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정치인사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는 뜨겁고, 각 당의 대선 캠프는 분주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분주한 이들이 있다. 바로 예비역 장성들이다. 정치권에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움직임이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식당에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예비역 장성을 포함한 전·현직 장교 90여 명이 모여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런 모습은 이번 선거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선거철이면 예비역 장교들이 너도나도 대선 캠프에 줄을 서고, 그들의 이력에는 늘 ‘캠프 활동’이 추가된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한 자리’를 위한 것이다.
대선이 끝나면 캠프에 참여했던 예비역 군인들은 국방·보훈 관련 기관의 주요 보직을 차지해왔다. 병무청, 보훈부, 국방부 산하 기관은 물론 대사직, 공기업 임원 자리까지도 그들의 몫이 된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나이지리아 대사로 임명된 김판규 전 해군 참모차장은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의 ‘미래국방혁신 4.0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 밖에도 주아랍에미리트 류제승 대사, 주콜롬비아 이왕근 대사, 주사우디아라비아 최병혁 대사 등 캠프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외교직을 맡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군 출신으로서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실제로 외교나 정책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입증받은 경우는 드물다.
문제는 이런 낙하산 인사가 외교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위산업 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 주요 기관장 자리 역시 군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고, 이들의 임명 배경에는 늘 ‘캠프 경력’이 언급된다. 방산 분야에 대한 실질적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정치적 줄을 잘 탔다는 이유로 자리를 보장받는 현실은 국방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심지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으로 임명된 공군 출신 강구영 사장은 취임 이후 3개월 만에 20여 명의 임원을 교체하고 자신이 속했던 단체와 공군 출신 인사들로 주요 자리를 채우는 대규모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는 단순한 인사 재편이 아니라, 국방산업 전반에 걸친 전문성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과연 그들이 정말 필요한 인재인가?”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능력으로 증명된 것인가, 아니면 줄을 잘 선 결과인가?” 현재 대한민국 군이 직면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병사 월급 인상과 복무기간 단축 문제는 단순히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전투력과 직결된다. 현재 육군과 해병은 18개월, 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1개월의 복무기간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병사가 숙련도를 갖추기 위해 최소 1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즉, 실질 복무 가능 시간은 단 몇 개월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교육과 훈련에 소모되면서 실전 대비 능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구조에서 병사 전투력의 저하를 막기 위한 정책적 고민은 뒷전이고,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던 복무 단축과 월급 인상이 지금의 문제를 만들어냈다.
더불어, 간부 계층의 사기 저하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소위와 하사 1호봉의 기본급은 180만 원 안팎이며, 각종 수당을 포함해도 실수령액은 병사와 큰 차이가 없다. 2025년 기준 병사 월급은 130만 원이 넘으며, 세후 금액을 고려하면 하사보다 많은 실수령액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는 당연히 간부 지원율 하락으로 이어지며, 장기복무자 부족과 간부 인력 공백 문제를 낳는다. 실제로 최근 수년 간 초급간부 모집이 급감했고, 특히 하사·소위의 신규 지원율은 ‘출산절벽’ 현상까지 겹쳐 절망적인 수준에 가까워졌다. 중간간부들마저 병사 월급 인상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연금개혁 불확실성, 불투명한 진급 환경 등에 실망해 중도 이탈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허리가 무너지고 있는 군대’, 이것이 현재 우리가 마주한 국방의 민낯이다.
이처럼 중장기적으로 군 인력의 질과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선 캠프는 여전히 장군 출신, 고위 예비역 중심의 인사풀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진정 필요한 인재는 오랜 군 복무를 통해 실무와 현실을 경험한 ‘소령급 청년 간부’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30대 중후반이며, 이미 지휘 경험과 실무 역량을 갖췄을 뿐 아니라 병사들과의 세대 간 공감 능력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39세 이전이 정년인 소령급 인재들은 병사·초급간부·중간간부의 고충을 모두 알고 있으며, 실제 전투부대에서 고민하고 행동해본 ‘실전형 전략가’이자 ‘현장형 관리자’다. 이런 인재들이야말로 정책 설계, 인사개혁, 장병 복지에 있어 국민과 병영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에서는 이들이 정치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창구조차 없다. ‘정무감각’, ‘정치적 인맥’, ‘위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대선 캠프에 초대받지 못한다. 결국 소령급 전문가들은 사회에 묻히고, 이미 은퇴한 장성들이 캠프 앞자리를 차지하며 보훈단체, 방산기관, 공기업으로 다시 흘러들어간다. 국방은 늙어가고, 미래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는 묻는다. 예비역 장성들은 자신들이 국방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단지 계급이 높았고 군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복잡하고 첨단화된 국방과 외교, 방산 정책을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늘날의 국방은 더 이상 병력 수의 싸움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기술, 국제정치와 안보전략이 교차하는 복합 시스템이다. 과거의 영광과 줄서기 능력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력 있는 전문가, 장기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정책가, 그리고 무엇보다 국방의 공공성과 군인의 사기를 함께 고려할 수 있는 ‘미래형 인물’이 필요한 시대다.
이제는 정치가 아니라 정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더는 ‘누구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대선 캠프에 모여든 예비역 장교들이 정말 국방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 자신이 적합한 사람인지 먼저 되물어야 한다. 대중 앞에서, 그리고 12·3 계엄군의 상처를 기억하는 국민 앞에서 과연 그들이 당당히 “나는 국방 전문가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국방은 자리를 위한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방은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며, 그 중심에는 실력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줄을 잘 선 사람이 아니라, 국방을 잘 아는 사람이 대우받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선거가 끝나고, 캠프가 사라져도 군은 남고 안보는 계속된다. 그렇다면 그 중심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은, 누구여야 하는가.
바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단순히 캠프에 줄을 선 장성급 인사들로 자리를 채울 것이 아니라, 실제 군을 알고, 병사와 간부의 현실을 모두 체득한 소령급 전역자들 중 능력 있는 인재를 공개채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선 캠프와 정부 각 부처는 이러한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할 책임이 있으며, 정치적 추천이 아니라 공모와 면접을 통해 실력과 소통 능력을 갖춘 청년형 군 인사를 선발해야 한다.
이들은 단지 젊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현역 시절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고 중간간부로서 고군분투한 실무형 리더들이다. 평균적으로 39세 이전에 전역하는 소령 간부들은 체력적·사회적 감수성 모두에서 청년 병사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무엇보다 군 내부의 문제를 ‘제3자’가 아닌 ‘당사자’로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병사들의 현실을 대변하고, 초급간부들의 고충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군 내 MZ 대표’이자 ‘세대 공감형 국방 리더’다.
이제는 예비역 장군이 아닌, 예비역 소령이 정책 전면에 나서야 할 때다. 국방 개혁은 탁상공론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줄이 아니라, 군대를 살아낸 시간이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