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생활집 (1)

기록하자. 작고 사소한 것들이 쌓여 '나'를 만든다.

by 유수주





요 며칠 카피라이터라는 직군이 눈에 밟힌다. 알고리즘을 보면 요즘 내 관심사가 무엇인지 더 명확해진다.
n연차 광고 업계 카피라이터의 비법 공개, 카피라이터로 살아남는 법, 사람을 움직이는 문장... 등등 그저 지나쳤을 광고 문구들을 최근에는 여럿 클릭해 봤다. 그리고 4주 동안 카피라이팅 훈련을 해보자는 미션캠프의 강의를 결제하게 됐다. TBWA의 카피라이터 유병욱 님이 진행을 맡았다. 이틀 전에 결제를 했고 바로 오늘 1주 차 강의를 들었다. 겨우 막차에 탑승했다.

비법 같은 건 없다.

좋은 건 시간이 걸린다.

쉽게 얻은 건 쉽게 사라진다.

꾸준함을 강조하는 시작에 신뢰가 갔다.

나는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훈련 컨셉을 가진 강의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행동력이 부족한 나에게 뭔가를 배우기 위해 고민 없이 결제를 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큰 변화다.

얕고 넓은 취향과 커리어, 외길 인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애매해 보일까. 근데 어떡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데,

언젠가 언니가 그런 말을 했다. "깊게 파려면 넓게 봐야 돼"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믿기로 했다.


글에 대한 애정이 마음 곳곳에 남아 있는 게 확실하다. 글로 밥 벌어먹고살 수 있을까. 내가 글을 쓸 만큼 성실한 사람인가. 온갖 고민과 걱정으로 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었다. 나는 과거와 미래에만 살았던 거다. 지금, 현재,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데.

뭘 위해서 하는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답도 없고 의미도 없는 질문인 것 같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하자. 사소한 것이여도 상관없다. 대신 무조건 기록을 남기자.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요즘이다. 곳곳에 내 흔적을 남겨야겠다.


실업급여 기한도 끝났고 엄마아빠도 이제 슬슬 미래에 대한 계획을 묻고 싶어 근질거리는 게 눈에 보이지만 어쩐지 나는 조급하지가 않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선명하다. 나이 스물일곱에 부모 집에 얹혀살며 삼시 세끼 얻어먹고 집안일이라곤 겨우 분리수거나 하는 백수라서 죄송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 '나'를 알게 된 것 같아서 기쁘다. 인생이 길게 느껴져서 고단했는데 이제는 인생이 너무 짧을까 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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