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반 줄게, 대신 군대 좀 다녀와"…사상 초유의 대리 입영 사건
2025년 대한민국 병역제도 역사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타인에게 입영을 대신하도록 하고, 그 대가로 군인 월급의 절반을 나누기로 한 이른바 '대리 입영' 사건이다. 병무청이 설립된 1970년 이래 처음으로 드러난 이번 대리 입영은 단순한 위법 행위를 넘어, 국민적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병역제도와 국가 행정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범죄로 평가되고 있다.
대리 입영의 전말
피고인 조모(28) 씨는 지난해 7월,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신병교육대에 '최모(22)' 씨로 가장해 입영했다. 그는 본인의 신분이 아닌 최씨의 주민등록증과 나라사랑카드(군인용 체크카드)를 사용해 병무청의 입영 판정과 군 복무 절차를 통과했다. 당시 조씨는 이미 과거 입대 후 정신건강 문제로 전역한 병역 이력이 있었고, 이번에는 자신의 병역의무가 아닌 타인의 입영을 '대신' 수행한 것이다.
그 대가로 조씨는 군 복무 중 받는 병사 월급의 절반을 최씨로부터 받기로 했다. 당시 지급된 금액은 164만 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처음 연락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월급 반 나눠 줄 테니 대신 군대에 가달라”는 간단하지만 충격적인 거래를 성사시켰고, 그렇게 대한민국 병역체계의 허점을 노린 범죄가 현실이 되었다.
죄의 자각과 검찰의 판단
하지만 범죄는 오래가지 못했다. 군 복무를 대신해주던 조씨와의 거래가 들통날 것을 우려한 최씨가 결국 자수하며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해 9월, 최씨는 병무청에 직접 출석해 전말을 고백했고, 병무청과 수사기관은 즉시 사실관계를 확인해 조씨를 사기, 병역법 위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조씨가 단지 한 사람의 병역 회피를 도왔다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병무 행정의 신뢰 자체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심에 이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도 징역 2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국가 행정절차의 신뢰를 훼손한 중대한 범죄"라며 "원심의 형이 가볍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의 반성과 선처 호소
항소심에서 조씨는 “국가와 병무청 관계자들에게 죄송하다”며 반성의 뜻을 밝혔다. 그는 수용 생활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현재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앞으로는 꼭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대리 입영이라는 초유의 사건 앞에서 그 호소가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선고 공판은 2025년 7월 18일로 예정되어 있다.
공범 최씨는 집행유예
한편, 조씨와 함께 범행을 공모한 최씨는 이미 지난 4월 대전지법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피고인과 검찰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형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병역제도의 신뢰를 묻는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병역 기피나 사기 행위를 넘어선다. 지금까지 병역제도는 국민의 자발성과 공정성,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해왔다. 병역의무는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의무이자,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신뢰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였다. 그런데 그 신뢰가 단돈 몇 백만 원의 거래로 허물어졌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다. 특히 현재 군 복무자는 과거보다 훨씬 나아진 처우 속에서 봉급을 받고 있다. 병사 월급이 월 100만 원을 넘기 시작했고, 의식주까지 해결되는 상황에서 ‘군 복무를 돈 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점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조씨는 “군 월급이 적지 않다 보니 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지만, 이는 그 어떤 이유로도 대리 입영이라는 중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다.
제도의 공정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병역제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다. 단 한 건의 대리 입영이라도 전체 병무 행정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수많은 청년들에 대한 배신이 될 수 있다. 군 복무는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는 이번 사건을 통해 허점을 재점검하고,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동시에 병역 의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교육도 강화돼야 할 것이다. 공정성과 신뢰 위에 세워진 병역제도가 다시는 금전적 거래의 수단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경계와 자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