전거리를 만들어 시간을 죽여볼까 생각하던 찰나에 음악 과목을 가르치는, 나와 같은 기간제 교사인 아키코 씨가 연애상담 좀 해달라고 과일 음료 두 개와 손수 만들었다는 계란 으깬 것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3단 찬합에 싸 들고 미술실로 찾아왔다.
송곳니가 심하게 옆 이빨의 반이상을 대담하게 앞서 있는 형태의 덧니를 가진 아키코 씨는 샌드위치의 계란이 그 덧니 사이에 끼여있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연애 초기 때의 설레임을 풀어낼 때는 쌔액 웃기도 하고 근래 뭔가 연애가 어려워지고 있음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는 짧은 한숨과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연애담을 지루하게 길게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겨우겨우 나오는 하품을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것으로 애써 참으며 그녀의 이야기가 클라이맥스 없이 끝났을 때, 그녀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답답하고 속상하다는 거군요. 그런 거죠?"
"네!! 바로 그거예요.. 도통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말과 행동에서 뭔가 힌트를 주는 거 같은데 내가 해석해내는 게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고.. 모든 경우를 다 따져봐도 명쾌한 답이 안 나와서 너무 힘들어요...ㅠㅠ"
"음..."
나는 뭔가 난감해졌다. 내가 직접 둘 사이의 대화나 행동들을 본 적도 없으니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어떻게 상황 파악을 한단 말인가..
무리다... 무리야.... 그러나 과일 주스와 샌드위치도 얻어먹었고... 일부러 여기까지 나를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마당에 나는 뭔가 아키코 씨에게 엉성하게나마 대답을 해줘야만 했다.
나는 얼마간을 고민하는 척 오른손으로 턱을 꼬집듯이 잡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제도 책상 위에 올려 놓인 프랑스 화가들의 화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고민할 것 도 없이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 프랑스 가보셨어요?"
나의 물음에 아키코 씨는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대답을 해주었다.
"아.. 뭐... 예전 대학 동기 중 친한 친구 두 명과 배낭 여행으로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의 로마를 다녀왔던 적이 있었어요. 한 열흘 정도?"
"어땠었나요? 프랑스란 곳이?"
나는 집요하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에펠탑도 좋았고, 베르사유 궁전도 좋았고.. 음식도 맛있었고.. 센 강 주변의 노천카페도 좋았고... 뭔가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가 느껴져 좋았었죠..."
아키코 씨는 그때의 경험이 살아났는지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우리나라 말고 다른 나라에 가니까, 신기한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이거 저거 새로움에 경이로움을 표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마치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는 경험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없는 건축 양식인 에펠탑의 웅장함을 느껴보거나, 센 강 강줄기를 따라 우리가 평상시 볼 수 없는 보도블록을 밟으며 산책한다거나, 생전 처음 달팽이 요리를 먹어보는 경험이 사람의 기분을 가볍게 부유하게 만들죠.
그 부유된 기분이 동경을 낳게 되고 그 동경은 곧 자신의 경험이 아닌 자신의 소유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소유가 된 것으로 착각이 되면 그때부터 프랑스와 나와의 갈등은 시작되는 것이죠."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내 입에서 프랑스와 여행 이야기가 주르륵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지도 생각도 못한 채, 그냥 내 순발력을 통해 나온 생각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재빠르게 타이핑을 치듯이 입에서 술술 내뱉어내고 있었다.
"프랑스의 역사를 보면 우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들의 민족관이라든지 풍습이라든지 오래전부터 제도적으로 정해진 관습법과 실정법 등이 말이죠. 아키코 씨는 프랑스에 가서 에펠탑과 센 강만 보고 모든 걸 결정해 버린 겁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 뒤에 있는 그들의 엄청난 깊이의 세계관을 몰랐던 거죠. 그래요. 그런 것을 처음부터 알 수도 없거니와 안다고 해도 그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겠죠."
"에.....??."
아키코 씨는 나의 이야기에 무척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내가 자기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주저 없이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아키코 씨는 지금 좋아하는 그 사람을 잘 알 수도 없거니와 아직 이해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사람의 세계에 여행을 가셨으면 그곳의 실정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키코 씨가 사는 세계에서는 파란불에 길을 건너는 게 너무나 당연한 관습이겠지만, 좋아하시는 그분의 세계는 노란불에 길을 건너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즉, 그분의 세계에 여행을 가셔서 지금 노란불에 길을 건너는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단계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말과 행동을 아키코 씨가 살고 있는 세계관에 빗대어 생각하고 결론지어 버린다면, 영원히 그 분과는 인연을 맺기 힘들어 보인다는 겁니다.
지금 아키코 씨와 그분은 서로의 세계로 여행을 가신 상황이고, 여행 중에 여러 가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다름을 목격하고 계신 상황이오니, 지금은 일희일비하는 마음으로 만나시기 보다는 서로 다른 시각과 교감의 차이점들을 경이로운 시각으로 이해와 존중으로 받아들이시면, 아키코 씨와 그분은 조금 더 즐거운 여행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아...... 그.. 그렇군요..... 정확히 이해는 안 되지만... 서로의 세계로 교환 여행 중이고, 그래서 경험 중이고.... 흠.... 아직 서로 서툰 길 찾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혼란스럽고 다리가 아픈 여행 중이라 힘들고 고된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가 맞..맞..죠?"
"네~ 그렇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정확히 이해를 하셨네요^^ 지금의 여행은 힘드시겠지만 곧 한번 가셨던 길들은 잘 찾아서 가게 되실 거예요.
그게 곧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어 더 깊이 있는 교감을 할 수 있는 연애 생활이 되실 거예요~"
나는 사실.. 내가 무슨 논리와 근거로 이런 얘기들을 했는지 모른다. 단지 제도 책상 위에 있는 프랑스 화가들의 화집을 보는 순간,
'프랑스' 하나의 단어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연애학 논리를 만들어 내어 아키코 씨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해버린 것이다.(나.. 카이저소제인가?;;;)
뜻밖에도 아키코 씨는 마음이 평화로워진 얼굴로 되돌아 갔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나도 참.... 별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왜 이리 해댔을까.. 하고 스스로를 비웃어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학교 선생님들이 하나둘씩 내가 있는 미술실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마, 아키코 씨가 내가 연애 상담을 해준 얘기를 주변 동료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주었나 보다. ;;
그렇게 해서 나는 본의 아니게 연애 상담을 시작했고, 하나 둘 씩 다른 사람들의 연애 생활을 듣다 보니 꽤나 흥미롭고 다채로운 것이 연애하는 인간의 심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참에 이를 소재로 로맨스 소설 같은걸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쓰기 위해, 자발적으로 주위 사람들을 통해 연애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 주면서, 뭔가 영감을 얻어가는 것이 재밌었다. 또한 사랑에 빠져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분석하고, 예측하기도 했고, 각각의 상황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이나 감정의 변화들을 너무나 솔직하게 나에게 말을 해주었기에, 나는 이것을 통해 많이 배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각자의 상황은 천차만별이고 다양하지만, 목마른듯한 그 심리상태는 너무나 똑같은 단계를 거쳐간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맹목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사랑에 빠진 그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작은 것에 상처받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또한 작은 것에 자기 자신을 버리기도 한다. 작은 것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만의 해석을 통해 주관적인 판단으로 모든 걸 끼워 맞추어 상대방을 완성한다.
평상시, 그렇게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도, 냉철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도, 예외이지 않았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기에, 그 기분을 100% 받아들이고 이해해 주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최대한 그 사람의 상황에 나의 감정 이입을 해서, 그 심리상태를 경험해 보려 했다.
리서치를 하는 동안 그들이 일관되게 나에게 물었던 것이 있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라는 물음이었다. 그 물음에 나는 또 되지도 않는 논리로 그들을 현혹시켰다.
"흠... 걱정하지 마세요. 상대가 당신의 열정과 믿음을 언젠가는 알아줄 거예요.
대신... 물러설지도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이 비어있을 타이밍을 노리셔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허해지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무인도 효과라 명명 지었는데요.
무인도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조난을 당해 둘만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평상시에 당신에게 별 매력을 못 느꼈더군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머지않아 그 사람은 당신에게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매력 감을 느껴 당신을 의지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아니라 세상 누구라도 그 사람은 무인도에 같이 남겨진 사람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왜냐고요?
자신의 마음을 섬처럼 고립을 시켰을 때는 누구라도 그 안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100퍼센트 사랑에 성공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존재감의 크기와 당장은 이 사람이 마지막 사랑일 것 같다는 착각의 믿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무인도에 둘만 남겨져 버린 상황처럼 체념이 바탕에 깔려 심리적으로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애착심이 생겨버리게 됩니다. 그게 본질에서의 사랑이냐 라고 되물어볼 수 있겠지만, 우리네 사랑은 상대와 나, 서로를 자신의 무인도 안에 남겨진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인 사랑에 근접하게 되는 심리랍니다.
상대의 주변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다가 그때를 잘 캐치하셔서.. 당신의 열정과 믿음을 보여주세요. 잘은 몰라도 대부분의 경우라면 당신을 진심으로 받아줄 것이에요."
자.. 다음 분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