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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Jun 27. 2022

40대의 커리어넷 & 워크넷 탐방 후기

나도 진로와 관련된 검사를 한번 해볼까

 6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아이는 학교에서 홀랜드 진로발달검사 결과표를 가지고 왔다. 결과표를 보는 순간, 검사지에 열심히 체크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이가 학교에서 뭔가를 가져오면 어떤 과정을 거친 결과물인지 교실 상황을 그려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중학생도 진로검사를 하기 때문에 나도 우리반 아이들에게 결과지를 나누어준 적이 있다. 보통의 가정통신문은 A4 사이즈인데, A4 사이즈 두 배에 달하는 검사결과지를 나누어주는 일은 평소와는 다른 손놀림을 요구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참고할 수 있는 결과지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받아갔다. 그 정도 눈빛이라면 최소 10분 정도는 결과지를 읽어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마지막 번호까지 다 나눠주고 교실을 돌아보았다. 이미 절반은 결과지를 가방 속에 넣어버린 뒤였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은 고작 한 살 차이다. 우리집 아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았다. 잘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 맞다! 오늘 학교에서 이거 가져왔는데...'하고 부스럭 가방을 뒤져 진로발달검사 결과표를 꺼낸 아이에게 물어봤다.

 "너는 이거 다 읽어봤어?"

 "아니, 그래도 대충 뭔 말인지는 알아."

  결과지를 받자마자 빈대떡 뒤집듯 앞뒤로 휙휙 뒤집어보고는 가방 속에 쑥 집어넣던 학생과 딸아이가 겹쳐졌다.

학교에서 받아온 Holland 진로발달검사 결과표 (앞장을 찍었는데, 검사 결과는 뒷장에 자세히 나온다)


 아이와 함께 검사결과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수 분포도의 육각형은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점선으로 표시된 성격 적성, 실선으로 표시된 능력 적성, 굵은 점선으로 표시된 직업 적성은 제 각각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가 아직 자기 스스로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는데, 검사결과표 역시 아이가 직접 체크한 검사에 따른 결과니까 뚜렷한 진로 코드가 나오지 않은 것이 이해되었다. 올해는 특별히 진로탐색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새로운 경험도 시도해보는 한 해를 보내자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다음 날, 나는 커리어넷에 로그인했다. 아이의 검사결과표 덕분에 '언제 나도 한번 해봐야지'하고 생각만 하던 일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진로탐색의 시작은 자기이해 아니겠는가.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진지하게 탐색해보기로 마음먹고도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검사조차 미루고 있었던 나를 질책하며 커리어넷의 진로심리검사 탭을 클릭했다. 매번 학생들에게 안내하기만 했었지, 나를 위한 용도로 커리어넷에 접속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커리어넷(www.career.go.kr) - 진로심리검사 - 대학생, 일반용



 커리어넷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네 가지(진로개발준비도검사, 주요능력효능감검사, 이공계전공적합도검사, 직업가치관검사)가 있었다. 이공계전공적합도검사는 대학의 이공계 내 세부 전공별 적합도를 알아볼 수 있는 검사인데, 내 검사 목적과는 맞지 않아서 이를 제외한 나머지 검사를 해보았다.



커리어넷 - 진로심리검사 - 대학생 일반용 - 주요능력효능감검사 예시



 검사를 하면서 느낌이 왔다. '전혀 못한다'부터 '매우 잘한다'까지의 다섯 단계 중에 무엇을 표시해야 할지 몰라서 '보통이다' 위주로 표시하고 있는 나를 보니, 결과지를 통해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한 기준에서 주관적인 판단을 거쳐 표시하긴 했지만 검사 후반부로 갈수록 결과지에 대한 기대는 점점 사라졌다. 문항에 답하는 사람이 이미 가지고 있는 답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왕좌왕하던 아이의 검사결과표가 이해되었다. 커리어넷의 검사는 내게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다양한 직업정보와 학과 정보가 있는 커리어넷은 나와 같은 성인보다 학생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는 생각에 워크넷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채용정보가 가장 먼저 보이는 워크넷은 확실히 커리어넷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워크넷에서 직업심리검사로 들어가니 성인용으로 무려 12가지 검사가 있었다. 


워크넷(https://www.work.go.kr)에서 할 수 있는 검사 종류



 이 중 준고령자 직업선호도 검사는 만 50세부터, 중장년 직업역량검사는 만 45세부터 검사 가능하다. 나는 가장 아래에 있는 성인용 직업적성검사를 해보았다. 검사시간이 80분이라고 적혀있지만 커리어넷의 검사 문항들을 떠올리며 빨리 체크만 한다면 더 빨리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워크넷 - 성인용직업적성검사 - 문제해결능력 13문항 중 하나


 워크넷의 성인용직업적성검사는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까?'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휘력 검사를 한다면 '어휘력이 좋습니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휘력을 측정하는 문제가 나온다. 그것도 시간제한이 있어서 빠르게 답하지 않으면 몇 문제 풀지 않았는데 다음 영역으로 넘어가버린다. 검사하는 항목은 어휘력, 문장 독해력, 계산능력, 자료해석력, 수열 추리력, 도형 추리력, 조각 맞추기, 그림 맞추기, 사물 지각력, 상황판단력, 기계 능력, 집중력, 색 혼합, 색 구분, 문제 해결 능력, 사고 유창력으로 '약 80분 소요'는 넉넉하게 적어둔 형식적인 숫자가 아니었다. 


 시간의 압박을 느끼며 문제를 풀어보는 일이 얼마만이던가. 8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렸다. 검사가 끝나면 각 항목별 점수가 나오는데 평균보다 얼마나 높고 낮은지가 표시된다.


각 항목별 점수로 자신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반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10년 뒤가 궁금한 사람? 내가 그걸 미리 볼 수 있는 엄청난 방법을 알고 있는데 말이야."

  미래를 볼 수 있는 마법 구슬이라도 꺼내려는 걸까. 학생들은 그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 방법은 바로, 오늘 자신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거야. 미래는 현재의 내가 쌓여서 만들어가는 거라서 말이지. 10년 뒤의 자신이 궁금하다면, 오늘 내가 뭘 하고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해 봐.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서 10년 뒤의 나를 만드는 거야."

 시간을 너무 허투루 쓰고 있는 학생을 향한 담임의 잔소리였지만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워크넷의 직업적성검사 결과를 보며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과에 나타난 각 영역의 점수는 나의 어떤 시간들이 합쳐진 결과일까.


 분명한 것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도 나의 어떤 능력을 개발시키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 능력이 무엇이 되었든 교실 쓰레기통 비우기 능력보다는 괜찮은 능력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도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나의 재직 기간을 단축시켜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Photo by Avel Chuklan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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