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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스타트 힐러 May 12. 2023

느림의 미학

벌써 다 먹었어요?

“벌써 다 먹었어요?”

밥 먹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직업이 소방공무원이라서 그럴까? 함께 점심을 먹는데 5분도 안되어서 빈 그릇이 되었다. 비상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먹어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직업상 농업인을 자주 만난다. 농사로 바쁘신 분들과 행사가 있을 때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역시나 그분들의 속도도 소방공무원과 같았다. 함께 식사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속도가 빨랐다. 하물며 건강에 엄청 신경을 쓰는 분의 속도도 초스피드였다. 물론 농업에 종사하고 계셔서 마음이 바빠 습관이 되었을 것이다. 천천히 드셔도 되는 순간에도 바쁘게 드시는 분들을 보며 건강이 염려되었다.  

   

식사를 빠르게 하다 보면 많이 먹게 되고 탈이 나기도 한다. 직장동료와 함께 여행을 갔을 때 동료는 푸짐한 저녁식사가 맛있어 보였는지 급하게 식사를 하더니 체해서 저녁 내내 고생했다. 빠른 식사는 포만감을 느낄 틈이 없어 계속 음식을 찾게 만든다. 비만을 일으키기도 하고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때는 나도 식사 속도가 빨랐다. 빠르게 식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함께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꿈도 못 꾼다. 충분히 씹고 맛을 음미하며 즐긴다.     

 

편찮으셨던 아빠 덕분에 식습관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먹어왔던 음식들은 몸을 챙기기보다 배를 채우기 위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제일 먼저 백미를 현미로 바꿨다. 현미로 식사를 바꾸면서 꼭꼭 씹어 먹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거친 현미는 꼭꼭 씹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천천히 먹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식사 시간은 배로 늘어났다.  

   

꼭꼭 씹어 천천히 먹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수를 세면서 씹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중간에 꿀꺽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50번 씹고 삼키는 연습을 수시로 했다. 20분짜리 모래시계까지 구입해 식사시간을 지키는 연습도 했다. 꾸준함은 어느덧 습관이 되었고 꼭꼭 씹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천천히 하는 식사는 내 생활에 많은 유익을 주었다.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포만감을 주었고, 속이 늘 편했다. 몸이 편해지니 의욕이 충만해지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과식하는 습관을 개선할 수 있었다. 빠른 식사를 할 때는 먹어도 먹어도 음식 생각이 계속 났었는데, 이제 더 이상 음식을 갈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식재료의 맛을 충분히 음미하며 먹을 수 있었고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식사시간은 나를 보살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물론 천천히 하는 식사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자리는 불편함이었다. 5분 만에 식사를 끝내는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식사속도를 어떻게 맞춰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먹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불편했고, 나 때문에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식사 속도에 맞추기는 너무도 싫었다.   

  

나는 여전히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식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 식사하는 것도 이제는 불편하지 않다. 나만의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내 속도대로 식사를 하고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는 시간에 나도 식사를 마친다. 한 공기를 다 비우는 게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조금 먹더라도 온전히 내 몸에 영양으로 흡수되는 식사를 했다면 충분하다.   

  

직장동료와 함께 출장을 가던 중 동료가 운전하던 나에게 빵을 내밀었다.

반정도 먹었는데 또 하나를 더 내밀었다. 

“저 아직 다 안 먹었는데요.” 

쑥스러운 듯 자기 입으로 가져가던 동료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이제 천천히 하는 식사를 어디서도 당당하게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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