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새벽배송의 아이콘’이던 컬리, 무엇이 발목을 잡았나
한때 대한민국 온라인 유통의 혁신으로 주목받던 마켓컬리가 위기설에 휩싸였다. 신선식품을 새벽까지 배송한다는 개념은 당시 소비자에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경험’이었고, 컬리는 이를 가장 빠르게 현실화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2024년 말에 접어들며, 컬리는 매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며, IPO(기업공개)는 두 차례나 연기되었고, ‘성장하는 유니콘’이라는 타이틀은 점점 무거운 족쇄로 변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컬리는 왜 위기인가? 그리고 이 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1. ‘고객 경험’에 치중한 나머지 무너진 수익 구조
마켓컬리는 ‘고객 경험’이라는 키워드에 집요하게 집중한 기업이다. ‘샛별배송’, ‘정기배송’, ‘유기농 상품’, ‘품질 보증’ 같은 차별화된 서비스는 분명 소비자 만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고비용 구조였다.
컬리는 전체 매출의 95% 이상을 ‘직매입’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는 재고 부담을 전적으로 기업이 떠안는 구조로, 자칫 재고 회전율이 낮아지거나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 큰 손실로 이어진다. 실제로 컬리는 상품 폐기 손실과 물류비, 보관비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국 단위의 물류 인프라를 자체 구축했다는 점이 부담을 가중시켰다. 컬리는 고객에게 ‘당일 저녁 주문, 다음 날 새벽 도착’이라는 편익을 제공하기 위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도로 정교한 물류망을 설계했다. 그러나 이는 IT 시스템, 냉장·냉동 보관 설비, 배송 인력에 이르기까지 매출보다 빠른 고정비 증가로 이어졌고, 성장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컬리의 평균 객단가는 약 3만~4만 원 수준으로, 물류 비용과 인건비를 커버하기에 턱없이 낮은 수치다. 일반적인 이커머스 플랫폼이 소비자의 ‘충동 구매’나 고단가 가전, 패션 등으로 수익을 회수하는 것과 달리, 식품 중심의 컬리는 구조적으로 수익성 창출이 어려운 업종이었다.
2. 더 이상 독점이 아닌 ‘새벽배송의 레드오션’
컬리가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때, ‘샛별배송’은 거의 독점적 서비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쿠팡, SSG닷컴, 롯데온, B마트 등 유통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들었다. 쿠팡은 로켓배송에 더해 식품 중심의 ‘쿠팡프레시’를 강화했고, 이마트는 SSG 배송으로 프리미엄 소비층을 공략했다.
기존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은 컬리보다 훨씬 탄탄한 상품 수급력과 오프라인 매장 기반의 유통 인프라를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더 저렴한 가격과 더 넓은 배송권을 앞세워 컬리를 빠르게 따라잡았다. 이제 ‘새벽배송’은 컬리만의 전유물이 아닌, 선택지 중 하나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반짝했던 온라인 식품 소비 특수도 2022년부터 급격히 꺾이기 시작했다. 비대면 소비는 다시 오프라인 회귀로 전환되었고,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유기농’보다 ‘실속형 생필품’을 선호하게 되었다. 컬리가 추구하던 브랜드 가치는 시장 전체 흐름과 괴리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가격경쟁력이 약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컬리는 고품질 프리미엄 제품을 정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대형 유통기업들이 대량 매입으로 원가를 낮춰 가격을 경쟁력 있게 제시하면서, 가격 민감도가 높은 소비자들이 컬리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컬리는 1인 가구와 워킹맘, 고소득 전문직 중심으로 타깃을 좁게 잡았지만, 시장은 점점 더 넓은 대중을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컬리의 ‘틈새 전략’은 유효했지만, 더 이상 틈새가 아니게 된 것이다.
3. IPO 실패와 자금 조달 압박
컬리의 위기감이 극대화된 결정적 계기는 기업공개(IPO)의 두 차례 실패였다. 국내 증시 침체와 적자 구조가 겹치면서 상장을 추진했던 2022년과 2023년 모두 무산되었다. IPO는 단순히 주식 상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투자를 이끌어내는 신뢰의 상징이기 때문에, 두 차례 실패는 외부 투자자들에게 큰 우려를 남겼다.
2024년 기준 컬리의 누적 결손금은 2조 원을 넘어섰다. 한때 기업가치 4조 원 이상을 평가받던 컬리는 비상장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마켓컬리는 언제쯤 수익을 낼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시선을 받기 시작했다. 비전펀드와 같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초기 대규모로 자금을 투입했지만, 손정의의 투자 실패 사례들과 겹쳐지면서 리스크 우려가 커졌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컬리는 인건비 감축, 마케팅 축소, 물류 자동화 확대 등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기업의 정체성을 지탱하던 ‘경험 중심의 고급 서비스’는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4. 컬리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컬리는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컬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컬리는 조정된 EBITDA 기준으로 흑자 전환을 시도하고 있고, 물류센터 효율화와 자동화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있다. 뷰티컬리와 같은 신사업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며 ‘식품 중심’이라는 틀을 넘어 새로운 수익원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컬리는 여전히 고급 소비층 사이에서 ‘믿을 수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단골 고객의 재구매율도 높고, 브랜드 충성도 역시 강력하다. 이 같은 자산을 기반으로, 컬리는 대중화 전략보다는 오히려 ‘소비자 세분화’에 집중하는 정교한 포지셔닝 전략으로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
지금 컬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 중심 전략에서 수익 중심 전략으로의 전환이다. 시장을 무작정 넓히기보다는, 핵심 고객군을 정밀하게 정의하고, 그들에게 맞춤형 혜택과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재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유통·물류 효율화를 통해 기존 비용 구조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샛별’은 질 수 있지만, 다시 뜰 수 있다
마켓컬리는 실패한 기업이 아니다. 다만, 너무 빨리 성장했고, 그 성장의 속도에 맞는 ‘수익성의 근육’을 키우지 못했을 뿐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자신이 잘못한 방향을 인정하고, 구조를 바꾸려는 용기를 가진 기업이다.
샛별배송이 한국 유통시장에 던졌던 충격은 분명 의미 있었다. 그리고 그 샛별은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다. 컬리가 다시 뜨기 위해선, 이제 ‘누구보다 먼저’가 아니라, ‘누구보다 탄탄하게’ 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