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이 말한 브랜드의 철학, 그리고 우리가 팔아야 할 것들
2013년, 슬랙(Slack)의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팀원들에게 한 통의 메모를 남긴다. 그 안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안장을 팔지 않는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단순했다. 우리는 제품 자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이 만들어내는 경험과 변화, 그리고 사용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안장을 예로 들었다. 사람들이 안장을 사는 이유는 안장 자체가 예쁘거나 기능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말을 더 잘 타는 경험이며, 더 멀리 달리고 더 빠르게 나아가는 자유다. 안장은 단지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기능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와 감정을 사는 것이다.
슬랙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슬랙은 새로운 사내 메신저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이미 수많은 협업 도구가 시장에 존재하던 상황이었다. ‘또 하나의 채팅 앱’으로 인식되는 것은 차별화의 실패를 의미했다. 버터필드는 이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우리는 메시징 기능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잘 협업하고, 더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더 유연하게 연결되는 조직 문화를 판매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능을 넘어선 철학, 그것이 슬랙의 진짜 전략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제품의 기능에 집중한다. 더 빠른 속도, 더 많은 옵션, 더 편리한 인터페이스. 그러나 진정한 브랜드는 기능만으로 고객의 마음을 얻지 않는다. 사람들은 제품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이 되기를 원한다. 슬랙은 이런 욕망을 정확히 이해했다. 슬랙을 사용하는 팀은 스스로를 ‘효율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인식한다. 이는 단지 도구를 쓰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고, 팀의 정체성까지 형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감성적인 포장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슬랙을 도입한 많은 조직에서는 이메일 사용량이 50% 이상 감소했고, 회의 시간은 줄었으며, 커뮤니케이션의 속도는 현저히 빨라졌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은 슬랙을 도입한 뒤 ‘보고 문화’를 완전히 없애고, 업무의 모든 흐름을 슬랙 스레드를 중심으로 재편성했다. 한국의 핀테크 기업 토스는 고객 응대 과정에 슬랙을 도입함으로써 팀 간의 실시간 협업을 가능하게 했고, 문제 해결 시간은 10분에서 1분 이내로 줄어들었다.
IBM은 더 나아갔다. 슬랙을 조직 내 ‘정보의 신경망’으로 구축하여 전 세계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하나로 연결했다. 그 결과, 부서 간 장벽이 낮아지고, 리더십은 더 빠르게 조직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슬랙은 단순한 툴이 아니라, 조직이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를 바꾼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쯤 되면 우리는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기능은 쉽게 모방될 수 있지만, 경험은 그렇지 않다. 브랜드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정체성을 바꾸는 경험이다. 슬랙은 제품으로 시작했지만, 경험으로 확장되었고, 철학으로 정착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팔고 있는가? 더 빠른 기술인가? 더 저렴한 가격인가? 아니면 그 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게 될 변화와 성장인가? 고객이 우리 제품을 통해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가?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브랜드는 사용자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설계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다 해도, 사용자가 그것을 통해 변화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안장’만을 팔고 있는 것이다.
슬랙은 이 질문에 가장 정확하게 답했던 브랜드였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안장을 팔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이 더 잘 탈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철학은 슬랙을 경쟁의 바다에서 단숨에 브랜드로 만들어주었다. 제품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는 ‘믿음’을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결국, 고객은 우리 제품의 기능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통해 자기 삶이 바뀌었다고 느낄 때 감동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변화를 파는 브랜드’가 가져야 할 자세다. 오늘도 수많은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는 오직 하나, 사람들의 행동과 정체성을 바꾸는 브랜드다.
다시 한 번, 그 문장을 떠올려야 할 때다. 우리는 안장을 팔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을 팔고, 변화의 가능성을 팔고,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힘을 판다. 그 단순하지만 깊은 철학이, 세상을 바꾸는 브랜드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