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돌한 나라, 이스라엘이 창업을 키우는 법
이스라엘의 청년 창업과 후츠파 정신,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그건 불가능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목표를 제시받았을 때 도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르다.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받았을 때, 오히려 기뻐하며 열과 성을 다해 도전한다. 완벽한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늘 의미 있는 해답을 찾아낸다. 때로는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내기도 한다.
이 놀라운 태도의 배경에는 이스라엘 고유의 정신, ‘후츠파(Chutzpah)’가 존재한다.
후츠파는 히브리어로 ‘당돌함’이나 ‘뻔뻔함’에 가까운 말이다. 전통적 권위에 도전하고,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자기주장을 주저 없이 표현하는 태도를 뜻한다. 겉으로는 무례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후츠파가 창의성, 주도성, 문제 해결력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이 정신은 교육, 군대, 기업, 가정 어느 곳에서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며, 결국 이스라엘을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후츠파를 길러내는 데 철저히 최적화되어 있다. 교사는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도록 이끈다. 어린이들은 두려움 없이 “왜 그런가요?”, “다르게 하면 안 되나요?”라고 묻고, 틀릴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교실은 질문과 토론이 중심이 되고, 결과보다 탐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아이들은 이 과정 속에서 자기주도성, 창의력, 회복 탄력성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사회는 곧,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려는 태도를 가진 창업가를 길러낸다.
이러한 교육은 일상의 공간에서도 강화된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의 ‘쓰레기장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자유와 위험을 동시에 허용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낡은 가구, 철제 구조물, 버려진 전자제품으로 가득한 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놀잇감을 스스로 조합하고 협력하며 창의적으로 놀 수 있다. 이 경험은 위기관리 능력, 협상력, 갈등 해결 능력 같은 소프트스킬을 자연스럽게 키우게 한다. 어른들은 개입하지 않고, 규칙도 최소화한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고방식을 갖도록 돕는다.
이스라엘 교육 문화의 또 다른 축은 ‘발라간(Balagan)’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무질서’ 또는 ‘혼돈’을 뜻하는 말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삶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함을 전제하고 살아간다. 아이들은 ‘정해진 답’ 없이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는 법을 익힌다. 이처럼 발라간은 예상치 못한 변수에 적응하며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군 복무 역시 이스라엘 청년들에게 창업가적 자질을 함양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유닛 8200이라는 정보부대 출신들은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데이터 해석 등 기술 기반의 실무 경험을 10대 후반부터 실전처럼 수행하며 문제해결, 빠른 의사결정, 리더십을 체득한다. 이들은 전역 후 자연스럽게 창업시장으로 진입하고, 이미 경험 기반의 네트워크와 실력을 바탕으로 기술창업에 나선다.
유닛 8200 출신들이 만든 스타트업 생태계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별도의 펀딩 생태계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받는 창업 라인으로 자리 잡았다.
후츠파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인발 아리엘리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후무스를 먹으며 후츠파 문화를 체득했고, 유닛 8200에서 장교로 복무하며 기술 기반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웠다. 제대 후에는 이스라엘 기술산업의 선두에서 수많은 기업가 지원 프로그램을 설계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혁신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녀는 “질문하는 아이가 미래를 바꾼다”는 철학 아래, 다양한 창업 교육 단체의 이사로 활동하며 후츠파 교육을 전파하고 있다.
그녀가 강조하는 이스라엘식 교육의 핵심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자율성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시간을 보내고, 정해진 계획 없이 길을 걸어 다니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히브리어로 ‘리즈롬(לזרום)’이라 불리는 이 즉흥성과 개방성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를 키운다.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는 곧, 미래를 설계하는 힘이다.
실패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이스라엘 사회는 실패를 배척하지 않는다. 실패는 학습의 기회이며, 극복의 대상이다. 심리학자들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된 후 실패를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아이가 넘어지게 놔두고, 아이는 그 속에서 회복탄력성을 배운다. 실패는 곧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며, 기업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내성이다. 창업에 있어 실패는 끝이 아니라 다음 도전의 밑거름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단지 ‘스타트업이 많은 나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문화, 교육, 철학, 용인(容認)의 토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들은 창업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도전을 당연하게 만든 것이다.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게 했고, 성공만을 추구하기보다 실패 속에서 배움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이스라엘식 후츠파는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너도 할 수 있다. 아니, 네가 해봐야 한다." 창업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고, 생존은 끊임없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질문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해답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