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했다는 자책이 들 때 읽어야 할 글
어느덧 헬스를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났다. 돌아보면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구조조정, 정든 곳을 떠난 이사, 그리고 생존하듯 시작한 운동. 정신없이 달려온 길 끝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니, 가슴 한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 금쪽같은 시간에 나는 뭘 한 거지?' 하는 후회였다.
영어를 더 깊게 파볼 걸, 아니면 MBA라도 알아볼걸. 왜 더 치치열하게 무언가를 준비하지 못했을까. 지나온 시간들이 갑자기 무익하게 느껴지고,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 같은 자책감이 밀려왔다. 그때 문득, 오늘 헬스장에서 느꼈던 근육의 통증이 떠올랐다.
1. 근육은 고통 속에서만 자란다
우리는 안다. 근육이 커지는 원리는 의외로 잔인하다는 것을. 무거운 중량 아래에서 근섬유가 미세하게 찢어지고, 그 상처가 아물면서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굵은 근육이 만들어진다. 고통이 없다는 것은 근육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느끼는 뼈아픈 후회와 자책은, 사실 우리 인생의 내면 근육에 미세한 균열이 가고 있다는 신호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삶에는 후회도 없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픔이 느껴진다는 건, 이미 내 정신의 중량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증거다.
2. 눈에 보이지 않는 '인생의 근비대'
영어나 MBA 같은 화려한 스펙을 쌓지 못했다고 해서 그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과 이사라는 거대한 삶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하루 헬스장으로 발을 옮겼던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의 가장 취약했던 시기에 아들의 곁을 지키며 아빠라는 이름으로 살아낸 시간들.
어떤 날은 지루함에 몸을 비틀고, 어떤 날은 말할 수 없이 지루하고 고통스럽다가도, 또 어떤 날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하기도 했던 그 모든 순간들. 사실 그 시간을 묵묵히 통과하며 견뎌낸 '버팀' 자체가 이미 거대한 훈련이었다.
우리는 후회만 하고 있을 때조차 성장한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그 심리적 통증과 아이를 돌보며 정작 내 미래는 멈춘 것 같다는 자책은, 사실 우리 인생의 근섬유가 치열하게 찢어지고 다시 붙는 과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어제의 나를 부정하고 내일의 나를 재설계하는 가장 치열한 화학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파야만 성장하는 육체처럼, 인간의 정신 또한 후회라는 통증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깊어진다.
3. 자책은 멈춤이 아니라 '준비'다
헬스에서 세트 사이의 휴식 시간이 근육의 회복을 돕듯, 인생의 자책하는 시간은 다음 도약을 위한 '리셋'의 시간이다. 자책하는 사람은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과오를 복기하고, 부족함을 뼈저리게 통감하며, 다음 세트에서는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들어 올리겠다고 무의식에 새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다면, 기꺼이 그 아픔을 받아들여도 좋다. 그 고통은 당신이 지금 정체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라는 존재가 더 크게 부풀어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단 한순간도 성장을 멈춘 적이 없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아이를 재우고 홀로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자책하는 그 비참한 순간에도 우리는 자라고 있다.
찢어져야 커진다. 아파야 성장한다. 오늘 느낀 이 지독한 후회는, 우리의 내일이 오늘보다 훨씬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몸이 기억하는 정직한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