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메타운의 딸기 찹쌀떡 아이스크림

by 낮을 헤엄치는 달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간 외국은 외할머니와 함께 간 일본이었다. 외할머니의 언니인 이모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이모할머니는 일본분과 결혼해 그곳에서 평생을 사셨는데, 당시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계셨다. 더 늦기 전에 동생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그쪽 가족들에게 연락이 왔다.

히로시마 공항에 마중 나온 이모할머니의 딸(이모)을 만나 차를 타고, 오가는 얘기를 통역해 전달했다. 공항에서 약 세 시간이 지났을 무렵 마츠다라는 이모네 동네에 도착했다. 차가 10대는 들어가고도 남을 넓은 마당이 딸린 이층 집이었다.

‘뭐야! 마당에.. 이층 집? 부잣집이잖아! 엄마는 일본에 이렇게 잘 사는 친척이 있었으면 진즉 소개를 시켜줬어야지! 내가 그렇게 유학 보내달랄 땐 그런 거 다 쓸데없다고 하고선 이런 걸 숨겨놨어?’ 라며 살짝 서운함이 올라왔다. 그래도 외할머니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항상 본인의 약한 딸을 나에게 지켜 달라 하신 분이었기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외삼촌이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고 녀석 도쿄에 있는 시노부랑 똑같이 생겼잖아? 우선 저녁 먹기 전에 집 구경 좀 해볼래?’라고 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이모는 ‘조금 있다가 저녁 먹을 거니 구경 다 하면 1층 거실 코타츠에 와서 좀 쉬고 있으렴’라고 다정하게 말해줬다.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 그런지 집안에서 풍기는 향기가 한국과 달랐다. 욕실과 화장실이 나눠져 있는 것, 문과 창문이 묵직하지 않고 가볍게 열린다는 것, 냉장고의 칸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것 등등 한국의 일반 집과는 다른 일본 시골집 구경에 약간 설렜다.


구경을 다 하고 거실로 내려와 이모가 말한 코타츠의 이불 안으로 발을 쏘옥 넣었다. 히터의 온기가 차가운 발끝을 감싸자 금세 나른해져 눈이 감길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온기가 퍼지니 코타츠 이불의 오래된 면에 배어있는 살짝 큼큼한 향기도 누그러져 외할머니의 시골집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다르지만 또 비슷한 냄새.


나는 이 풍경 안에 외할머니의 조력자로서 애매하게 웃고 있었다. 사실 나이를 먹은 지금도 내 가족이라도 쉽지 않은데, 대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 외국에 있는 친척이라니 어떤 표정이어야 할지, 어떤 말을 골라야 할지 퍽 어려웠다.


우습게도 이 어려운 느낌을 단박에 깨준 건 저녁의 디저트로 나온 ‘딸기 찹쌀떡 아이스크림’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흰쌀밥, 미소 된장 세세하게 풀어진 국, 애기 주먹만 한 적은 양의 반찬을 올려놓은 작은 그릇들이 차례로 놓였다. 왕래가 적었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갈 때쯤 그 녀석 ‘딸기 찹쌀떡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찹쌀떡 안에 딸기 반쪽이었나 한쪽이 통으로 들어가 있었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안이 가득 채워져 있어 한번 깨물으면 단맛 신맛과 쫀득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디저트였다.


음식엔 좋고 싫음이 분명하지 않은 나에게, 그 녀석은 확실한 ‘좋음’이었다. 냉큼 몇 개를 비우곤, 이모에게 이거 또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이모가 말했다. ‘유메타운 같이 갈까? 거기에 이 딸기 찹쌀떡 아이스크림 있는데-’


외할머니는 갑자기 목소리톤이 올라간 내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유메타운? 이모 그게 뭐예요?”


“이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이야. 내일 장 보러 갈 때 같이 가자. 다른 아이스크림도 많아”


그렇게 마츠다에 있는 동안 매일같이 유메타운에 갔다. 여러 아이스크림이 많았지만, 결국엔 딸기 찹쌀떡 아이스크림을 꼭 사들고 나왔다. 익숙한 식재료와 낯선 식재료. 알고 있는 글자와 모르는 글자들을 알아보려고 슈퍼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며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어딘가를 가게 되면 슈퍼를 간다. ‘일단 먹으라고 파는 거니 독은 안 들었겠지’라며 물건들을 살핀다. 식재료들의 세세한 맛 차이도 모르는 나지만 낯선 곳이라면 슈퍼만큼은 꼭 한번 들르려고 한다.


또 어딘가에서 ‘딸기 찹쌀떡 아이스크림’ 같은 녀석을 만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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