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브런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켰다. 그 시간엔 늘 이현우 DJ를 듣는데 하루는 이런 얘길 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유명한 말이지만 곱씹어 보았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여태 사는 대로 생각해 왔다. 원하는 것을, 바라는 것을 취하는 것은 언감생심, 그저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그렇게 부여된 삶에 죽지 못해 살았다. 그저 그런 대학에 가고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빠르게 취업에 성공하고 내가 바라던 직업이 아님을 알게 되었음에도 참고 버텼다. 출근길이면 지나가는 버스에 몸을 던져볼까 생각했고, 퇴근길에 회사 옥상에서 아래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오곤 했다. 죽기 전까지 이렇게 회사와 집을 오가며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요즘 말로 '이생망'이었다.
아직 젊은데 이생망은 좀 억울했다.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누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철저히 회사에 적응하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삶이었다면 이제는 회사 외에 것에도 관심을 쏟고 나를 보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시작했다. 먼저 운전면허를 땄다. 제빵학원에 등록해서 매주 토요일을 헌납했다. 합정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데생을 시작했다. 미싱을 시작해서 옷을 만들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다. 주어진 삶을 가치 있게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휴직기간 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회사 밖에 나와 지내보니 어떤 것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내가 너무 오래 있었구나. 세상은 이렇게 넓고 다채로운데 눈가리개를 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살았구나 싶었다. 승진할 생각이 없는데도 승진준비를 안 하고 있거나 승진을 안(못)하면 낙오자 취급을 하는 회사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 무렵 나는 승진을 하고 휴직을 한 상태였는데, 후에 복직하자마자 들은 이야기는 승진 몇 년 차냐는 질문이었다. 원하지 않아도 달리고 있는 트랙에 밀어 넣어졌고 넘어져 밟히지 않기 위해 같이 뛰어야만 했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이제는 그 트랙에서 나오고 싶어졌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걸 멈추고 싶어졌다. 그때 브런치가 나에게 다가왔다.
낯선 세계에의 무모한 도전일까. 애도 낳았는데 못할 게 뭐 있냐는 선배 맘들의 명언을 받들어 브런치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글쓰기는 전혀, 내 영역이 아니라고 줄곧 생각했다. 음악과 그림은 내 영혼의 단짝이라 생각했는데 미안하지만 글쓰기는 전혀. 그런데 브런치는 나에게 합격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얼결에 작가님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동사무소에 가면 듣는 '선생님'소리가 아니었다. 나보고 '작가님'이래. 우와.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 또 다른 내가 있었다. 글쓰기를 할수록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한다. 한결같은 취향과 익숙한 사고에 길들여져 있는 나를 자꾸 밖으로 끄집어낸다. 노트북을 마주하고 골똘히 생각하면 어느새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취향을 발견하기도 하고, 경직된 사고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생활 속에서 글감을 찾으려 하다 보니 사색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글로 이어지고 브런치에 기록된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시간이 좋다. 내 글이 세상 제일 재미있다. 나는 내 팬 1호다. 이제 생각하는 대로 살아볼까.
BGM. 자우림 <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