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미국 조지아에서 열린 ‘베스트 레인저 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군사훈련 대회 중 하나다. 사흘간 수면 없이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시험받는 이 대회는 미 육군 내에서도 레인저 탭을 수료한 정예 병력만이 참가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올해 이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장교가 출전해 전체 14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가브리엘 화이트 중위는 남군 파트너와 완전히 같은 조건에서 경쟁했다. 별도의 기준도, 성별 배려도 없었다. 오직 능력과 결과로 평가받았고, 실력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며 다시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아직도, 여군과 남군을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군은 ‘양성평등’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양성 구분형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같은 계급의 남군과 여군이 동일한 과제를 수행해도, 평가 기준은 다르다. 체력 평가 종목은 같지만, 윗몸일으키기나 오래달리기, 팔굽혀펴기 등의 수행 횟수 기준이 성별에 따라 다르며, 이에 따라 전투준비태세 점수나 진급심사에서도 차등 점수가 적용된다. 이러한 구조는 남성 군인에게 불만을 낳기도 하지만, 사실 여군에게 더 큰 부담과 의심을 안긴다.
능력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오해, 배려받아 승진했다는 편견, 조직 내에서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중의 장벽이 여전히 존재한다.
군대는 실전 조직이다. 지휘관의 명령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구성원이 그 리더를 신뢰해야 한다.
그러나 “기준이 다르다”는 전제가 있는 순간, 신뢰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여성이라서 기준이 낮다”는 인식은 “여성이라서 진짜 리더가 되긴 어렵다”는 집단적 무의식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여군 스스로도 자신의 리더십을 의심하게 만든다. 진정한 평등은 기준을 다르게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같은 기준에서 같은 출발선에 서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정이고, 신뢰의 시작이다.
미국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도 남녀 체력 기준을 나누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ACFT(Army Combat Fitness Test)’라는 통합 기준 체계로 개편해 성별이 아닌 직무 중심 체력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레인저 스쿨, 그린베레, 특수부대 등에도 여성의 진입을 허용하되, 그 진입 조건은 남성과 완전히 동일하다. 레인저 훈련을 수료한 여성의 비율은 낮지만, 그만큼 수료한 여성은 확실한 실력과 신뢰를 얻게 된다. 이들이 지휘관이 되었을 때, “여성이라서 봐준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 모든 기준이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보호주의적 평등’에 머물러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약하니까 배려하자”는 논리는 겉으로는 인권적이지만, 실상은 차별을 고착화한다. 여군 체력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도, 여군 간부는 평가·진급·지휘권 행사에서 늘 배경 설명이 필요한 ‘예외적 존재’가 되어버린다. 특히 전투부대와 특수임무부대의 일부 직책이 여성에게 제한되거나 사실상 진입이 어려운 구조는, 체력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신뢰 부재가 원인이다. “같은 계급, 같은 책임, 다른 기준”이라는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여군의 리더십은 실력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물론 남성과 여성의 평균 체력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군대는 평균치를 기준으로 인사를 뽑는 곳이 아니다.
군은 전투에 적합한 ‘상위 전투력’을 보유한 이들을 뽑고 훈련시키는 조직이다.
그렇기에 여성 중에도 상위 체력과 지휘능력을 갖춘 인재는 분명 존재하며, 그들에게는 남성과 동일한 기준으로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오히려 체력을 나눠 평가하는 제도는, 이런 여성 인재의 등장을 막고, 그녀들의 실력을 ‘성별 배려’로 오해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가 된다.
평등은 결과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공정하게 주고, 같은 기준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군대는 말 그대로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을 선별하고, 그 중에서 리더를 만든다.
그 과정에 예외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성별을 이유로 기준을 달리하는 순간, 그 리더는 본질적으로 구성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없고, 이는 곧 조직의 효율성과 전투력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미국 육군은 여군이 혼성 팀으로 레인저 대회에 나가고, 남성과 같은 조건에서 평가받으며 상위권에 입상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한민국 군도 이제는 체력 평가 기준을 재설계해야 한다. 여군이라는 이유로 점수를 조정하거나, 승진 조건을 다르게 설정해서는 안 된다. 만약 특정 직무에 필요한 체력이 있다면, 그 직무 기준을 통합하고 남녀 구분 없이 똑같이 적용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누가 그 기준을 넘는지를 보는 것이 공정한 선발이고, 진짜 실력을 인정받는 구조다.
"저는 여군으로서가 아니라, 전우로서 이 경기에 임했습니다."
베스트 레인저 대회를 마친 가브리엘 화이트 중위의 말이다.
이 짧은 문장이 주는 울림은 크다.
대한민국 여군도 ‘군인의 이름’으로 평가받고 싶다.
남녀를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군대라는 조직이 추구하는 임무 수행력과 책임감으로 평가받고 싶다.
이제는 우리 군도 응답해야 한다. 배려가 아닌 기준의 평등.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군인이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로.
그것이 진짜 국방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