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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모병제 확대·군 가산점 제도 부활

해병특전사령부·국군우주사령부 추가된 5군 체제 제시장비 현대화

by 김재균ㅣ밀리더스

“여성도 군대 가자.” 이 구호는 이제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대한민국 병역제도 개편의 뜨거운 쟁점으로 자리 잡은 이 문장은, 표면적으로는 젠더 간 형평성의 요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 안보 전략, 인구 구조 변화, 군 조직 문화 개혁이라는 복합적 이슈들이 얽혀 있다. 특히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은 다시금 병역 제도라는 민감한 주제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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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남녀 전문 병사를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또 누군가는 여성까지 포함한 징병제를 도입하자고 말한다. 대중은 공정이라는 단어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모든 논의가 실체 없는 선심성 공약일 뿐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이번에도 익숙한 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2025년 대선에서도 병역제도 개편은 핵심 공약으로 등장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모병제를 확대해 전문 병사 체제를 구축하고 군 가산점 제도까지 부활시키자고 주장하며 모병 중심의 방향성을 제시했고,


유정복 인천시장은 출생아 수 감소로 인한 병력 자원 부족을 근거로 남녀 모두 복무하는 징병제를 주장했다. 그는 연간 입대자 수요 25만 명에 비해 남아 출생 수는 12만 명에 불과하다며, 여성 징병이야말로 청년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공정한 병역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병역제도 개편에 목소리를 더했다. 그는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며 병력 규모를 간부 중심으로 줄이고, 여성 모병도 확대하자고 강조했다. 그와 동시에 성차별, 성폭력 등 군대 내 뿌리 깊은 문제에 대한 구조적 개혁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언사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빠져 있다. “대한민국 군대는 앞으로 얼마나, 어떤 병력을 필요로 하는가?” 병역제도 논의의 시작점이자 핵심이 되어야 할 질문이지만, 후보들의 주장 대부분은 감정적 프레임이나 단기적인 정치적 효과를 노린 선언에 그치고 있다. 병력 감축에 따른 대체 방안도, 징병 또는 모병제 전환에 따른 작전 수행 능력 변화도, 장기적인 예산 소요도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 없다. 여성 징병제는 특히 공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논의되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한 공정인가에 대한 고민은 생략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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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1조가 보장하는 법 앞의 평등, 헌법 제39조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는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다는 점에서, 여성도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법리적으로는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현실은 법 조항보다 훨씬 복잡하고 냉정하다. 현재 대한민국 군대는 여성 징병을 전면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제도적, 조직적, 문화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여군 비율은 여전히 7% 수준이며, 대부분이 행정, 교육, 의무 등의 보직에 한정되어 있고, 전투 보직은 극히 제한적이다. 생활관, 화장실, 샤워실 등 기본 시설조차 성중립적 설계가 부족하고, 군 내부의 조직 문화 역시 남성 중심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더욱이 여성 장교, 부사관조차 육아와 일의 병행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조기 전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여군 확대는 여전히 ‘성평등을 위한 수단’이 아닌 ‘국가 인력 부족 보완책’으로만 접근되고 있다. 이처럼 구조적, 문화적 토대가 부실한 상황에서 여성에게 의무 복무를 강제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지 병역 형평성을 넘은 새로운 불평등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병제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모병제를 자유와 전문성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자발적으로 군 복무를 선택하고, 그 대가로 충분한 보상과 경력 경로를 제공받는 구조는 분명 선진적이다.


그러나 그만큼의 투자가 필요하다. 국회예산처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30만 명 병사 기준으로 전면 모병제를 시행하려면 병력 규모를 15만 명으로 줄이더라도 매년 1조 2천억 원 이상, 20만 명 유지 시에는 매년 2조 6천억 원 이상의 추가 재정이 소요된다. 단지 월급을 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생활 여건, 장기 복무 인센티브, 복무 이후 전직 연계, 사회적 인식 개선 등 전방위적 개혁이 요구된다.


대만은 모병제의 현실적 문제를 잘 보여준다. 2018년 모병제로 전환한 대만은 모집병 충원율 저하, 질적 수준 저하 등 여러 한계에 부딪혔다. 이로 인해 4개월이던 군사훈련을 1년으로 연장하며 사실상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특히 사회적 인식이 낮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이 지원을 집중하다 보니 모병제가 계층 분리를 심화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한국 역시 이같은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모병제를 도입하면서 우수 인재를 군에 유치하려면 군이라는 직업의 매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정답은 단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체계적인 전략과 준비다.


첫째, 병역제도 개편은 감정이 아니라 현실 기반의 병력 산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실제로 작전 수행에 필요한 병력 규모는 얼마이며, 각 병과별 인력 배치는 어떻게 재조정되어야 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산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당장은 징병제를 유지하되 일부 병과에서 모병제를 확대하는 ‘징·모 혼합제’의 진화가 현실적인 대안이다. 사이버, 정보, 기술 분야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자발적 복무를 유도하고, 장기적으로는 자발적 병역 이행의 매력을 높여나가야 한다.


셋째, 여성의 군 참여는 전면 징병보다는 자발적 루트 확장이 더 타당하다.


여군 간부 외에도 단기 복무나 기술·행정 보직을 위한 별도 지원 경로를 확대해 군 복무를 원하는 여성들이 부담 없이 진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병역제도 개편은 정치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 공정, 평등, 안보,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병역제도는 충분한 공론화와 숙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지금은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외칠 때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군대를 만들고 싶은지를 묻고 설계할 때다.


병역제도는 국가의 뼈대를 이루는 시스템이며, 그 속에는 한 개인의 청춘, 사회의 정의, 국가의 전략이 모두 녹아 있다. 더 이상 병역제도를 표심을 얻기 위한 구호로만 소비해선 안 된다. 실질적인 병력 수요 분석, 미래 안보 전략, 군 조직문화 개혁, 인권과 복지 시스템 구축이라는 네 박자가 함께 맞물려야만 가능한 변화다. 대한민국 군대는 지금 어떤 병력 구조를 꿈꾸고 있는가. 여성 징병제와 모병제 논쟁의 중심에서 우리가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은 이 하나다. “우리는 지금, 어떤 군대를 만들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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