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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스라엘은 창업국가가 되었는가?

청년에게 도전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 시스템의 비밀

by 김재균ㅣ밀리더스

전 세계의 젊은 창업자들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하는 나라가 있다. 땅은 작고 자원도 부족하며, 주변국과의 긴장 상태가 일상화된 중동의 한 나라. 그러나 이 나라는 연간 수백 개의 스타트업을 쏟아내고, 인공지능·사이버보안·의료기술 등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혁신기업들을 꾸준히 배출한다. 바로 ‘창업국가’라 불리는 이스라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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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어떻게 이런 창업 강국이 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자금, 인재, 기술 같은 요소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진짜 비밀은 청년들에게 창업을 '가능한 선택'이 아닌 '당연한 선택'으로 만든 사회 시스템에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창업이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창업이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출발점은 이스라엘이 처한 환경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내수시장이 작고 자원이 부족한 국가다. 주변 국가는 대부분 적성국이며, 늘 외부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 속에 있다. 즉, 이들은 처음부터 자립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수입이나 복지가 국가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과 민첩성, 기술력이 곧 생존 수단이 되는 사회였던 것이다. 이처럼 외부 환경이 청년들에게 ‘시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했고, 창업은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창업이 단지 생존의 수단이라면, 그것이 지속적인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문화와 제도를 입혔다. 청년기부터 일관되게 이어지는 교육과 군 복무 경험, 정부의 지원체계와 사회적 인식은, 창업이 청년의 삶에서 ‘선택’이 아닌 ‘당연한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정답을 외우는 방식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왜 그런가’를 묻는 태도이며, 질문 자체가 수업의 중심이 된다. 이런 교육은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해법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훈련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교실에서는 교사가 질문을 주도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먼저 질문하고, 토론하며, 생각을 확장시켜 나간다. 바로 이 과정이 아이디어와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바탕이 된다.


또한 이스라엘의 군 복무는 단순히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정보부대인 ‘8200부대’는 창업의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창업자 배출이 활발하다. 이 부대에 선발된 청년들은 10대 후반부터 사이버 보안, 첨단 감청 기술, 인공지능 분석 등 국가 핵심 안보기술을 실무로 접한다. 제한된 자원 속에서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고, 팀으로 협업하며 복잡한 위기를 풀어내야 하는 환경은 그 자체로 최고의 창업 훈련이 된다.


8200부대 출신들은 제대 후 ‘자연스럽게’ 창업을 선택한다. 이미 실전 경험이 있고,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있으며,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과의 신뢰 기반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이들만의 창업 네트워크와 투자 생태계가 따로 존재할 정도다. 한국에서 전역한 군인은 사회와 다시 연결되기 위한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이스라엘의 전역자는 오히려 창업 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재로 취급받는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을 가능하게 만든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이스라엘 정부는 창업을 독려하되,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는다. 대신 반드시 필요한 순간, 가장 큰 리스크를 함께 떠안는 방식으로 ‘신뢰’의 정책을 펼친다. 대표적인 예가 ‘Tnufa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아이디어만 있어도 정부가 시드머니를 지원해주는 구조이며, 만약 실패하더라도 부담은 없고, 성공했을 때 일정 비율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는 창업자가 느끼는 심리적 장벽을 확연히 낮춰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패’에 대한 태도다. 이스라엘에서는 한 번의 창업 실패가 오히려 다음 창업에서 더 높은 신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은 창업자가 어떤 실패를 했는지, 그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즉, 실패는 배제의 기준이 아니라, 학습의 증거다. 이것이 청년들로 하여금 망설임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다.


결국 이스라엘 창업 제도의 핵심은 정책이 아니라 믿음이다. 국가는 청년의 가능성을 믿고, 사회는 실패한 도전을 인정해 주며, 학교는 아이들의 질문을 존중한다. 이런 신뢰의 구조가 쌓이면서, 청년들은 자신도 창업할 수 있고, 창업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이스라엘이 창업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돈이나 기술이 아니라, 청년 개개인의 가능성을 국가가 끝까지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곧 문화가 되었고, 문화는 결국 세계가 주목하는 창업 생태계를 만들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한 벤치마킹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청년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고, 어떤 자유를 허용했는지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청년에게 시도할 수 있는 권리, 실패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줄 때, 비로소 창업은 특별한 일부의 선택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삶의 하나의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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