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단순했다. 두 개의 일정이 연속으로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장, 그리고 추석연휴. 회사엔 출장이 끝나면 개인 연차를 사용해 현지에서 휴식하고 돌아오는 복지 제도가 있었고, 나는 과다한 업무에 지쳐있었기에 이 제도를 이용해 추석 연휴를 그곳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간 김에 좀 쉬자. 내가 출장이 아니면 언제 또 거기까지 가보겠어.’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를 검색해 보니 최소 3박 4일이 필요한 W트레킹 코스를 가는 사람이 많았다. 휴가 일정이 좀 타이트하기도 하고, ‘이번엔 쉬자’는 취지에 맞게 렌터카를 선택했다. 운전할 수 있는 길이 갖춰진 V자 형태로 드라이브하고, 걷고 싶으면 2~3시간의 짧은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버스 투어나 다른 것도 있었지만,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가고 싶을 때 가는 게 나의 여행인지라 역시 이번에도 외국에서 운전하는 걸 택했다.
출발 전, 렌터카 업체 사장님이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대처법을 상세히 가르쳐주길래 좀 의아했다. 유명한 여행지인데다가 차로 다닐 길까지 만들었다면 펑크가 날 일은 없을텐데. ‘속도가 낮으면 안전하니 천천히 다니면 된다’는 그의 말은 매끈했던 길이 비포장도로 바뀌는 순간 바로 수긍이 됐다. 까끌까끌하고 울룩불룩한 구덩이가 많은 길이 시작된 이후엔 좀처럼 다시 매끈한 길이 나오지 않았다.
‘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운전길이 이렇게 험하다니. 이러면 드라이브라고 하기 좀 그렇지 않나?’라는 생각도 잠시. 속도를 늦추자 바퀴의 진동과 함께 잘 갈려진 지면의 돌덩이가 차체와 운전석에서 느껴졌다. 가끔 엉덩이가 들썩들썩해 몸이 좌우로 흔들리기도 했다. 구덩이를 피해 핸들링을 해야했는데, 보통의 일상에선 만나기 어려운 낯선 운전길이었다.
두 발로 느끼는 지면의 감각과 바퀴를 통해 느끼는 지면의 감각은 다르다.
바퀴의 감각 중, 평소의 나에게 익숙한 아스팔트 지면의 감각은 이 산길에 비하면 매우 잘 관리된 사람과 같았다. 구덩이를 메우고, 울룩불룩한 길을 평평하게 만들어, 그 위 아스팔트를 덮고 잘 펼쳐 꾸욱꾸욱 눌러 저항을 제거한 길. 사람이 사람을 위해 계획하고 만들어 놓은 정제된 매끄러운 길. 그래서 ‘이동’ 자체에 충실해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길.
비포장 도로 운전이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나의 보통의 삶이 아스팔트 길과 비슷하겠단 생각이 들어 이 산길이 주는 불편함이 되려 애틋해졌다.
까끌까끌한 잔잔한 돌멩이가 가득해 항상 잘그락잘그락 소리를 내는 나.
그래도 천천히 가면 되는 거였다. 잘그락잘그락 거려도, 웅덩이에 빠져도. 그래서 흙탕물이 튀어버려 주차할 때 후방카메라 따윈 보이지 않아도. 숙소엔 도착했으니, 그걸로 된 거였다. 느리게 가면서 더 많이 멈춰 사진을 찍었다. 더 많은 다정한 노래를 들었다.
비포장도로가 피곤했지만 힘든 운전 덕분이었을까, 그날은 다락방 같은 작은 창문이 있는 숙소에서 빗소리도, 바람 소리도 알람도 못 듣고 깊은 잠에 들었다.
그러니 낯설어도 꽤 괜찮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