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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석변호사 Jul 26. 2021

분쟁을 부르는 말, 말, 말

의료인의 부적절한 언행은 분쟁의 씨앗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꼬꼬마 의뢰인이 짧은 시간에 삼색볼펜 하나를 부여잡고 완성한 그림.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잘 그렸다.



1.

위 그림은 늦은 오후 사무실에 방문하신 꼬꼬마 의뢰인께서 지루한 상담시간을 버티며 그렸던 것이다(어머니와 함께 방문하셨음). 난 진료기록을 분석하느라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상담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너무 이쁜 그림이 그려져 있길래, 나도 모르게 "우와 너 그림 정말 잘 그린다. 아저씨는 이 그림 반도 못 그릴껄?"이라고 했더니, "이거 아저씨 드려도 되요?"라고 하길래 냉큼 받았다. 



2.

해당 사안은 의료상의 과실 유무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였기에 이러한 취지로 의견을 전달드렸다. 다만, 의뢰인이 법률사무소를 찾아오기에 이른 과정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사건이었기에 몇 자 남겨본다. 



3.

담당의는 소아환자를 불치의 희귀유전질환으로 진단하고 수년간 진료를 해왔다. 그러나 증상의 호전은 없었고 담당의께서 워낙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분(환우커뮤니티에서도 이미 혀를 내두르는 수준)이었기에 외래진료를 볼 때마다 그분의 냉혹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 역시 적잖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5년 정도 경과 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비슷한 수준의 다른 병원에 내원하여 진단을 받은 결과, 종래 진단이 잘못되었고 이는 치료가능한 질환으로서 약물복용을 통해 어느 정도 호전될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받아 이를 시행한 결과 실제로 미약하지만 증상이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4.

그 담당의가 했던 발언들의 내용을 들어보니 적잖이 충격적이길래, 나도 참을 수 없어서 "그런 사람은 공부만 많이 한 싸가지 없는 노인네"라고 욕을 해주었다(아이 앞에서 상스러운 말을 써서 발언 직후 조금 후회되기는 했지만). 의뢰인(어머니)은 작은 눈물 방울을 보이신 후 의료상의 과실로 평가하기까지는 어렵다는 검토의견을 듣고서도 담담하게 귀가하셨다.



5.

의뢰인이 전달한 내용과 사건의 성격을 고려하건대, 비록 이 사건 진단절차가 완벽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만일 담당의사가 그 차가운 언행들을 내뱉지 않았다면 우리 사무실에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6.

의료사고와 의료분쟁은 다른 것으로서, 불측의 사고가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모든 사고가 분쟁으로 비화되지는 않는다. 의료진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언젠가는 분쟁의 씨앗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본인이 내뱉는 말에 조금 더 신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릇 '말'은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인바, 상대방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감정을 배설하는 구멍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두 함께 돌이켜 볼 일이다.






관련 문의 : 정현석 변호사 (법무법인 다우)

연락처 : 02-784-9000

이메일 : resonancelaw@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resonancelaw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정현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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