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준 지혜

혼자 걷는 숲에서 깨달은 것들

by 공명김

예전에 어떤 연구에서 본 거 같은데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 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도시보단 상대적으로 밋밋한 작은 동네 혹은 자연을 보는 것보다는 도파민이 터지는 도시에서 시간 쓰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밴쿠버란 곳에 살고 있어서 즐길거리가 자연 말고는 없다. 어느 날 겨울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밴쿠버겨울에 황금 같은 햇빛이 드리웠고 나도 밴쿠버 사람들처럼 한번 즐겨보려고 방에만 박혀있던 나를 꺼내어 용기 내어 카메라 하나 들고 Lynn Valley Canyon이라는 곳으로 갔다.


R0001363.JPG 밴쿠버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흔들 다리이다. 다리 중간에 서면 양 옆으로 폭포와 계곡물을 볼 수 있다.


도착하니 차 댈 곳도 별로 없고 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핫플레이스 같이 느껴져 괜히 들떴다. 벌써부터 우렁찬 물 흐르는 소리가 내 마음을 씻겨주고 있었다. 그 물소리와 함께 흔들 다리에 내 발을 올리고 걸으니 생각보다 더 흔들거리는 다리 덕분에 정말 자연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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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숲은 어제 내렸던 비 때문인지 바닥이 축축하고 물기로 가득 찬 숲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관리하기 어려운 쇠모 재질 신발을 희생할 수 있을 만큼 그냥 걷고 싶었다. 이 풍경은 마치 영화에서 엘프족들이 사는 숲같이 안개와 우거진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로 빛이 지나가고 있었다. 머릿속에 광명이 오셨네 라는 가사가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과장 좀 보태서 성스러웠다. 분명 여길 몇 번 와봤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지 너무 신기했다.


생각해 보니 이 풍경이 완성되려면 비가 많이 내리는 밴쿠버 겨울에 가끔 뜨지 않는 해가 떠서 안개와 습기 찬 나무와 돌 위에 있는 물기 때문에 반사된 빛들 등 이 모든 것들이 조화가 맞아야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내가 말한 똑같은 자연 풍경이 사실은 가장 그 순간만 담아낼 수 있는 소중한 풍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빛줄기들을 자세히 보면 움직이는 안개 때문에 미세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이 미세한 변화는 이 순간뿐이었고 나는 카메라에 열심히 담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5분 정도 시간이 지나니 이 안개는 다 사라졌다. 아 이 1분을 놓쳤으면 내가 이 빛줄기들을 볼 수 없었겠구나 싶었다.


내가 그동안 인간이 만든 것들만 보고 싶어 했는데 자연이야 말로 현재를 가장 즉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었고 그것들은 1분 1초 만에 변하며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나는 현재를 살고 있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등산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맨날 같은 곳 가면서 좋아하지? 라며 궁금해했는데 오늘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었다. 아 이들은 매번 다른 모습을 보고 있었구나, 나보다 훨씬 섬세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그리고 내게 그냥 즐거우면 된다며 이곳을 찾아왔었는데 그 말을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을 가볍게 보지 않고 어렵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만의 확실한 규칙안에서 벗어난 것들을 배제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냥 자연 그 자체를 느끼고 즐기지 못해 집안에 박혀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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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빛줄기 나무 물 흙 돌들은 다들 자기 역할을 하며 나에게 색다르고 새로운 모습을 주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내가 돌인데 쭉쭉 뻗는 나무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자유롭게 흐르는 물이 되고 싶었는지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게 돕는 단단한 돌의 역할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른 것만 갈망해 온 것 같다.


새해 초반부터 체화를 통해 현재를 사는 삶의 의미를 다짐할 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중엔 부모님 모시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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