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사리 공감하지 못할 수 있겠으나, 이혼은 특정 시점에 이루어진 '사건'이라기 보다 일정한 기간동안 지속되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교통사고처럼 한 순간의 사건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혼 시점 전후 긴 시간동안 이어지는 연속적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도 그러하였는데, 이미 부모님의 이혼 시점으로부터 3~4년 전부터 분해와 재결합을 반복하며 위태로운 순간들을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었는바,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고 부모님은 드디어 힘겨운 가정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는데, 오늘은 그 장면을 기록에 남기고자 한다.
1.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한참이 지나고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어머니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었다. 전라도 시골 오지에서 외할아버지의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집안에서 사람대접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식모살이를 하며 살아오셨던데다가, 집에서는 학교조차 보내주지 않아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는바(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 시절 함께 공부하며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으셨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니 친구가 없고 그나마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가족인 외할머니 조차 일찍 돌아가셨기에, 어머니에게는 마음을 나눌 가족도, 고민을 나눌 친구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언제나 마음이 불안정했고 타인과의 사소한 감정충돌에도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곤 하였다. 나아가 아버지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어머니의 마음의 병은 더 심각해져서 급기야 망상장애(배우자의 외도에 대한 망상)를 동반한 우울증을 나타내었고,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내가 중학교 1학년 되던 해 어느 여름날 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칼을 빼들었다.
2.
사실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는 이미 너무나도 익숙했기에, 두 분의 언성이 높아지거나 욕설이 오고가더라도 나는 '또 싸우는구나' 정도의 생각만 하고 그저 내 할 일을 하곤 하였다. 그 날 역시 평소와 다름 없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앉아서 뭔가 차가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난 그 모습을 보고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 순간 무거운 물건이 땅에 떨어질 때 나는 듯한 소리가 우당탕탕 나길래 느낌이 좋지 않아 방 밖으로 나와보니 어머니의 오른손에는 식칼이 들려있었고, 아버지는 식탁의자를 들어 의자다리 방향으로 어머니의 칼을 막고 있었다. 그동안 두 분이 싸우는 과정에서 못 볼 꼴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광경은 너무도 생소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께서 급박하게 "빨리 방에 들어가 있어."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형과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찌르지 못한 어머니는 계획적이었는지 충동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베란다로 달려가 본인의 몸을 던지려 했고(우리 집은 아파트 8층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쫓아가 어머니의 허리를 감싸안고 집안으로 당겨 내린 후 베란다 창문을 닫아두었다.
3.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거나, 그로부터 오랫동안 그 날 저녁의 사건이 부모님의 이혼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은, 만일 그 때 아버지가 어머니의 칼을 막지 못했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까하는 것인데, 아버지는 그 칼에 돌아가셨을 것이고 어머니는 스스로 몸을 던지셨을테니, 나와 형은 고아가 되었을 것이고, 내가 지금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4.
이혼의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는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 전국 법원에서 진행되는 살인 또는 살인미수 사건의 경우 배우자 또는 연인에 대한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건에서는 보통 살인과 자살을 동시에 시도하는 피의자들이 많은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1) 자신의 인생이 극단으로 치달았고, 2) 내가 죽는 것 외에 더 이상 해결방법이 없으며, 3) 기왕 죽을 바에야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에 대한 응징을 한 뒤에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모두 옳지 않다.
우선, 본인의 인생이 극단으로 치달았는지 아닌지 여부를 현재 시점에서는 알 수 없으며, 이는 그저 자신의 우울한 감정에 심취한 나머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본디 인생이란 긴 시간동안의 마라톤과 같은 것이어서, 지금 현재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가야 할 지 눈앞이 캄캄하다 하더라도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다보면 언젠가는 상당한 수준으로 문제가 해결된 날이 찾아올 뿐 아니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여 해결하는 길도 열려있다. 엉망진창 엉켜버린 전깃줄을 풀 때는 그저 급한 마음만으로 줄을 이리 당기고 저리 당길게 아니라, 차분히 앉아서 엉켜있는 줄의 형태를 관찰하고 분석해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본인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본인이 죽는 것 외에 더 이상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죽는 것은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것일 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낙담하는 이유를 살펴보면,'해결방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해결'의 목표치를 너무 높게 설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평화'를 목표로 한다면 누구나 좌절할 것이요, '작은 대화'와 '서로의 마음에 대한 점진적 접근'을 목표로 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것이니, 애초에 본인이 설정한 '문제해결의 목표치'가 적절한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에 대한 응징론 역시 타당하지 않다. 사람의 인생은 주변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서 비록 지금 현재 본인의 삶이 불행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불행이 어느 한 사람의 과책에서 비록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의적이며, 자기중심적이고, 스스로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위안에 불과한 것인바, 약한 의미의 망상에 이른 것이라 칭하여도 무리가 아니라 본다. 더 나아가 실제로 상대방이 본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살해해버리면 상대방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므로 그 사람이 법적, 윤리적 책임을 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반면, 오히려 당신이 살인자로 비난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니, 상대방을 응징하겠다는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오류가 발생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5.
시궁창 같은 유년시절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나는 변호사가 되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려 노력하고 있고, 이는 그 여름날 밤 어머니가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었다면 있을 수 없는 결과다.당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극단에 치달은 상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세상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없으며, 당신이 증오하고 있는 그 누군가의 잘못만으로 당신의 삶이 구성된 것도 아니다.
죽지말고, 죽이지도 말라. 비록 해결책을 찾지 못하여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당신이 아직 찾지 못한 것일 뿐 언제나 해결책은 존재하며, 그 해결책에 살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