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실패로 버무려진 30대 백수의 밑바닥을 탈출하기 위한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 인스타그램 : @develop_hada
약을 타오고 여전히 백수 겸 취준생으로 생활을 지내오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시골에 일을 도와드려야 되는 상황이라서 시골에 간 것 빼고는 딱히 뭘 한 게 없는 실정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취업시장에서 하반기 시즌이 다가왔다. 하지만 실제로 취업준비를 막 열심히 하고 그런 건 없었다. 토익, 토스, 오픽 같은 영어점수를 취득한다든지 인턴이나 전공 관련 직무경험이라든지 그런 건 전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의욕도 없었고 5년 공백기의 32세 무경력 취준생이 대기업이고 중견기업이고 공기업이고 이런 건 지원자격조차 되는 곳도 잘 없기도 하고 어차피 지원해도 안될 게 뻔하기 때문에 애초에 눈을 내 자존감처럼 낮췄다.
자존감도 바닥이고 의욕도 바닥인 상태인데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뭔 성공을 하겠다고 열심히 취준을 하겠나 싶었다. 그냥 보통사람처럼 지내는 것이 소망이었다. 나 스스로 밑바닥 즉, 지하에 있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포기하면서 그동안 공부를 했던 내 노력과 시간이 낭비되었다는 사실과 공부만을 보던 세상에서 '보통세상'으로 나와보니 이미 나랑은 너무나 멀어진 사람들을 보니 더욱 나 스스로 낮아졌다. 마치 내 시간은 대학졸업 후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너튜브와 웹소설, 드라마 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그냥 지금은 나 자신의 배터리를 충전한다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휴대폰도 배터리가 다 소모되려고 하면 충전기에다가 충전을 하는데 사람이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 그렇게 충전기가 된 침대에 나는 몸을 붙이고는 점점 침대 안으로 내 몸이 녹아드는 것 같았다. 프라이팬 위의 버터가 녹는 것처럼 말이다.
집에서 그렇게 있으면서도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 방이라는 아니 침대라는 '안전지대'에서는 편했지만 내 방을 나오고 거실에 발을 들어서는 순간 부모님의 압박 아닌 압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마치 축구에서 나를 전담마크하는 것처럼 '부모님'은 나에게 매일매일 '잔'소리를 하셨다. "너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거냐. 네 친구들은 다 돈 벌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그러는데 너는 뭐 하는 거냐. 언제까지 엄마, 아빠가 너한테 신경을 써야 되냐. 빨리 어디든지 취직해서 남들처럼 좀 살아라."등등 매일매일 비슷한 레퍼토리로 억지로 충전한 배터리를 소모시키고 있으셨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더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있는 것 같다고 금방 생각이 문득 났다. 만약에 내가 이렇게 있어도 아무 말하지 않고 비록 수년 동안 실패를 했고 포기를 했지만 따뜻한 위로와 휴식을 말씀해 주셨더라면 오히려 지금처럼 밑바닥에서 조금이나마 더 빨리 올라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앞의 문장을 쓰다 보니 감정이 울컥하는 걸로 보니 어쩌면 내가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원했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 큰 아들이, 예전 같으면 결혼하고 애도 있을 나이인 32세 아들이 부모님께 의지하는 것도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번아웃, 무기력으로 버무려져 멘털이 불안할 때는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아무튼 그렇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서 여전히 압박은 점점 심해졌다. 왜냐하면 32세가 보통 신입사원 입사 마지노선 나이인걸 부모님께서도 알기 때문이다. 이걸 왜 알고 있으시냐고 묻는다면 얼마 전에 취업관련해서 뉴스에 나왔는데 통계가 그렇다고 한다. 32세가 신입사원으로 지원하기에 마지노선 나이라고. 그래서 부모님께서도 조급하셨는지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자리에서 같이 뉴스를 봤기에 알고 있다.
그래서 또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채용사이트를 뒤적거리면서 내가 지원할만한 공고를 찾아봤다. 그리고 몇 군데 있어서 회사이름만 바꾸고 그 기업에 원하는 항목을 잘라서 붙이고 입사지원을 했다.
놀랍게도 넣었던 몇몇 기업에서 "서류합격"이라는 메일을 보내왔고, 면접전형에 대한 설명이 왔다. 그중에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직무만 보고 넣은 기업이 있었는데, 회사도 우리가 말하면 들어본 곳인데 문제는 면접전형 파일을 보니 면접장소가 "충남 서산"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와.. 잘못 지원했네. 이걸 어떡하지. 대구에서 가려면 3시간을 가야 되네. 그리고 여기 보니까 공장이 산골짜기에 있네. 이거 주변에 아무것도 없네." 등등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마치 변호사처럼 안 갈 이유를 논리적으로 찾고 있는 나의 모습에 1차적으로 놀랐고, 그리고 어차피 갈 마음이 없다는 것에 2차로 놀랐다. 그래서 결국 면접전형 이틀 전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드렸고, "저 안녕하십니까 담당자님 이번 ㅇㅇ직무에 지원하여 면접준비자 ㅇㅇㅇ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개인 사정으로 면접에 참여가 불가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좋은 기회 주셨는데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의사를 밝혔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범불안장애"판정을 받고 자존감, 자신감도 밑바닥이고 무기력한 나인데, 왜 하필 거절의사 연락에는 말이 저렇게 청산유수로 나왔는지 미지수이다.
그렇게 면접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다 끝난 게 아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한 군데가 아닌 몇몇 군데에서 "서류합격"을 받았지 않나. 이번에는 대구 근교인 경북에 위치한 2곳에서 면접이 있었다. 그래서 면접 예상질문 등을 몇 개 만들어 적어두고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면접일이 다가올수록 나의 불안감은 점점 증폭되어 갔다. 결국 면접 전날에 밤을 새우고 면접장에 차를 타고 갔다. 아! 여기서 참고로 나는 운전하는 걸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면접장까지 차를 몰고 가는데 여기서도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더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런 와중에 "불안장애" 처방약을 하나씩 먹고 2곳의 면접을 보았다. 결과는. 그렇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안 봐도 아는 사이즈이다. 1곳은 규모가 제법 큰 중견기업이었는데 면접을 보는데 경력자랑 같이 면접을 봤다. 혼자 면접을 보아도 긴장과 불안으로 외웠던 예상질문들이 하얗게 사라지고 그런데 경력자랑 같이 면접을 보니 애초에 나한테 질문자체가 많이 오질 않았고, 그 경험을 하면서 27살에 처음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시원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다른 1곳은 내가 입사포기하였다. 나는 전공이 "환경"이어서 주로 수질, 대기, 폐기물 관련 직종에 취업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 면접은 폐기물이었다. 그런데 면접장에 도착하고 차문을 여는 순간 쓰레기냄새가 진동을 했다. 보니까 기업 뒤에 매립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무한으로 돌아가는 공기청정기를 보았는데, 그 공기청정기가 감당을 하지 못할 만큼 사무실 안에서도 냄새가 났다. 그래서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면접을 다 보고 그다음 날에 바로 합격 연락이 왔으나 포기하였다.
그래서 결국 하반기는 이렇게 다 실패로 돌아갔다. 어쩌면 면접의 기회가 오고 합격이 되고 하면서도 간을 너무 보고 안 갈이유를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렇게 33살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30대 백수이고 취준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