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부관(aide-de-camp)은 단순한 보조자나 행정 담당자가 아니다. 이는 상급자의 그림자이자, 전략적 사고와 판단력을 훈련받는 현장형 리더의 출발점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장군이나 제독 등 고위 장성의 비서이자 전담 참모로, 업무·의전·생활 전반을 밀착 지원한다. 역사적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조지 워싱턴, 해리 트루먼, 샤를 드골, 더글러스 맥아더 등 세계적 리더들이 모두 젊은 시절 전속부관으로서 리더십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은 이 제도의 가치를 웅변한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역 테러 당시, 이기백 장군의 전속부관이었던 전인범 중위는 폭파 현장에서 상관을 업고 대피시켜 그의 생명을 구했다. 이는 단순한 직무 수행 이상의 ‘운명을 공유한 전우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나 역시 중위 시절 전속부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매일 24시간 상관을 보좌한다는 부담감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시간은 내 군 생활 중 가장 빛나는 배움의 시기였고, 내 리더십이 성숙해지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지휘관의 일정과 작전 구상을 정리하고, 외부 인사와의 접견을 준비하며 리더의 사고방식과 우선순위 설정, 위기 대응을 바로 옆에서 체득할 수 있었다.
전속부관은 리더십의 본질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리이다. 상황 판단, 문제 해결, 의전 기획, 위기관리, 권한 위임, 조직운영 등을 리더의 시각에서 배운다. 부관은 리더의 명령을 실행하는 동시에, 리더의 철학을 몸으로 익히며 스스로도 미래의 지휘관으로 성장한다. 나는 전속부관으로 있으면서 상관의 성향, 시간 감각, 의사결정 방식, 대외관계 유지방식 등을 빠르게 읽고 조율해야 했다. 단순히 보좌하는 것을 넘어, 내가 어떤 말을 먼저 꺼내고 어떤 일을 미리 준비해 놓느냐에 따라 지휘관의 하루가 바뀌었다. 이는 명령 이전에 태도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교훈으로 이어졌고, '리더십은 명령 이전에 태도이며, 존중은 계급이 아니라 신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몸으로 배웠다.
전속부관으로서 나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철학을 몸으로 배웠다. 이 철학들은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매일의 실무와 대면하는 상황 속에서 쌓여진 살아있는 교훈이다.
첫째, 신뢰는 리더십의 뿌리다. 부관은 상관을 믿고 따르고, 상관은 부관을 신뢰하고 맡긴다. 나는 상관의 개인적인 일정은 물론 민감한 결정까지 함께 조율하며, 지휘관이 언제 어디서든 나를 신뢰할 수 있도록 사전에 정보를 준비하고 판단의 근거를 제공했다. 상관이 부관에게 주는 신뢰는 단순한 위임이 아니라, 리더십의 시작점이다.
둘째, 명확한 소통이 위기를 막는다. 지시와 보고, 확인과 회신, 말과 행동은 오차 없이 정확해야 한다. 특히 작전 상황이나 외부 의전 시에는 단 한 마디의 착오도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지휘관의 말에 집중하고, 핵심을 요약해 재확인하는 습관을 길렀다. 불필요한 말보다 필요한 정보, 과잉 보고보다 적시 보고가 중요한 이유를 배웠다.
셋째, 존중은 계급이 아닌 인격으로부터 시작된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군에서도 사람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내가 배운 존중은 명령의 언어보다 태도에서 나왔다. 부관이 상관에게 예를 다하듯, 상관 역시 부관의 역할과 고충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조직은 더욱 강해진다.
넷째, 의전은 예의가 아니라 전략이다. 외부 인사들과의 만남은 단순히 자리를 마련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내가 맡은 의전 하나하나가 부대의 신뢰, 지휘관의 이미지, 더 나아가 군 전체의 인식을 결정짓는 요소임을 체감했다. 세심한 준비와 배려는 곧 작전보다 더 큰 성과를 만들기도 했다.
다섯째, 시간은 지휘관의 무기다. 지휘관의 하루는 분 단위로 흘러간다. 전속부관으로서 나는 일정 조정, 동선 확보, 사전자료 준비 등 시간의 질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시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설계하는 것이 리더십의 능력임을 깨달았다.
여섯째, 위기 상황에서는 침착이 실력이다. 전속부관은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상황을 인지하고, 가장 늦게 흔들려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정 변경, 외부 비상상황, 내부 보고 누락 등은 실시간으로 부딪힌다. 나는 그런 순간마다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조절하며 조직의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일곱째, 공사는 분리되어야 한다. 지휘관과의 관계는 어느새 정서적으로도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선을 지켜야 했다. 부대 내의 눈은 항상 부관을 보고 있다. 친밀함을 절제하는 자세는 오히려 지휘관을 보호하고, 나의 전문성을 지켜주는 방패였다.
여덟째, 배움은 묻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지휘관의 결정 하나하나가 어떤 배경에서 나오는지를 이해하고자 끊임없이 질문했다. 질문은 명확한 실행을 위한 수단이자, 리더의 철학을 이해하는 창이었다. 질문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고, 묻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홉째, 권한은 신뢰를 기반으로 위임된다. 전속부관에게도 작은 결정권이 부여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판단이 지휘관의 이름으로 읽힌다'는 책임감을 가졌다. 권한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 쟁취해야 한다는 진리를 배웠다.
열 번째, 리더십은 따라 해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보고, 듣고, 겪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리더십의 교과서였다. 지휘관의 말투, 회의 방식, 판단 기준, 갈등 조율 방식을 따라 해보며 나만의 리더십 스타일을 만들어 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본 리더의 모습은 이론서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수업이었다.
전속부관은 단순한 자리나 직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인생 학교이며, 실전 리더십의 가장 현실적인 훈련장이자 축소된 국가 운영의 모형이다. 제대로 된 장군은 전속부관을 통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며, 훌륭한 부관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리더로 성장한다. 지휘관과 보좌관의 관계는 단순한 상하관계가 아니라, 미래를 잇는 리더십의 다리다.
나는 전속부관으로 일했던 경험을 통해, 단순히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지휘관과 조직 사이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배웠다. ‘앞에서 지휘하는 사람’과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성장하며, 그 사이의 신뢰와 존중이 진짜 리더십을 만든다는 것을 절감했다.
간부로서 전속부관 경험을 했든 아니든, 이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훗날 조직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이고 값진 배움이 될 것이다. 특히 부관으로서 리더를 모셨던 그 시절의 경험은, 지금 내가 리더로서 후배를 이끌 때 가장 강력한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배운 대로 이끌고, 이끌면서 다시 배우는 것. 그것이 전속부관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