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육아를 하다보니 종종 동화책을 읽어주게 된다. 그 중 유독 읽어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벌거벗은 임금님'이야기다.
허영에 눈이 먼 임금님이 말도 안되는 협잡꾼의 감언이설에 속아 똑똑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옷(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옷)을 입겠다며 결국 속옷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였는데, 임금님의 권위 앞에서 감히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 하지 못하다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고 돌아다니네?"라고 말하는 것이 들리자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궁궐로 줄행랑을 쳤다는 이야기다(모르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명한 동화).
어릴 적 기억에 따르면 이 동화는 허영에 빠진 사람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이야기이며, 나 역시 아이들에게 이러한 취지로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었는데, 어째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현실에서 범죄사건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은 간혹 비뚫어지거나 왜곡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피해자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조금 더 어리숙하거나 냉철하지 못한 판단력으로 인하여 범죄의 표적이 된 사건의 경우,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등의 시각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성범죄의 피해자에게 "너도 조심했어야지", "그러게 그런 사람을 왜 만나", "왜 그 때 거절하지 않았어"라고 말하거나, 사기 피해자에게 "넌 왜 항상 당하고만 사니?", "딱 봐도 거짓말인데 왜 그걸 의심하지 않았어?", "일확천금을 노리니까 당하는거야. 성실하게 살아"라는 등의 발언을 반사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발언을 유발한 의식이 구축된 배경에는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동화 속 메시지가 우리의 내면에 왜곡되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떠한 사건에서도 범죄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피해자가 어리숙하거나 판단능력이 부족하였다면 마땅히 그를 돕고 보완하는 것이 공동체 질서에 관한 상식이라 할 것인바,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질서를 무너뜨리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이는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커져야 할 사정일 뿐 피해자를 비난해야 할 사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자의 숙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아이들에게 벌거벗은 임금님을 동화책 그대로 전달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음과 같이 마무리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