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의 원인, 예방 그리고 이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2년 전부터 의학전문대학원 3학년생들이 우리 법무법인에서 실습을 수행하고 있다. 실습을 신청한 의대생들의 말에 따르면, 의료인이 되기 전에 의료분쟁의 양상과 해결책 그리고 주의사항 등에 대하여 배울 필요가 있어서 의료전문 법률사무소에서 직접 사건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하는바, 비록 2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해당 기간 동안 법원에 함께 방문하여 의료소송(내가 진행하는 사건) 사건을 방청하기도 하고, 다른 유형의 소송(형사소송, 행정소송) 사건을 방청하기도 하며, 종래 완결되었던 의료소송 사건들의 판결문을 제공한 뒤 예비의료인으로서의 의학적 소견을 교류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알게 된 것은, 일반적으로 의과대학 교육과정에는 의료분쟁에 대한 강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의과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의과대학 내에 법률적 지식을 가진 교수님이 계시지 않을 뿐 아니라, 의학적 경륜이 높으신 교수님들께서도 의료분쟁에 관하여는 많은 경험을 보유하지 않고 있기에(경륜이 높으신 분일 수록 의료분쟁 가능성이 낮은 것이 사실임) 의료분쟁에 관한 정보는 어디서도 얻기 어렵다는 것.
그에 비하여 본인들의 눈과 귀로 확인한 의료업의 현실에 따르면 결국 언젠가는 의료분쟁에 노출될 확률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이에 관한 정보를 얻을 길이 없어서 막연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1년 내내 의료분쟁 사건을 처리하는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미력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사명감이 꿈틀하여, 의대생들이 우리 사무실로 실습을 오거나 혹은 내가 대학병원의 수련의 오리엔테이션 등에서 강의를 할 때 열변을 토하는 부분이 있는바, 오늘은 의료분쟁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관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비록 의료현실에 얼마나 부합하는 내용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약 9년간 의료소송을 취급해 온 변호사의 시각에서 바라본 나름의 철학이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담당 의료인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라 간단히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이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는 전문의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다보니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경향이 있는데(2013년 기준 개원의 중 전문의 비율이 92.4%라고 함),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수련병원에서 1년의 인턴(수련의)과정과 4년의 전공의(레지던트, 가정의학과전문의는 3년) 과정을 거쳐야 하는바, 해당 5년의 수련과정에서는 가히 혹독한 수준으로 의학지식과 술기를 익히기 되므로 적어도 성실하게 수련과정을 거친 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다면 임상실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부분의 영역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어이없는 수준의 의학적 과실을 범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해당 수련과정을 통하여 지식과 술기를 익히기도 하지만, 자신의 지식으로 환자의 질환을 치료하기 어려울 경우 타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으로 전원(transfer 또는 consult)하는 판단력도 함께 익히게 되므로, 소위 '대형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에서는 언제나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이 계속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의료분쟁 처리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집중력 저하
2) 과도한 자기 확신
3) 연구 또는 학습의 단절
이하 각 사유에 대하여 살펴본다.
직업적 근로자는 건강이 좋지 않거나, 피로가 누적되었거나, 정서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나, 다른 고민거리에 압도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집중력이 저하될 수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도 집중력이 흐려지면 교통사고가 발생하 듯, 침습적 의료행위를 하다가 집중력이 저하되면 환자에게 상해 또는 사망의 중대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음은 자명한 이치다. 비록 오랜 기간 동안의 수련과정을 거쳐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하더라도 집중력이 저하되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하자가 있는 물건을 공급하여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다시 정상적인 제품으로 교환하여 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의료업의 경우에는 담당 의료인이 집중력을 잃어 환자에게 악결과(상해 또는 사망)가 발생한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를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현저히 어려운 특성(irreversible)이 있기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의료행위 중 집중력을 유지한다면 의료사고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적 결론에 이르게 되는바, 집중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우선 본인의 육체적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육체와 정신은 별개인 것 같지만 사실 지대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배가 고프면 기분이 불쾌하고, 몸이 피곤하면 생각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일상생활 중 통제가 어려운 원인으로 인하여 육체컨디션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통제가능한 것(과도한 음주 또는 운동 등)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여 육체컨디션을 악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본인 역시 과거 근무 중 스트레스가 많은 날에는 친구들과 술을 한 잔 기울이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지만, 음주 후 다음 날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체감한 뒤로는 주중에 음주를 하지 않고(연말 모임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 금요일 또는 토요일에만 음주를 한다(일요일 음주도 좋지 않다. 다음 날이 근무일이기 때문).
전공의 시절과 달리 개원가로 나와 독립된 '원장' 직함을 가지고 일하다보면 간혹 의학적 독단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 시절에는 수 많은 선배와 교수님들로부터 질책과 교육을 받는 수동적 지위에 있었으나, 전문의 자격을 갖추고 개원가에 나오면 '원장' 또는 '과장'의 지위와 함께 많은 직원들로부터 존중을 받게 되며, 자신이 맡은 환자에 대하여는 다른 의료인의 간섭 없이 능동적으로 의료행위를 수행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때로는 자신의 임상경험과 판단에 대하여 과도한 확신을 갖게 된 나머지 표준적 치료방법을 배제하고 독단적인 방식으로 의료행위를 하게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렇게 독단에 빠진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이 자신의 의료행위에 조언을 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상호간의 의학적 판단을 존중하는 의료계의 문화로 인하여 다른 의료인의 비표준적 의료행위에 대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코멘트를 하기 어렵다보니, 그 독단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별적인 경험은 임상통계적으로 검증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결코 능가할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과도한 자기확신으로 인하여 표준적 진료방식을 무시한다면 그에 따른 위험성이 환자에게 전가될 것이며,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법적책임의 판단에 있어서도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므로, 모든 의료인은 개별적 경험을 임상에 적용함에 있어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무릇 임상적 경험의 영역은 끝이 없는 대양과 같은 것이며, 의료인 한 사람이 겪은 임상경험의 양은 그 광활한 대양 속 한 웅큼의 물방울 수준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공의 시절과 달리 개원가에 나오면 누구도 개별 의료인에게 연구 또는 학습을 강요하지 않으며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매년 관련 의무연수를 받기는 하겠지만 해당 연수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학술적 수준의 상향이 담보될 수는 없다). 그러다보니 일부 의료인의 경우는 학습의 연속성이 단절되어 전공의 시절에 배웠던 지식만으로 의료인으로서의 남은 인생을 모두 채우려 하거나 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의료사고의 씨앗이라 할 것으로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의료인이라면 당연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의료지식은 끊임 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바 표준적 의료서비스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의약품과 치료재료의 변화속도는 의료지식의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른 편인데, 만일 이에 대한 학습을 멈춘다면 개별 의료인의 의학지식 수준은 당 시대의 표준적 의료서비스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개별 의료인의 의학지식이 표준적 의료서비스 수준과 이격될수록 법적 의미로서의 '의료상의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나아가 의료서비스는 단순한 기술(technic)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전문지식을 임상에 적용하는 전문서비스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올바른 지식과 적절한 술기가 밸런스를 이루었을 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식(knowledge)'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인바, 의료인을 포함한 모든 전문가(변호사도 마찬가지)들은 연구와 학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상 의료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바, 이하로는 뜻하지 않게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의 가져야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전달하고자 한다.
의료상의 과실이 개입되어 의료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담당 의료인이 때로는 과도한 자기비하에 빠지거나 지나친 죄책감으로 의료인으로서의 진로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과실을 알면서도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보다는 백번 칭찬받을만 하다 하겠으나, 하나의 사건으로 본인의 진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며 이는 인간사의 본질이다. 다만 의료인의 실수는 여타의 경우에 비하여 더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 있기에 공공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일 뿐......아울러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의료분쟁 사건에 대하여 의료인들을 맹목적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악성댓글들이 이를 지켜보는 의료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기에 언급하건대, 대한민국 사회는 의료인들을 혐오하거나 배척하지 않으며, 오히려 의료인들에게 감사하며 존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깨끗한 유리에 묻은 먼지가 더 눈에 띄듯이 극소수의 악플러들이 작성한 문구들이 눈에 더 잘 띄는 것일 뿐이며, 나아가 거의 모든 인터넷기사에는 극단적 악플들이 달려 있는바 의료사고 관련 기사의 악성댓글들이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당신의 실수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담담한 마음으로 그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고 다시 의료현장으로 돌아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의료인의 사명이라고 본다(Take the responsiblity and Save anther life).
아울러 대한민국 사법질서는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책임을 판단함에 있어서 의료행위의 침습성, 내재적 위험성, 환자의 기왕증, 의료행위 위축으로 인한 사회적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으므로, 혹시라도 부당하게 과도한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우선 의료사고(업무상과실치사상)로 인하여 의료인이 실형(금고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며(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사례는 전국에서 연간 1~2회 발생하는 경우로서 의료인의 과실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피해회복의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사례이며, 그마저도 대부분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현행 의료법은 이러한 죄목으로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의료인의 면허를 박탈하지 않는다. 나아가 민사상의 손해배상책임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의료행위의 침습성, 내재적 위험성 등을 고려하여, 가사 의료인에게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른바 '책임제한의 법리'를 적용함으로써 손해배상책임을 20~80%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는바,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때문에 도산의 수준에 이르는 경우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다. 나아가 만일 본의 아니게 의료사고를 유발하여 법적책임을 부담하게 되었다면, 그 원인과 해결책을 고민함으로써 추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아 더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는 길일 것이다.
끝으로, 의료인과 환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로서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바, 서로 불신하고 혐오하는 태도는 서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법적 책임의 존부를 따지기에 앞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할 터인데, 실제 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늘 아쉬운 마음이다. 의욕이 앞서다보니 두서 없이 장문의 글을 남기고 말았지만 아무쪼록 의사, 환자 누구에게라도 미력이나마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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