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비번호 10번

제1장. 궤도 이탈

by 호기


면접 대기실 문을 열자, 낯선 공기가 훅 끼쳐왔다.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들이 가득했다. 반짝이는 눈동자, 팽팽한 피부, 자신감 넘치는 표정들. 그들 사이에 앉아 있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주민등록증의 생년월일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번호가 불렸다.


다대다 면접이었다. 면접관 앞에 앉자, 심장이 쿵쿵거렸다.


"약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준비했던 답변이 입 밖으로 나왔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절실하게 대답했다.


"공백기가 긴데,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했나요?"


이 질문을 기다렸다. 석사 과정, 연구 경험, 자기 계발. 준비한 스토리를 차근차근 풀어냈다.


면접관들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다른 지원자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어떤 친구는 유창하게, 어떤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냈다. 10년간의 간절함을,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을, 그 모든 것을 그 작은 면접실에 남겨두고 나왔다.


면접장을 나오니 눈은 그쳐 있었지만, 바닥은 이미 하얗게 변해 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후련했다.


한 달 후, 결과가 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예비번호 10번]


화면에 뜬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합격도 아니고, 불합격도 아닌. 예비. 10번.


그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분노도, 절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기묘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이제 그만해도 되는구나.'


10년이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시작된 PEET 준비. 여러 번의 실패. 석사 과정의 좌절. 그리고 마지막 도전.

그 모든 시간이 '예비번호 10번'이라는 한 줄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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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왜 한 번 더 시도하지 않았어? 조금만 더 하면 됐을 텐데."
"아깝지 않아? 10년을 그냥 포기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알았다. 지금이 멈춰야 할 때라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버티면 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 말들은 어떤 사람에게는 힘이 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폭력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미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에게 "더 노력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지금의 너는 아직 부족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바쳤고, 한계까지 버텼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때로는 멈추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날, 나는 10년 동안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그 짐은 '약사'라는 꿈이었고, 동시에 '엄마의 기대'였으며, '착한 딸이어야 한다'는 굴레였다.


미련은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부딪혔고, 최선을 다해 깨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제2장. 혼돈 속에서 유영 예고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보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어디인지.


그 길을 찾아가는 데에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했다.


실패도 있었고, 방황도 있었다.

또 다른 벽 앞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 길이었다.


누군가의 꿈이 아닌, 나의 꿈.

누군가의 기대가 아닌, 나의 선택.


지금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정말 포기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늦어도 괜찮다.

포기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진심으로 '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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