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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은 시간의 보상이 아니다 병사의 책임, 병사의 자격

by 김재균ㅣ밀리더스

2025년 5월 29일, 한국 국방부는 병사 진급 제도에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졌던 병사의 자동 진급 제도를 폐지하고, 이제부터는 심사를 통과해야만 진급이 가능하도록 병 인사관리 훈령을 개정했다. 이 조치로 인해 병사들은 무사고 근무만으로 상급 계급장을 다는 것이 아닌, 계급에 맞는 역량을 갖추고 이를 인정받아야만 진급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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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진급의 폐지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라, 병영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그동안 군대 내에서는 일정한 복무기간만 채우면 병장으로 진급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병사들은 진급 심사를 통해 상급 계급에 걸맞은 전투 기술, 복무 태도, 인성 등을 평가받게 되며, 평가 결과에 따라 진급이 보류될 수도 있다. 이는 군이 지향하는 성과 중심의 병영문화와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개정된 훈령은 진급 누락 병사의 전역 시점을 기준으로 1일에는 상병, 전역일에는 병장으로 형식적으로 진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병장 계급장을 하루만 다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병사의 명예뿐만 아니라 월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병사의 월급은 이병 75만 원, 일병 90만 원, 상병 120만 원, 병장 150만 원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병장 진급이 누락되면 복무 기간 동안 최대 약 400만 원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진급에 따른 급여 차이는 병사들의 생활과 복지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 단지 명예나 계급의 상징성만이 아니라, 매달 수령하는 급여가 계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병사 개인의 경제적 동기와도 직결된다. 병장 진급 누락은 장병 개인의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부대의 전투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진급 기준의 공정성과 납득 가능한 평가 시스템이 반드시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병사들에게 이 제도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단지 시간만 보내서는 병장이 될 수 없다. 책임, 리더십, 조직 이해, 훈련 숙련도 등 계급에 걸맞은 자질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평가 기준을 넘어서, 병사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발적인 동기부여로 이어지는 병영문화를 기대하게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병영문화의 질을 높이고, 병사들이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로 군 복무에 임하도록 유도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일선 부대에서는 평가 기준의 모호성, 상급자의 자의적인 평가 개입 가능성, 진급 누락에 따른 위화감 조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급이 평가에 따라 좌우되는 만큼, 평가 기준의 공정성, 피드백 체계의 투명성, 병사의 권리 보장 장치 마련이 제도 성공의 열쇠가 된다. 특히 상급자에 의한 평가가 병사의 진급 여부를 결정짓는 상황에서는 개인적인 호불호나 주관적 판단이 작용하지 않도록 다면평가제 도입 등의 대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이번 진급 개편은 한국군만의 변화가 아니다. 이미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 선진 군사 강국들은 진작에 성과 중심의 병사 진급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Promotion Board 시스템을 통해 철저한 근무평정과 상관의 추천을 반영하고, 영국은 직책 기반의 진급 제도를 운용하며, 이스라엘은 짧은 복무기간 안에서도 강도 높은 평가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이제야 본격적인 역량 기반 진급 시스템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상병(E-5) 이상 진급을 위해선 군 교육과정 수료는 물론, 상급자의 추천서와 현장 성과 리뷰, 인터뷰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다. 단순히 복무기간만으로는 진급이 불가능하며, 병사 개개인의 리더십, 전투역량, 팀워크 능력 등이 세부 평가 기준으로 작동한다. 반면, 과거 한국 군대의 병사 진급 제도는 오로지 '무사고 복무' 여부만을 따졌기에, 열심히 복무하더라도 성과나 자질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였다.


병장은 이제 누구나 도달하는 계급이 아니다. 복무 태도, 군기 준수, 리더십, 협업 능력 등 다양한 평가를 통과한 병사만이 병장 계급을 달 수 있다. 이는 군 내부에서의 자율성과 책임의 문화를 키우는 동시에, 한국군 전체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장병 개개인의 질적 향상이 군 전체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며, '정예 병사 육성'이라는 군의 목표와도 부합한다.


한편, 이 변화는 병사 개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군 전체의 운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진급에서 탈락한 병사는 불만을 가질 수 있고, 이러한 불만은 병영 내 긴장과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군은 평가 과정의 공정성과 피드백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며, 병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부대장급 지휘관의 지도력과 행정 능력이 조직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상급 간부 대상의 병사관리 교육 또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번 병사 진급 제도 개편은 단순한 행정개혁이 아니다. 이는 한국 군대가 성과와 책임, 자율과 공정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병영 문화를 설계해나가는 출발점이자, 국가 안보의 기본 단위인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을 재조명하는 계기다. 병장이 하루짜리 계급이 되지 않기 위해, 병사들은 진짜 실력과 자세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 변화는 단기적인 시행령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한국군의 경쟁력과 신뢰도를 높이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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