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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석변호사 Jan 22. 2021

다크소울3 체험기

30번을 죽어도 31번째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COVID-19 판데믹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업무목적을 제외하고는 외부활동을 중지한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난 것 같다. 작년 가을정도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단디하고 집 근처 산책이라도 다녔는데 연말부터는 일평균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가며 국가적 차원의 방역위기에 이르렀기에 외출 자체를 삼갔던 것. 그러나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보니 무료함이 극에 달하여 무언가 즐길 거리가 없을까 찾다보니 과거 유튜브 등에서 다양한 소재로 희화화 되었던 게임이 생각이 났기에 세일기간 중에 구매를 해보았다.



제목은 다크소울3. 이 게임은 전체적인 완성도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유명하기도 하지만(2016년 GOTY :  Game of the Year 골든조이스틱어워드 수상작) 그보다 더 유명한 이유는 극악의 난이도 때문. 게임 중 플레이어가 죽으면 "YOU DIED"라는 메시지가 뜨는데,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해당 게임을 하면서 워낙 많이 죽음을 경험하다보니 "YOU DIED"를 '유다희'로 읽으면서 '오늘도 유다희씨를 30번 보았네', '게임 인트로 음악만 3시간 째 듣고 있네' 등의 드립을 하며 자학개그의 소재가 될 정도. 더군다나 영미권 이용자들의 재미있는 자학개그성 댓글도 많이 목격되는 것을 보면 이런 사정은 국내 이용자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유다희씨를 30번 영접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31번째 도전을 계속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여전히 강력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이와 같은 유형의 게임을 일컬어 "Souls Like Game"으로 명명하는 등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기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이 게임을 이토록 매력있게 만드는 것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게임평론가들의 의견을 보태어 살펴보자면, "비록 처음에는 어렵지만 반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목표설정"에 있다고 본다. 이 게임을 경험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게임의 난이도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재의 심판자(라 쓰고 '환불심판자'라 읽는다) 군다(Gundyr)"에게 계속 털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던 아내가 다른 게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을 정도...



이 게임은 '디아블로' 류의 게임과는 달리 이용시간이 늘어나더라도 레벨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레벨이 올라갔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마우스를 휘저으며 몬스터들을 쓸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레벨이 높고 체력이 많아도 잡몹(졸개 몬스터) 몇 명에게 둘러쌓이거나 절벽에서 컨트롤을 조금만 잘 못하면 순식간에 "YOU DIED" 메시지를 보게될 뿐 아니라, 일단 죽으면 '화톳불'이라는 체크포인트에서 다시 부활하게 되는데 이 경우 그 동안에 잡았던 몬스터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게 되므로 모든 과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 게다가 이런 난이도는 보스(Boss)전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나는데, 보스들은 다양한 패턴을 이용하여 공격을 하는데다 그 파워도 무지막지해서 강력한 공격(특히 '잡기' 한 번 당하면 좌절;;)을 한 번이라도 맞으면 체력의 3분의2가 날아가버린다. 더군다나 이런 공격은 각고의 노력 끝에 보스의 체력이 10(타격 한 번이면 물리칠 수 있는 수준) 정도가 남았을 때도 계속되기 때문에 단 한번이라도 방심하면 강공격 한 방에 사망한 뒤 다시 화톳불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낭패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게임이 지나치게 어려우면 이용자가 게임을 즐길 수 없고, 즐길 수 없는 게임은 엔터테인먼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므로 결국 이용자들이 모두 떠나갈 것 같지만, 결과는 그 반대다. 이 게임은 여전히 많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고 이 게임을 직접 경험한 나로서도 다크소울의 매력에 상당히 젖어들었는데, 주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록 처음에는 어렵지만 반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목표설정"에 있다 할 것이며,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타임루프 시스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플레이 중에 사망하면 화톳불로 돌아가서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은 얼핏 절망적인 요소일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화톳불에 돌아갈 경우 모든 몹들이 다시 살아나기는 하지만 몹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서 같은 패턴의 액션을 보이기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더라도 이를 반복하다보면 결국 상대방의 공격패턴과 주의사항을 파악함으로써 주어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이 게임은 "시행착오"를 본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게임 중에 죽어서 화톳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유저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은 그다지 크지 않다(죽으면 게임 내 화폐로 볼 수 있는 '소울'을 잃게 되지만 괜찮다. 유저의 실력이 향상된다면 소울을 다시 모으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



굳이 변호사가 왜 게임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의아할 수 있기에 이제서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언급하자면, 대한민국 사회 역시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기 위해서는 '화톳불'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크소울이 어렵다고 하지만 실제 사회(real world)를 살아가는 것은 이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 칼을 휘두르는 해골병사나 화염을 내뿜는 용이 등장하지 않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일생동안 수 많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나의 권리를 침탈하고자 하는 자에게 저항해야 하며, 비난과 편견을 이겨내야 하는데다 더 최악인 것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변이가 심하여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의 구성원들은 끝없는 불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불안은 결국 비상식적 행동(비윤리적 행위, 범죄행위 등)을 야기하여 사회의 질서를 깨트리기도 한다.



한정된 재화와 환경을 공유해야 하는 인간사회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경쟁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고 구성원간의 권리가 충돌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할 것이며, 모든 구성원을 질서에 부합하도록 강제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경쟁에서 실패하거나 승부에서 패배한 자라 하더라도 다시 화톳불로 돌아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될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안'이라는 존재를 낮춤으로써 어느 정도 사회질서 유지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에 비하여 대한민국 사회는 '두 번째 기회'에 매우 인색한 편이다. 마치 '한 번 실패는 영원한 실패'로 바라보는 시각이랄까?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바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다면 발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다크소울 플레이어가 30번 죽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31번째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화톳불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 역시 화톳불이 되어줄 수 있는 안전망과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이 30번을 쓰러져도 31번째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개별 국민들이 더 강해짐으로써 국부를 증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도출되기를 바래본다. 아울러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책과 제도가 화톳불이 되어줄 수 있을지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어려운 숙제라 하더라도 의지가 있다면 풀어나갈 수 있다고 본다. 도저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불을 뿜어대는 비룡도 도전을 반복하면 결국 잡아낼 수 있는 것처럼.



바야흐로 화톳불이 필요한 시국이다.


다크소울3- 게임 내 화톳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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