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백수의 탄생

by 유수주


마룻바닥을 나뒹구는 밥그릇

이리저리 튄 미역국의 잔해들

얼어붙은 엄마 아빠의 얼굴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아아아악 궤에아아아악ㄱ켁켁

시뻘게진 얼굴로 악에 받쳐 소리 지르는 이 여자.


이것이 바로 나 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사이코패스 분조장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장면이지만, 걱정 마세요.

지극히 평범한 스물일곱의 백수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보자고요.

저 멀리 화분 옆으로 굴러가버린 밥그릇부터 줍고...




때는 6개월 전, 아니 더 먼 과거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백수가 된 6개월 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나는 대기업 계열사인 스타트업 회사에서 버추얼 휴먼 비주얼을 제작하는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일을 할 생각은 아니었고 짧은 스타일리스트 경력과 사진관에서 몇 년 일한 경력이 어찌저찌 도움이 되어 이건 내가 해야 될 일이다 자신만만하게 말해버렸고 그렇게 20분도 채 되지 않는 면접을 통해 첫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더랬죠.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정도 일을 하고 이만큼의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습니다. 강남권의 직장인이 되었다는 것,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풍족한 복지, 부모의 걱정에서 벗어난 것,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사에 대해 욕하고 다음 날 다시 출근하는 것,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과 착각에 빠져 괜스레 뿌듯한 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질을 무시한 표면적인 것들은 얼마나 짧은 생명력을 지녔는지.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뿌듯함은 사라지고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집 가고 싶다'뿐인 마음만 남아 동태 눈깔이 되어 버린 나를 발견했습니다. 아- 이렇게나 빈 껍데기 같을 수가 있나. 지옥철에서 시작하는 하루, 지옥철로 끝나는 하루. 내가 원하던 삶은 뭐였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야 이게 맞아? 맞냐고. (회사에서 생기는 자아분열은 정말이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회사 사람들이 주로 하는 얘기는 부동산, 외제차, 결혼 같은 것들인데 나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고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면 누군가의 험담을 해야만 하는 정치질의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전략은 없고 존버도 못하고 성공에 대한 욕구보다 그래서 성공의 기준이 뭔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잖아라고 말하는 나는 애초에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요.

퇴사하고 싶다고 외치면서 퇴사할 용기가 없는 비겁한 '나'가 되어 차라리 나를 잘라줘~라고 외치던걸 누가 듣기라도 한 걸까요.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때부터 회사 내부가 시끌시끌하더니 몇몇 사람들이 뭉쳐 술 마시러 가는 일이 잦아졌고 이직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는 12월의 어느 날 '전체 라운지 집합'이라는 공지를 받고 모였을 땐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그 분위기. 회사의 높은 사람이 나타나서 대뜸 회사가 망했어요.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회사 경영을 맡고 있다며 나타난 처음 보는 아저씨는 비싸고 무거워 보이는 시계를 탈탈 털며 회사가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경영이 힘들어졌고 결국은 구조조정을 하게 되었다고 희끗한 머리를 넘기며 머쓱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10분 뒤 팀장은 조용히 나를 불러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비좁은 테라스로 데려갔습니다. 건물 사이로 노을이 지는 풍경이었고 방금 막 도착한 지하철 소리가 창문 틈 사이로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한숨만 푹푹 쉬던 팀장은 긴 말로 나를 달래려 했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은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라는 탈락 도장이었습니다. 오디션 프로에서만 듣던 멘트를 실제로 듣게 될 줄이야. 이거 꽤나 씁쓸하고 루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인데, 그렇지만 이걸로 내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으로 안녕을 고했습니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사무실 가운데에 모여 인사를 나누었고 입사 초기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분들을 다시 마주하니 어쩐지 울컥해서 눈물이 맺히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회사였지만 함께 애써서 해낸 일이 성과를 내지 못했고 남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습니다. 서랍 속 잡동사니를 정리하고 컴퓨터를 초기화하고 인사팀을 만나 몇 장의 서류를 작성하는 걸 끝으로 2년을 꽉 채우지 못한 내 회사 생활은 수동적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180만 원의 실업급여를 받는 덜 불행한 백수가 된 것이었습니다.





회사를 나오며 나는 다시 생각합니다.


시발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냐...








*이 글은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입니다.