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행 야간열차의 플랫폼

by 낮을 헤엄치는 달

누군가가 마음을 비우는 데는 인도가 적격이라고 했다. 당시 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져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인도 단체 배낭여행을 예약하게 됐다.


편안한 패키지여행과는 거리가 먼 여행이었다. 인도 주요 권역을 8일간 돌아보며 다양한 교통수단과 숙소를 체험하는 여행. 키의 절반이 되는 길쭉한 배낭을 메고, 건식 사우나 같은 날씨의 8월 초 강행군 일정에 묵묵히 참여했다.


공동묘지에서 요가를 하거나, 예약한 택시가 잘못 오거나, 숙소에 원숭이가 들이닥치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같은 체험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낯선 사람들과 거리도 처음보단 슬그머니 줄었다.


무엇보다 일정 도중 갠지스강 상류인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러 간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사트나에서 바라나시 이동을 위해 침대칸이 딸린 야간열차를 기다리는데 2시간 연착 안내가 나왔다. 그 후 기차 레일 위에 서있는 소의 이동을 기다리느라 지연. 그리고 또 연착. 또 지연.


그렇게 공지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 표를 끊고 들어간 플랫폼 안에서 기차가 언제쯤 도착하는지 기다리다 모두 지쳐갔다.


낮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뜨거운 공기가 밤까지 이어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인데도 플랫폼엔 후끈함이 가득했다. 하늘만 까맣지 낮과 다름없는 더위에 지쳐버린 나는 그만 플랫폼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자존심이 뭐야. 더운데.


플랫폼 바닥에 굴러서라도 몸에 남은 열기를 흩뿌리고 싶었다. 막상 누워보니 미지근한 바닥이었지만, 그래도 땀에 절은 등을 식혀주기엔 충분했다. 그때 일행 중 한 분이 붙이는 모기 퇴치 패치를 쓰윽 나에게 내밀었다.


“아가씨, 누워있음 모기 물릴 거 같은데, 물리면 안 되지. 이거 붙여.”


“아.. 네에... 감사합니다.. 진짜 덥네요. 에휴. 내가 바닥에 이렇게 드러누울 줄이야.”


인솔자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인도라면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해야죠? 고생이긴 하지만 ‘그럴 수 있다.’라고”


기차가 오지 않는 시간만큼, 일행들 사이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쯤 되니 왠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욕을 실컷 했다. 그런 나를 아줌마들은 잘 헤어졌다고 칭찬까지 했다.


조명 불빛으로 영 까매지지 않는 짙은 회색의 밤하늘. 웅성거리는 소리, 땀 냄새, 모기 패치 냄새, 그렇게 각기 다른 냄새가 섞여 있는 바라나시행 야간열차의 플랫폼. 너절하게 뻗어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기다리던 기차가 도착했다.


이 여행 전까진 난 한여름에도 미지근한 물에도 씻지 못했다. 차가운 물이 몸에 닿을 때면 머리카락이 쭈뼛하는 느낌이 싫었다. 하지만 극심한 더위 안에선 나라는 사람도 찬물, 차가운 바닥을 찾았다.


이젠 미지근한 물도, 찬물도 괜찮다. 찬물로 몸을 식히고 나서 뭉근하게 몸에서 열이 오르는 것도 꽤 좋아한다.


이때까지 나는 나를 아생의 들판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 정도로 생각했으나, 실은 온실 안에 사는 화초였다는 걸 알았다. 때때로 온실을 탈출하려는 나를 다시 온실 안으로 데려와 살뜰히 보살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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